에르도안의 변덕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과 튀르키예를 관련지어 한 번 살펴보자. 들어가기에 앞서 튀르키예의 경제 상황에 대해서 한 번 알아보자.
인플레이션이란 화폐 유통량 증가나 공급보다 수요가 지나치게 많아져 화폐 가치가 하락하고 전반적인 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이다. 이에 대한 대응 방안은 기준 금리를 인상시켜 사람들의 소비와 기업의 투자를 억제해 수요를 줄이고 저축을 유도해 화폐가 자국 내에서 과하게 유통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하락했던 화폐 가치가 다시 상승하게끔 해 물가가 하락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고금리가 오히려 고물가를 유발한다’는 비정통적 경제관을 고수하며 금리를 올리는 대신 최저 임금을 인상시키는 것을 선택했다. 이렇게 해서 2024년 8월 기준 튀르키예의 최저 임금 수준은 17,002리라(한화로 692,908원)가 됐다. 튀르키예처럼 최저 임금을 급격히 인상하면 소비자들의 소비 여력이 일시적으로 증가해 수요가 급증하고, 기업이 늘어난 인건비 부담을 제품 가격에 반영하면서 결국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튀르키예의 물가 상승률은 2024년 6월 기준 71.6%였다. 이마저도 2024년 3월 21일 신임 중앙은행 총재 부임 후 45%에서 50%로 5%p의 금리 인상을 단행해 생긴 결과다. 같은 해 5월에는 물가 상승률만 75.5%였다. 일반적으로 기준 금리 인상의 효과는 시차를 두고 나타나기 때문에 3월의 인상이 6월 이후 서서히 효과를 드러냈지만, 이미 너무 늦은 대응으로 물가 상승 압력을 충분히 해소하지 못한 상태다. 이게 바로 튀르키예 경제의 현황이다.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인플레이션 때문에 튀르키예의 리라화 가치가 폭락했으며 이로 인해 2024년 8월 기준 1달러를 거래하기 위해 33.49리라가 필요한 상황이다. 이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서 에르도안과 중앙은행이 금리 인상을 일찍 결정했어야 했는데 금리 인상 시기가 늦었다. 그리고 에르도안은 자국 외화 보유고를 시장에 방출하여 일시적으로 달러 대비 리라화 가치를 안정시키려 했으나, 결국 외화 보유액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심각한 외화 부족 위기에 빠질 뻔했다. 그러나 다행히 러시아 국영기업으로부터 상당 규모의 달러화 투자를 받아 급한 외화 위기는 넘겼다. 이렇듯 튀르키예의 경제는 현재까지도 위태롭다. 하지만 외교적 행보는 이러한 경제 위기가 무색할 정도로 활발하다. 튀르키예의 대표적인 외교적 행보를 요약해 보면 아래와 같다.
1. 2022년 7월 22일 이스탄불에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 관련 회담을 개최해 양국(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합의를 이끌어내어 국제 곡물가 하락을 유도했다.
2. 우크라이나 대통령인 젤렌스키의 초청으로 튀르키예 대통령인 에르도안이 유엔 대표단과 함께 자포리자 원전 관련 회담에 참석해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의 전후 복구를 직접 약속했다.
3. 핀란드-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반대하면서 국내 소수 민족인 쿠르드족이 창당한 단체인 PKK(쿠르드족 노동자당) 관련자를 인도하라고 계속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튀르키예가 입장을 선회해 스웨덴-핀란드의 나토 가입을 찬성한 것을 보면 이런 요구가 승낙되었음을 알 수 있다.
4. 국내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치에서 열린 정상 회담에서 러시아 푸틴 대통령을 만나 러시아로부터 군사/경제/관광/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경제적 지원을 약속받았다.
게다가 2019년에 튀르키예는 시리아 내 쿠르드족 반군을 소탕한다는 명분으로 시리아 북동쪽을 쳐들어 간 적이 있었는데 2022년 5월부터 에르도안 대통령은 다시 시리아에 들어가겠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여기에 개입하려면 시리아 북서쪽 방향에서 30km를 들어가 거기에 거점을 마련해야 하는데 당시 열렸던 러시아와의 정상 회담에서 푸틴에게 이를 요구했다. 왜 푸틴에게 이런 요구를 했을까? 그 이유는 튀르키예가 거점을 만들고 싶어 하는 지역 내에 탈라파트와 만비즈라는 도시가 있는데 이 두 곳을 러시아와 이란이 각각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거점을 형성해 주는 대가로 러시아는 뭘 요구했을까? 바로 스웨덴-핀란드의 나토 가입 지연이다. 앞서 언급했듯 튀르키예는 스웨덴-핀란드에게 PKK 관련자를 자국에게 넘기라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함으로써 스웨덴과 핀란드를 외교적으로 압박했다. 그 결과 스웨덴-핀란드 편에서 언급했듯 양국 모두 튀르키예의 요구를 들어줬고 스웨덴과 핀란드는 나토에 가입할 수 있었다.
참고로 2022년 5월은 2023년 5월에 있었던 튀르키예 대선을 1년가량 앞두고 있었던 시점이었다. 왜 에르도안이 이때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려 했냐면 바로 쿠르드족 문제 때문이었다. 에르도안은 튀르키예식 민족주의를 국내 정치에서의 소재로 빈번히 사용하는데 그때마다 들고 나오는 것이 쿠르드족 이슈다. 왜냐하면 쿠르드족은 튀르키예와 시리아 사이의 남동부 국경 쪽에 밀집되어 있으며 독립국을 형성하고 싶어 하기에 튀르키예로부터 독립을 요구하고 있고 튀르키예를 상대로 무장 투쟁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는 쿠르드족 분포도다. 노란색 점이 쿠르드족의 분포를 의미한다. 아래 지도에서 볼 수 있듯 이라크 북동쪽에는 벌써 쿠르드족이 쿠르디스탄이라는 국가까지 건국했다. (번외로 미국은 쿠르드족의 독립을 지지하기도 했었으나 튀르키예가 나토 회원국인 데다 현시점에서 러시아를 남쪽에서 견제하려면 튀르키예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미국은 불가피하게 쿠르드족에 대한 지원을 철회했다.)
이제 결론이다. 그렇다면 튀르키예가 이렇게 활발히 외교 활동을 펼쳤던 이유가 무엇일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다가오는 대선에 대비해 악화된 국내 경제를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러시아로부터 외화 투자와 관광객 유입, 에너지 지원 등을 얻어 경제 상황을 단기적으로 안정시키고자 했다. 이미 에르도안이 재당선되며 지나가기는 했지만 2023년 5월에 대선을 앞두고 있었던 당시 상황에서 에르도안은 안 좋은 경제 상황을 안정화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에르도안이 외교를 통해 업적을 달성해(국제 사회와 주변 지역으로 튀르키예의 영향력을 확대해 중동에서의 맹주가 되는 것, 쿠르드족에 대한 국제 사회의 여론적 지지를 차단시키는 것) 이를 국내 지지율을 이끌어 내는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첫 번째는 위에서 언급한 것들 중 1번과 4번에 해당하고 두 번째는 위에서 언급한 1,2,3,4번 모두에 해당한다. 앞으로 튀르키예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계기로 국제 사회에서 어떠한 행보를 보일지 또 이를 통해 어떤 것을 얻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여담으로 인플레이션이 왔을 때 금리를 인상해 인플레이션을 완화하는 것은 잘 알려진 경제 이론이다. 그리고 경제적 이론과 현실은 잘 맞아떨어질 때도 있지만 아닐 때도 있는데 이는 미국과 튀르키예를 보면 알 수 있다. 튀르키예는 경제학적 정설을 따르지 않은 결과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외환 위기를 겪은 반면 미국은 경제학적 정설을 따라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급격히 올렸으나 그로 인해 소비 및 투자가 위축되어 경기 침체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최근 미국 연준에서 인플레이션 완화라는 목표를 어느 정도 달성했기에 금리를 인하하겠다는 듯한 모습을 암시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먼 것도 미국 경제의 현실이다. (훗날에는 인플레이션이 완화되긴 하겠지만 적어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인 2024년 8월 10을 기준으로 하면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그리고 여전히 이 글을 다듬고 있는 시점인 2025년 8월 3일에도 여전히 연준 의장인 파월은 금리 인하를 하지 않고 있으며 이를 이유로 자신의 경제적•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트럼프와 정치적 마찰을 빚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