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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tros May 18. 2021

가장 강력한 인대가 약점의 대명사가 된 까닭은?

영웅에게도 약점이었던 아킬레스건

<비축분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행복입니다^^.>



아킬레우스(Achilles, Ἀχιλλεύς)는 명실상부한 ‘트로이 전쟁 이야기’ 속 최고의 영웅입니다. 트로이 전쟁은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규모가 큰 전쟁 이야기이며, 그리스 전역의 영웅들과 트로이 왕국 및 동맹국의 영웅들이 총출동하는 화려한 서사시입니다. 

이 서사시는 트로이의 왕성이었던 일리온(IIIium, Ίλιον)의 이름을 따서 [일리아스(Ilias, Ίλιάς)]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트로이 전쟁의 불씨는 헬레네(Helene, Ἑλένη)라고 하는 스파르타(Sparta, Σπάρτα) 왕국의 공주이자 신화 속 최고 미녀의 결혼에서부터 생겨났습니다. 이 미녀는 출생부터 비범하였는데, 그녀의 어머니인 레다(Leda, Λήδα) 왕비가 백조로 변한 제우스, 그리고 남편인 틴다레오스(Tyndareos, Τυνδάρεος) 왕 사이에서 두 개의 알을 낳게 됩니다. 


사람이 알을 낳다니 너무 황당하지만, 고대에 출산을 도와주는 방법이 산파의 보조나 산모의 생명을 포기하는 방식의 절개법 정도 밖에 없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네 쌍둥이를 무사히 뱃속에서 키워 분만한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일 것입니다. 이런 이유와 스파르타 왕족들의 신비성을 강화하고자 하는 목적이 더해져 레다 왕비가 알을 낳았다는 식으로 소문이 났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레다와 백조, 1530년, 안토니오 다 코레조


이 알들에서는 카스토르(Castor or Kastor, Κάστωρ)와 폴리데우케스(영어로는 폴룩스(Pollux)라고도 하나 그리스어로는 폴리데우케스(Polydeuces, Πολυδεύκης)입니다), 라는 형제와 헬레네와 클리타임네스트라(Clytemnestra, Κλυταιμνήστρα)라는 자매가 태어나게 되는데, 이 중에서 틴다레오스 왕의 아이들은 카스토르와 클리타임네스트라였고, 제우스의 아이들은 폴룩스와 헬레네였습니다. 

현대 의학적으로 설명해보자면, 아주 드문 확률을 뚫고 두 남성의 정자들로 한 여성의 난자들에 각각의 수정이 일어나 임신이 된, '중복수정' 또는 '중복임신'이 일어난 것이며, ‘이부(異父)동시복임신(heteropaternal superfecundation)’이라는 용어도 사용이 가능하겠습니다.


이 쌍둥이들 중, 형제인 카스토르와 폴리데우케스는 디스쿠로이(Discuri, Διοσκουροι)라고 불리우며 영웅으로 이름을 떨치게 되고, 후에는 둘 다 같이 별이 되어 현재까지 황도 12궁의 하나인 쌍둥이자리(Gemini)의 전설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실제 두 쌍둥이들은 아래 그림처럼 귀염뽀쨕(?)하기보다는 늠름한 전사들이었지만 말입니다.

쌍둥이자리 심볼, 출처-위키피디아


쌍둥이 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 두 개에 저 형제의 이름이 붙어있습니다(신기하게도 제우스의 피를 이어 받은 폴리데우케스의 이름이 붙은 별이 더 밝게 빛납니다!). 그리고 헬레네의 자매인 클리타임네스트라는, 그녀 역시 자못 뛰어난 미인이었기에 미케네(Mycenae, Μυκῆναι)의 왕인 아가멤논(Agamemnon, Ἀγαμέμνων)의 왕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트로이 전쟁 후에는 '엘렉트라 콤플렉스(Electra complex)'의 기원이 되는 끔찍한 사건의 주인공이 됩니다. 형제자매들이 모두 비범한 삶을 살게 되었던 것이죠.



이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헬레네는 그 미모가 그리스 신화 속에서는 최고로 아름답다고 일컬어졌으며, 그런 만큼 수많은 영웅들이 그녀의 남편이 되길 원하였습니다. 앞서 나왔던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어린 소녀였던 헬레네를 보고 반해 납치한 적도 있었으니, 아동 납치라는 용납되기 어려운 범죄를 차치하고 생각하면 정말 엄청난 미모의 소유자였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헬레네에게 너무나 많은 구혼자들이 몰려들었기에, 자칫 했다가는 그리스 전역에서 전쟁이 날 수도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구혼자들 중 하나였던 이타카(Ithaca, Ιθάκη)의 오디세우스(Odysseus, Ὀδυσσεύς-‘증오받는 자’라는 뜻: 너무도 어울리는 이름이라는 점이, 그리스 신화를 읽어보면 느껴집니다.)가 한 가지 계책을 내놓았는데, 그것은 바로 구혼자들 중 누가 선택이 되든 간에 서로 싸우지 말고 일종의 동맹을 맺어 그 혼인을 방해하는 자를 막기 위해 함께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계책은 매우 신묘한 것이었지만, 결국 오디세우스 본인까지 트로이 전쟁으로 끌고 들어가는 물귀신으로 작용했으니 먼 훗날의 오디세우스가 안다면 뜯어 말리고 싶은 생각이었을 것이었습니다. 


결국 헬레네는 아가멤논의 동생은 메넬라오스(Menelaus, Μενέλαος) 왕자와 결혼하였고, 이 결혼을 통해 메넬라오스는 스파르타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디세우스는 헬레네의 사촌인 페넬로페(Penelope, Πηνελόπη)와 결혼하였고, 그리스 신화 속에서 가장 금슬 좋은 부부 중 한 쌍으로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이렇게 그리스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구혼 소동은 나름 해피엔딩으로 끝나나 싶었으나, 이렇게 모두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면 트로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리스 신화의 후반부 하이라이트는 전부 사라져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운명은 헬레네를 가만히 두지 않았습니다. 


 

헬레네가 메넬라오스와 결혼 후, 헤르미오네(Hermione, Ἑρμιόνη; 소설 『해리 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헤르미온느와 같은 이름이기도 합니다)라는 딸도 낳고 잘 살고 있을 때,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로 놀러오게 됩니다. 사실 이 파리스도 태어날 때 트로이를 멸망시킬 거란 예언을 받고 버려졌다가 다시 왕가로 받아들여진, 매우 기구한 팔자의 왕자였습니다. 그러나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트로이의 왕족 답게 외모는 매우 아름다웠고, 올림푸스 여신들의 미인 대회(아프로디테, 아테네, 헤라가 참가한)에서 아프로디테의 편을 들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기로 약속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여러모로 왕족으로는 안 어울리는 한량 같은 사람이었지만, 어쨌든 범상치 않은 운명의 소유자임에는 틀림이 없었고, 그가 스파르타를 방문했을 때 그 운명이 움직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아프로디테 여신이 약속을 지키고자 자신의 아들인 에로스를 시켜 헬레네에게 사랑에 빠지게 하는 금화살을 쏘게 하였고, 그에 의해 거부할 수 없는 애정에 휩싸인 헬레네가 모든 것을 버리고 파리스와 함께 트로이로 도망친 것입니다. 


뒤늦게 이 사태를 알게 된 파리스의 형이자 트로이의 첫째 왕자였던 헥토르(Hector, Ἕκτωρ)는 말 그대로 뒷목을 잡을 것 같은 고뇌에 빠지게 됩니다. 멀쩡히 잘 살고 있던 다른 나라의 왕비를, 게다가 그리스 전역의 영웅들이 그녀의 결혼을 수호하기로 맹세한 여인을, 고작 사랑을 위해 데리고 도망친 셈이었으니까요. 결국 트로이에는 커다란 걱정거리가 넝쿨째 굴러들어온 것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헬레네와 파리스의 사랑, 1788, 자크루이 다비드


그러나 가족 간의 사이가 좋은 편이었던 트로이 왕가는 파리스 왕자의 사고를 감싸주고, 헬레네도 새로운 며느리로 환대해주게 됩니다. 물론 이런 훈훈한 가족애가 있더라도 그리스와의 전쟁은 피할 수가 없었기에, 헬레네를 위한 맹세를 빌미로 메넬라오스와 아가멤논은 그리스 전역의 영웅들에게 헬레네를 되찾기 위한 전쟁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리고 겸사겸사 트로이를 함락시켜 막대한 전리품을 얻고자 했죠.


이 전쟁에는 처음 동맹의 계책을 내놓았던 오디세우스도 불려오게 되었고, 행복한 결혼 생활을 포기하기 싫었던 오디세우스는 그리스 신화 최초로 병역기피를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일부러 갑자기 정신병이 생긴 것처럼(현대 의학 용어로 표현하자면 조현병(Schizophrenia)이 발생한 것과 같은 상태) 행동했는데, 당나귀를 쟁기에 메어 밭을 갈며 소금을 뿌리며 곡물이 자라길 바라는 이상 행동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 최고의 지혜로운 영웅이 갑자기 미칠 리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쟁기 앞에 오디세우스의 어린 아들을 앉혀 놓았고, 차마 아들을 다치게 할 수 없었던 오디세우스는 미친 사람 흉내를 포기하고 전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이왕 끌려가게 되 것, ‘나만 갈 순 없지!’란 생각이 들었는지, ‘전쟁에 참가하여 영광을 얻으면 죽는다.’라는 신탁을 받고 숨어있던(정확히 말하자면 아킬레우스를 끔찍히 아끼는 어머니 테티스 여신에 의해 여장을 하고 숨겨진 것입니다-아, 이 분도 일종의 병역기피자였네요), 아킬레우스까지 찾아내어 전쟁터에 데려가게 합니다. 


이렇게 발각될 때, 아킬레우스는 너무 대놓고 검 혹은 방패류를 집어드는 것으로 묘사되곤 합니다. 마치 아래 그림처럼 말이죠. 오디세우스의 '잡았다 요놈!'이란 속마음이 여기까지 느껴집니다. 이렇게 헬레네 결혼의 연쇄 작용 끝에 아킬레우스까지 참전하여, 트로이 전쟁의 그리스 드림팀이 완성되었습니다.

오디세우스에 의해 발각된 아킬레우스, 안젤리카 카우프만


오디세우스의 물귀신 작전의 결과로 참전한 아킬레우스는 마지막에 참가하는 사람이 주인공이란 법칙에 어울리게, 매우 눈부신 활약을 보여 그리스 진영의 승리에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됩니다. 전쟁 중에 그리스 영웅들끼리의 불화도 있었고, 소중한 친구인 파트로클로스(Patroklos, Πάτροκλος)도 잃게 되지만, 수많은 트로이 측 영웅과 병사들을 학살하며 엄청난 전공(戰功)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나 영광을 얻은 이상 그에게는 예언대로 죽음이 내려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파리스의 독화살에 발뒷꿈치를 맞아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파리스가 비록 트로이 왕가 최악의 고문관이긴 했으나, 명사수인 것만은 틀림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래 그림에서는 발뒷꿈치라기보다는 발바닥에서 발등까지 화살이 꿰뚫은 것 처럼 보이나, 어쨌든 아킬레우스의 약점을 노린 화살과 그로 인해 독에 중독되어 창백하게 변해 죽음을 맞이하는 아킬레우스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아킬레우스의 죽음, 1630-35, 폴 루벤스

 

실제 아킬레스건(Achilles tendon, calcaneal tendon)은 발뒷꿈치뼈와 종아리 근육을 연결하여 발을 내딛는 동작에 관여하게 되고, 사람이 걷거나 뛰고 달리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신체에서 가장 강력한 인대이지만, 사용량이 많아 그만큼 손상도 자주 일어나고, 아킬레스건의 염증이나, 파열로 정형외과를 방문하는 환자들도 많습니다. 아킬레스건에 염증이 생기거나 파열되면 통증이 심하고 걷거나 달리는데 큰 지장을 받습니다. 


고대에는 형벌 중 하나로, 아킬레스건을 아예 끊어버리는 월족형(刖足刑)이라는 벌도 있었는데, 이렇게 아킬레스건을 끊기게 되면 일상 생활에 큰 장애가 생기게 되고, 특히 고대에서 중시하는 전사(戰士)로서의 능력은 상실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매우 잔혹한 형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위대한 영웅 아킬레우스가 발뒷꿈치 부분에 화살을 맞고 사망했다는 설정은, 신화적인 재미를 주려는 목적도 있겠으나, 실제적으로 고대인들에게 있어 아킬레스건이 손상된 성인은 군대에 가거나 힘든 노동에 참여하기 힘들어 사회적으로는 사망 상태에 이른다는 것을 비유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킬레스건, 출처-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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