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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tros May 23. 2021

로맨스판타지인가, 싸이코스릴러인가?: 전편

신이 된 미녀 프시케

정신과는 이름 그대로 정신질환을 치료하고 연구하는 의학의 한 분야이며, 한국의 경우 예전에는 신경정신과 요즘에는 정신건강의학과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정신과의 영어 단어는 ‘Psychiatry’로, 이 단어의 어원은 영혼과 마음의 여신의 이름인 ‘프시케(Psyche, Ψυχή)’입니다. 


프시케는 원래 인간이었다가 신으로 승격된 존재로, 프시케라는 이름의 뜻도 원래는 호흡(숨)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아마도 호흡이 생명의 증거이므로 인간의 영혼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란 고대 사람들의 믿음에서 생겨난 여신일지도 모릅니다.

에로스와 프시케

프시케는 그리스 신화 속 최초의, 그리고 상당히 적나라한 고부 갈등의 사례이자, 헤라클레스 같은 영웅처럼 인간에서 신이 되기 위한 시련을 거치는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입니다. 그녀의 불행의 시작은 메두사 이야기에서 언급되었던 안드로메다 공주와 비슷합니다. 

어떤 왕국에 세명의 공주가 있었는데, 그 중 막내 공주인 프시케의 용모가 특히 뛰어났고, 그녀의 특별한 아름다움에 매료된 사람들은 그녀를 미의 여신의 현신처럼 여기며 숭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이 부분에서 그녀는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심기를 완전히 거스르게 되었죠. 신의 권위에 도전한 셈이 되었던 프시케는 아프로디테에게 제대로 ‘찍히게’ 되었고, 분노한 아프로디테는 자신의 아들인 에로스(Eros, 영어로는 큐피드: cupid)를 시켜 프시케에게 벌을 내리도록 합니다. 그 벌이란 바로 그녀에게 에로스의 금빛 화살을 쏘아 세상에서 가장 추하고 혐오스러운 남자에 대한 사랑을 불러일으키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에로스는 가벼운 마음으로 어머니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떠났는데, 막상 프시케의 아름다움을 마주하게 되자 그녀의 매력에 압도되어 놀란 나머지 쏘려던 금화살에 본인이 찔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프시케에 대한 강한 사랑에 빠지게 되어버리죠. 또한 사랑에 빠진 에로스는 저희가 익히 알고 있는, 날개 달린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사랑이 그를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시킨 것이죠.

어머니의 명령을 어기고 오히려 사랑에 빠져버린 에로스는 당황하였지만, 어쨌든 그녀를 다른 사람에게 뺏기기 싫다는 생각이 들어, 아프로디테의 뜰에서 솟아나는 두 개의 샘물을 이용하기로 하였습니다. 두 개의 샘물이란 단물과 쓴물인데, 단물은 사용하는 사람의 아름다음과 매력을 높여주는 힘이, 그와 반대로 쓴물에는 매력을 떨어뜨리는 신비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에로스는 쓴물을 잠들어 있는 프시케의 입술에 뿌려 다른 이성이 그녀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게 하였고, 단물을 그녀의 머리카락에 뿌려 그녀의 아름다움이 더욱 빛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림 속 장면은 신화와 딱 맞는 내용은 아니지만, 아직 에로스를 볼 수 없는 상태의 프시케에게 몰래 사랑을 고백하며 축복의 키스를 전하는 에로스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큐피드와 프시케, 1798, 프랑수아 제라르

에로스의 술수로 인해 프시케는 더욱 아름다워져 그녀에 대한 숭배가 계속 되었으나, 그 어떤 남자도 그녀에게 이성적인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에 구혼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녀보다 덜 아름다운 언니들은 모두 구혼을 받고 결혼을 하여 떠나갔고, 프시케는 향기 없는 꽃처럼 숭배만 받으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신탁이 내려왔는데, 프시케를 절벽 아래에 살고 있는 신비한 괴물의 짝으로 바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부모는 그 신탁에 놀라 절망하였으나, 프시케는 올 것이 왔다는 태도로 의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자신이 미의 여신보다 더 아름답다고 칭송을 받는 것이 큰 재앙을 불러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신의 뜻을 어길 수는 없었기에, 사람들은 그녀를 단장시켜 절벽으로 데려갔습니다. 

화려한 결혼식 가마를 타고 화사한 신부의 모습으로 꾸민 상태였지만, 괴물에게 가는 길이었기에 행렬의 분위기는 침통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녀를 절벽에 두고 돌아갔으며, 프시케는 모든 것을 체념한 체로 괴물이 나타나길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괴물은 나타나지 않았고, 갑자기 바람을 타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라고 말이죠. 


바람이 받쳐줄 테니 걱정 말고 뛰어내리라는 속삭임이 계속 들려왔고, 어차피 돌아갈 수도 없다고 생각한 프시케는 그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바람이 부드럽게 그녀를 감싸주었고, 그녀는 바람의 속삭임 대로 무사히 절벽 아래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절벽 아래에는 화려한 저택이 있었는데, 그녀는 그 안에 발을 들이자마자 또 다른 목소리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큐피드의 정원으로 들어가는 프시케, 1901, 존 윌리암스 워터하우스

목소리들은 프시케를 자신들의 여주인으로 모실 것이며, 이 저택의 주인이자 프시케의 남편이 될 분은 어둠이 내리면 찾아올 것이라고요. 보이지 않는 시종들이었지만 그녀를 깍듯이 모셨고, 목욕물이며 맛있는 식사며 부족함 없이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살던 왕궁에서보다 더 호화로운 생활을 만끽하고 잠자리에 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밤이 되자 목소리 시종들의 말대로 누군가가 찾아왔고, 그는 "자신이 프시케의 남편이 될 존재이나 얼굴을 보일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아름다운 목소리와 다정한 말투에 안심한 프시케는 그를 남편으로 맞이하여 지내게 되었습니다. 괴물에게 잡혀갈 것을 각오하고 온 것이었으니, 지금의 상황이 그다지 나쁘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보이지 않는 남편과 시종들과의 생활은 나름 평온하고 행복했습니다. 프시케는 그 생활을 즐기며 평생을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호사스러운 생활을 누리다 보니 그녀의 가족들이 그리워졌습니다. 자신이 무사히 잘 살고 있음을 알리고 싶기도 했던 것이죠. 그래서 그녀는 남편에게 부탁해 언니들을 이 곳으로 초대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이 초대가 프시케가 시련을 겪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됩니다. 그녀의 언니들은 처음 이 저택에 초대되었을 때는 동생이 무사하게 잘 사는 모습에 함께 기뻐하고 안심했습니다. 그러나 몇 번 더 초대를 반복하다보니 막내 동생이 행복하게 사는 모습에 질투가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언니들로서는 어려서부터 아름답다고 칭송 받던 동생이 불행한 신탁을 받았을 때, 안타까우면서도 그 동안의 차별을 보상 받는 기분이 들어 약간은 만족했을지도 모릅니다. 형제자매라는 관계에도 경쟁심과 질투심은 존재하기 마련이니까요. 그러나 동생이 괴물에게 시집을 가서 죽거나 불행해졌을 거라 생각하니 또 슬펐었지만, 이렇게까지 행복하게 잘 사는 모습을 확인하게 되니 처음에 느꼈던 안도감은 사라지고 이전부터 도사리고 있던 질투심이 언니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아래 그림에서 그 질투심은, 그녀들이 전해주는 램프와 단검으로 상징이 되죠.

Psyche's Sisters Giving her a Lamp and a Dagger, 1695-7, Luca Giordano

언니들은 동생을 의심과 괴로움에 빠뜨리는 말을 건넵니다. 너와 사는 남편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느냐, 사실 아주 끔찍한 괴물이라서 그 모습을 감추고 있는 것이 아니냐, 어떻게든 몰래 확인해 보아라, 널 해칠 수도 있으니 칼도 꼭 들고 가거라… 이런 식으로 말이죠. 

처음에는 언니들의 말을 애써 무시하던 프시케였지만, 실제로 남편을 한 번도 본 적 없던 그녀는 언니들의 말에 점차 동요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국 남편의 얼굴을 확인해보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평소와 같이 밤늦게 남편이 찾아왔고, 같이 담소를 나누다 잠들게 됩니다. 


프시케는 자는 척 만하다가 몰래 일어나 등불에 불을 붙여서 남편의 얼굴을 확인해 봅니다. 그 순간 그녀의 눈에 들어온 남편의 모습은 괴물이 아니라 놀랍도록 아름다운 청년이었습니다. 완벽한 이목구비와 금빛의 고수머리, 부드럽고 뽀얀 피부까지… 미의 신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텐데 라는 생각이 드는 얼굴이었습니다. 당연히 이 남자의 정체는 그녀에게 반했던 에로스였구요. 프시케는 남편의 모습에 반하여 좀 더 자세히 보고자 했고, 결국 화살에 찔렸던 남편처럼 실수를 저지르게 됩니다. 등불을 너무 기울여 그 기름이 에로스의 몸에 떨어지게 된 것이죠. 

Cupid and Psyche, 1828, Jean Baptiste Regnault

뜨거운 기름에 놀라 일어난 에로스는 자신의 얼굴을 확인한 프시케를 보고 당황한 것도 잠시, 자신과의 약속을 어긴 것에 화가 나 그녀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알린 후에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이란 엄포를 놓고 날아가 버립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저택에 있던 목소리 시종들도 사라져 그 안은 폐허와 같은 황량함만 남게 되었죠. 


자신의 손으로 모든 행복을 깨뜨렸다는 사실을 인식한 프시케는 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넋놓고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자신의 남편을 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프시케가 남편에게 버림 받은 것을 알게 된 언니들은, 자신들이 동생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을까 싶어서 절벽에서 뛰어내렸고(바람에게 자신들을 받아달라고 외치며), 둘 다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서, 프시케의 여정과 싸이코스릴러에 관련된 부분은 다음 글에서 서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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