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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tros May 25. 2021

죽음이란 무엇인가?: 전편

죽음의 신 타나토스와 저승의 뱃사공 카론

프시케와 에로스의 이야기를 써봤으니, 이번에는 생명력을 상징하는 에로스와는 상반되는 주제를 다뤄보고자 합니다. 리비도의 영역에서 데스트루도의 영역으로 떠나보겠습니다.



죽음이란 모든 살아있는 것의 종말이며 종착지일 것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소생할 수 없는 삶의 영원한 종말’ 이라는 표현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현대 의학에서는 심정지에 의한 사망(cardiac death)뇌사(brain death)가 생물학적인 죽음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이중에서 뇌사는 모든 나라에서 인정되고 있는 것은 아니며, 한국의 경우에는 장기이식과 관련될 경우 일부 환자들에서 뇌사 판정이 내려지고 난 후에 장기 공여자로서 다른 환자들에게 장기를 이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뇌사는 아직도 의학, 윤리, 법률 등의 분야에서 논쟁이 지속되고 있는 개념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가장 고전적인 관점에서의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심정지’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 겁니다.


고대 사람들도 호흡이 없고 심장이 뛰지 않는 상태를 죽음으로 생각하였으며, 이러한 망자들이 죽음 이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경험해볼 수 없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죽음에 관여하는 신들과, 사후 세계에 대한 상상을 하게 됩니다.


죽음 역시 모든 생물체에게 있어 아주 근본적인 개념 답게, 그리스 신화 속에서도 아주 원초의 시기부터 존재하는 신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바로 앞에서 언급되었던 게라스처럼 닉스와 에레보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 중 하나가 바로 죽음의 신 타나토스(Thanatos, θάνατος)입니다. 타나토스는 개념신 답게 그리스 신화 속에서 별다른 활약은 없으나, 잠의 신인 히프노스(Hypnos, Ὕπνος)와 쌍둥이로 여겨졌으며, 이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죽음을 영원한 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잠과 그의 형제, 죽음. 1874.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위 그림에서 좀 더 밝은 쪽에 있는 소년이 히프노스이며, 어두운 쪽에 있는 소년이 타나토스입니다. 명암만으로 잠과 죽음의 경계를 구분지어 놓은 것이죠. 들여다보면 볼수록 잠은 갑자기 깨어나 하품을 할 것만 같은 활기가 느껴지고, 죽음은 그 상태로 침잠하는 듯한 무거움이 느껴집니다. 자신의 팔로 비슷한 체격의 히프노스의 등을 받치고 있어도 불편한 기색이 없는 모습이 더욱 죽음의 불변성을 대변해주는 것 같습니다.


의학적으로도 깊은 수면 단계에 들어가면 체온이 떨어지고, 호흡수와 심박수가 감소하게 됩니다. 아마도 이러한 모습이 죽은 사람과도 자못 비슷해 보여, 두 신을 쌍둥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타나토스에서 따온 단어로는 사망학을 뜻하는 ‘Thanatology’가 있으며, 이는 개인의 죽음과 그 사생관에 대한 학문이라고 합니다. 의학 용어에서는 자살광(自殺狂)이란 개념을 ‘thanatomania’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는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이 명계(冥界) 혹은 저승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상당히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명계에 있는 다섯 개의 강을 건너야 하데스가 다스리는 저승의 왕국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그 시대 기준의 먼 여행이란 '배를 타고 떠나는 것'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첫 번째로 건너야 하는 강은 비탄의 강 아케론(Acheron, Ἀχέρων)으로 이 강을 건너려면 뱃사공인 카론(Charon, Χάρων)에게 뱃삯을 주고 그의 배를 타야 했습니다. 여기서 조금 덧붙이자면, 카론 역시 닉스와 에레보스의 자식들 중 하나로, 게라스, 타나토스, 히프노스와 형제입니다. 저승의 뱃사공이라는 극한 직업의 소유자 정도로 착각하기 쉽지만 상당히 신격이 높은 존재이며, 그러므로 그가 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며 엄격한 기준에 의해 집행됩니다. 

그는 반드시 죽은 자, 그리고 그에게 뱃삯을 지불할 수 있도록 정당한 장례가 치뤄진 자를 태워주는데(각주 1), 아주 드물게 오르페우스, 헤라클레스, 그리고 프시케(쓰다보니 은근 많군요) 정도만이 살아있는 채로 카론의 배를 이용한 적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타면 그 무게로 인해 배가 약간 가라앉는다고 하는데, 아마 영혼이 육체와 비교해서 매우 가볍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프시케 이야기 속에서도 저승에 다녀오기 위해 이 카론을 설득하여 배를 타는 과정이 언급되는데, 살아있는 채로 배를 타야했기에 죽어서 배를 타는 이들보다 많은 뱃삯을 지불해야한다고 나와있습니다.

정상적으로 장례를 치룬 자들이면 1 오보로스의 동전을 내면 되는데, 프시케는 그 두 배인 2 오보로스와 빵 두 개까지 주고 나서야 겨우 올라탈 수 있었다고 합니다(각주 2).

Charon and Psyche. 1883. John Roddam Spencer Stanhope.


이제 고대 그리스신화 속 저승의 첫 관문을 통과했습니다. 나머지 강들과 저승에 관련된 또 다른 이야기들은 다음 편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각주

1. 고대 그리스에서는 장례를 치룰 때 망자의 입 안에 동전을 넣어주었는데, 이것이 바로 카론에게 지불할 뱃삯이며 이러한 장례를 치루지 못하면 영원토록 저승의 강가에서 헤맨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망자의 가족들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시체를 챙겨 장례를 치뤄주는 것을 중요시했습니다.

2. 오보로스는 고대 아테네의 화폐단위 중 하나입니다. 가장 유명한 화폐단위인 1 드라크마(Drachma, δραχμή)가 4인 가족이 하루 먹고 살 수 있는 비용인데, 1 드라크마는 6 오보로스와 동등한 가치를 지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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