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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tros May 26. 2021

죽음이란 무엇인가?: 후편

저승의 강들, 타르타로스, 그리고 죽음과 싸운 시시포스.

지난 글에 이어서 죽음의 여정을 마저 따라가 보겠습니다.

https://brunch.co.kr/@ef4da8729340415/15

저승의 뱃사공인 카론의 배에 무사히 탑승했다면, 망자는 아케론 강을 지나 명계의 좀 더 깊은 곳으로 향하게 됩니다.


아케론을 건넌 이후에는 코퀴토스(Cocytos, koʊˈsaɪtəs)라는 강을 전너게 되며, 이 강의 이름은 ‘탄식’이라는 뜻입니다. 생전에 있었던 온갖 후회스러운 일들(흑역사?)이 떠올라 비통에 잠겨 탄식하게 된다고 하는 강입니다. 아마 죽은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 가질 삶에 대한 미련에 대해 표현한 것 같습니다. 

단테의 신곡에서는 강이 아니라 얼음 호수로 나오고, 생전에 남을 배신한 사람들이 갇혀서 고통 받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는 것을 '얼음'에 비춰보는 것으로 비유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후회의 감정은 차가운 얼음처럼 뼛 속 깊이 파고든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네요.

단테의 신곡 속 코퀴토스에 대한 삽화. 귀스타프 도레 작품.


그 다음 강은 플레게톤(Phlegeton, Φλεγέθων)이며, 이 강엔 물이 아니라 불이 흐르고 있어 이곳을 지나는 영혼들을 정화해준다고 합니다. 죽기 전에 떠올린 미련들을 털어버릴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닐까요? 

이 강을 지날 때 다 태워버릴 수 없을만큼 많은 죄를 지은 영혼들은 그리스-로마 신화 속의 지옥이라 할 수 있는 타르타로스로 갈 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플레게톤의 이미지.


영혼을 정화한 이후에 네 번째로 지날 강의 이름은 레테(Lethe, Λήθη)인데, 이 강의 이름은 닉스와 에레보스의 손녀뻘 되는 망각의 여신 레테의 이름과 같습니다. 이름에 걸맞게 이 강을 건넌 영혼들은 생전의 기억을 잊고 저승에 갈 준비를 거의 끝마치게 됩니다. 레테 강의 근처에는 기억의 샘물인 므네모시네(Mnemosyne, Mνημοσύνη - 기억의 여신 이름과도 동일)이 있어, 이 샘물을 마신 자는 전생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고 합니다. 

이 강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 중 하나는, 강의 발원지가 바로 잠의 신 히프노스의 집(동굴)이라는 것입니다. 잠든 사이에는 그 동안 꾼 꿈도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잠을 통해 낮에 있던 일을 잊기도 하는 것을 보면 망각과 잠을 연결한 신화의 내용이 놀랍게 느껴집니다.

레테강(이자 여신)의 이미지.


마지막 강인 스틱스(Styx, Στύξ)를 건너면 드디어 하데스가 다스리는 저승의 땅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 강은 그리스 신화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분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인데, 원래 티탄 신족인 바다의 신 오케아노스의 딸들 중 하나인 스틱스(각주 1)의 이름을 따온 것이며, 그리스 신화 속에 나오는 맹세 중에 스틱스 강의 이름을 걸고 한 맹세는 신들조차 어길 수 없다고 합니다. 


스틱스 강을 걸고 했던 수많은 맹세들이 비극으로 이어지게 되므로, 매우 조심해야하는 이름이죠. 또한 이 강에 몸을 담그게 되면 몸이 강철과 같이 단단해져 어떠한 무기도 상처를 입히지 못하게 된다고 하는데, 이 강의 세례를 받았던 대표적인 영웅이 아킬레우스입니다.

스틱스 강에 아킬레우스를 담그는 테티스


이 위대한 스틱스 강까지 건너게 되면 하데스의 땅에 도착하게 되며, 여기서 재판을 받은 영혼들은 그 결과에 따라 선한 영혼은 영원의 낙원인 엘리시온(Elysion, Ἠλύσιον) 들판으로 가서 충만한 행복 속에서 생전의 모습으로 편안하게 지내게 되고, 죄많은 영혼들은 저승 최하층에 있는 지옥인 타르타로스(Tartaros, Τάρταρος)에 떨어지게 됩니다. 


저희가 보통 상상하는 '지옥'의 이미지는 그냥 저승이 아니라 타르타로스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타르타로스의 '네임드' 수감자들로는 티타노마키아 및 기간토마키아에서 패한 신들과 거인들이 있으며, 그리스 신화 속에서 놀랄 만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신을 모독한 자들에게 맞춤형 형벌이 내려지는 장소입니다. 


이러한 죄수들 중 하나인 시시포스(Sisyphos, Σίσυφος)는 티탄 신족인 아틀라스의 사위인데, 사실 그는 잠깐이나마 죽음을 정복했던, 대단한 인간이었습니다. 그는 생전에 제우스가 강의 신의 딸을 납치해가는 것을 보고, 딸을 찾던 강의 신에게 고자질한 적이 있었는데 그 사실을 안 제우스가 분노하여 타나토스에게 시시포스를 저승으로 끌고 가도록 시킵니다(현대의 관점으로 보면 공익제보자가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황...). 그러나 시시포스는 자신을 잡으러 온 타나토스를 공격하여 사로잡아 지하실에 감금하였고(!), 그로 인해 세상에는 죽음이 없어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황당한 상황에 놀란 하데스가 제우스에게 항의하였고, 제우스는 전쟁의 신인 아레스를 보내어 타나토스를 구출하도록 한 후 시시포스를 저승으로 연행시킵니다. 이 때 시시포스는 또 한 번 꾀를 내어 아내에게 절대 자신의 장례를 치루지 말라고 당부하였고, 저승에 도달한 그는 하데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아내(각주 2)가 시신을 버려놓고 장례를 치뤄주지 않으니 너무 원통하다고 호소하였습니다. 그 눈물에 흔들린 하데스(생각보다 감수성이 풍부하신 분)는 그럼 다시 장례를 치르고 오라며 그를 돌려보내 주었고 그는 이승에 돌아가서 천수를 누리게 됩니다. 물론 결국 제 명대로 살다가 죽어서는 타르타로스에 가게 되었으나, 살아 생전 신들이 내린 죽음에 저항했고, 두번이나 죽음에서 탈출한 대단한 인간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타르타로스에서 형벌을 받는 시시포스.

이러한 죄를 지은 시시포스가 받은 형벌이란,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올리는 것이며,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그 바윗돌은 바로 굴러떨어져 다시 밀어올리기를 영원히 반복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잠시라도 쉬려고 하거나 일을 미루면, 복수의 여신들이 나타나 채찍질을 가했다고 합니다. 죽음을 거부하고 달아났던 자에게, 영원히 반복되는 고통을 주어 끝이 없는 삶이 그 자체로 지옥일 수 있음을 알려주려하는 것 같습니다.


현대의 의학은 죽음에 대해 계속 연구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죽음을 따돌리거나 속이는 방법이 아닌 정정당당하게 이겨내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참고로 세포 단위의 사망인 세포자연사란 의미의 영어 단어는 ‘Apoptosis인데, 이 단어 역시 고대 그리스어인 ‘ἀπόπτωσις’에서 기원하였으며 그 의미는 ‘off’라는 의미의 ‘apo’와 ‘falling’을 의미하는 ‘ptosis’ 두 가지 단어를 합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각주 

1. 제우스의 사촌쯤 된다고 볼 수 있으며, 티타노마키아 때 매우 지혜롭게 줄을 잘 선 케이스입니다.

2. 시시포스의 아내는 '플라이아데스' 중 한 명이자 막내인 메로페입니다. 실제 플라이아데스 성단의 일곱 별 중에 메로페라는 별이 가장 어두운데, 신화에서는 메로페가 남편이 부끄러운 나머지 숨어서 혹은 남편을 따라 저승에 갔기에 잘 안 보이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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