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정 망상 (Erotomania, Erotic delusion)은 망상 장애의 하나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는 것을 주증상이라고 한다. 프랑스의 정신병학자인 가에탕 가시앙 드 클레랑보(Gaëtan Gatian de Clérambault)에 의해 처음으로 사례가 발표되었기 때문에 드클레랑보 증후군(de Clérambault syndrome)이라고도 합니다.

가에탕 가시앙 드 클레랑보(Gaëtan Gatian de Clérambault)

드클레랑보는 1921년에 프랑스의 53세 여자가 영국의 왕인 ‘조지 5세’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영국의 버킹엄 궁전 앞에 찾아가는 등의 이상 사고 및 행동을 보이는 증례를 발표하였고, 이러한 것을 색정 망상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자신을 알 리 없는 사람일지라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상대방의 모든 행위에 과한 의미를 부여하며 자신의 망상을 합리화하는 형태를 보이며, 심해지면 스토킹과 같은 범죄로도 발전할 수 있습니다.

He Loves Me (2002). 색정망상을 소재로 한 영화 중 하나.

Eroto-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용어의 기원은 앞서 나왔던 ‘에로스’입니다. 에로스 자신이야 프시케와 만나 변치 않는 사랑을 나누었지만, 에로스가 성장하기 전까지는 황금화살(사랑을 불러일으킴)과 납화살(미움을 불러일으킴)을 가지고 신과 사람들의 마음을 조종하는 장난을 치곤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일어난 가장 큰 비극 중 하나가 바로 아폴론과 다프네(Daphne, Δάφνη)의 이야기입니다.

황금 화살을 들고 장난치는 에로스의 모습.

아폴론은 그의 여동생인 아르테미스와 더불어 활을 잘 쏘기로 유명하였는데, 에로스가 자신의 활과 화살을 가지고 노는 것을 보며, 어린애 장난감이라며 비웃었습니다. 이에 앙심을 품은 에로스는 아폴론에게는 황금화살을 쏘았고, 그 순간 아폴론의 눈에 들어온 나무 요정 다프네에게는 납화살을 쏘았습니다. 그리하여 아폴론은 다프네에게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되었으나 다프네는 아폴론을 보고 혐오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사랑에 빠진데다가 평소 미남신으로 여기저기서 구애 받는 것이 익숙했던 아폴론은 자신이 아무리 애원해도 기분 나빠하며 도망가는 다프네를 이해할 수 없었고, 결국에는 자신을 피해 달아나는 다프네를 쫓기 시작하였습니다.

달리기의 명수이기도 한 아폴론에게서 달아나는 것은 쉽지 않았고, 결국 다프네는지쳐서 도망가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아버지인 강의 신에게 빌어 자신을 아폴론이 알아보지 못할 모습으로 바꿔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져 다프네는 나무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는데, 아폴론은 자신을 져버린 그녀였지만, 그녀가 변한 나무를 알아보고 다가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가 변한 모습인 월계수를 자신의 나무로 삼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로 아폴론의 가호를 받았다고 생각되는 승자들에게는 월계관이 씌워지게 됩니다.

아폴론과 다프네(1907).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월계수로 변하는 다프네의 표정에서 일방적인 사랑에 의한 공포와 혐오감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이 사건은 신화 속의 이야기이지만, 색정 망상에 의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기도 합니다. 상대방의 마음과 관계 없이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 집착할 때 벌어질 수 있는 비극을 그리고 있으며, 그 원인이 에로스의 화살이었기에, 이 유형의 망상 장애에 대한 이름을 붙일 때 ‘Eroto-’라는 접두사를 사용한 것은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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