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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tros May 20. 2021

그리스 신화 속의 최초의 수술과 최초의 약물

아테나의 탄생과 크로노스의 구토

(1)   두통에 시달리는 제우스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Zeus, Ζεύς)의 아내는 헤라(Hera, Ήρα)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최초의 아내는 티탄(Titan) 신족 출신 지혜의 여신인 메티스(Metis, Μήτις)였습니다. 메티스는 제우스가 신들의 왕이 되는 과정에서 큰 도움을 주었으나(바로 아래 이야기에서 언급됩니다), 안타깝게도 여왕의 자리를 누리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녀가 임신하였을 때, 제우스는 메티스가 낳는 아들이 자신의 권좌를 뺏을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던 것입니다. 자신도 아버지로부터 권좌를 빼앗고 왕이 되었던 것이기에 그 예언을 듣고 공포에 사로잡혔고, 메티스와 그녀의 아이를 없애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혜의 여신 메티스를 속이기란 쉽지 않았기에 한가지 꾀를 내게 됩니다. 제우스는 메티스에게 누가 더 작게 변신할 수 있는지 내기를 해보자고 하였고, 그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고 파리로 변신한 메티스를 집어 삼켜버렸습니다. 


비록 제우스의 몸 속에 갇힌 처지가 되었으나 메티스는 출산을 준비하였고, 제우스의 머리 속에서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제우스는 머리가 터질 듯한 심한 두통에 시달리게 되었고, 결국 통증을 없애기 위해 대장장이의 신인 헤파이스토스(Hephaestus, Ἥφαιστος)에게 도끼를 이용하여 머리를 가르도록 시켰습니다. 도끼로 제우스의 머리를 가르자 그 안에서 완전무장한 여신이 뛰어나왔고 그녀가 바로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Athena, Αθηνά)였습니다. 

아테나의 탄생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신들의 왕인 제우스 조차도 견디기 힘든 두통이란 질환을 접할 수 있습니다. 실제 환자들이 겪는 통증 중에서 생전 처음 겪는 극심한 두통은 그 원인이 매우 위험할 가능성이 높아 의사들이 주의 깊게 살피게 됩니다. 이런 두통을 벼락두통(Thunderclap headache)라고 하며, 뇌출혈이나 뇌경색, 종양, 혹은 뇌염 등의 원인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도끼로 머리를 갈라야 할 만큼 심한 통증이란 뇌 안의 압력(Intracranial pressure)가 매우 높아졌음을 의미하며, 대표적인 예로 거미막하 출혈(Subarachnoid hemorrhage, SAH)가 있을 때 이러한 두통을 호소하며 갑자기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증상 치료를 위해 머리를 여는 머리뼈절제술(Craniectomy)을 시행하여 머리뼈(Skull) 안의 압력을 낮추고 뇌의 손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감압성 머리뼈절제술-출처 위키피디아


제우스의 모습은 현대 의학적으로 보면 급성 뇌출혈 이후 머리뼈 절제술을 시행 받은 환자와 흡사합니다. 물론 이것은 신화 속 이야기이기에, 어떤 소독이나 마취도 없이 도끼를 사용하여 머리를 열었고, 그 안에서는 여신이 탄생하는 신비한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아테나 여신이 탄생한 이후, 도끼로 열었던 머리를 어떻게 봉합했는지에 대한 언급도 나와있지 않습니다. 신화에서는 아테나가 머리에서 빠져나간 이후, 제우스의 두통은 해결되었고 메티스는 그의 머리 속에 남아 계속 지혜를 빌려주는 역할을 맡았다고만 전해집니다.

이 신화에서는 머리를 열어야 할 만큼 심한 두통은 출산하는 여성이 겪는 산통에 버금간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그리스 신화에서 최초로 언급되는 외과적 수술 치료가 되겠습니다.



(2)   구토하는 크로노스

 크로노스(Cronus 혹은 Kronos, Κρόνος)는 티탄(titan) 신족으로, 제우스의 아버지이자 제우스 이전에 신들의 왕이었던 존재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인 하늘의 신 우라노스(Uranus, Οὐρανός)를 몰아내고 왕좌를 차지했으나, 자신도 아들에 의해 왕좌를 빼앗길 것이란 예언을 듣고 불안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는 이 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부인인 레아(Rhea, Ῥέα)가 아이를 낳을 때마다 모두 삼켜버리는 방법으로 자신의 왕좌를 지켜내려 하였습니다. 아래 그림은 잔인하게 아이를 뜯어먹는 것처럼 나오지만, 신화 속에서는 우리가 알약을 먹듯이 아이들을 삼켰다는 식으로 묘사됩니다. 그림에서는 존속 살해의 잔인성을 강조하기 위해 저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낸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자식을 삼키는 사투르누스(사투르누스는 크로노스가 로마에서 불리던 이름입니다), 1636, 폴 루벤스


다섯명의 아이가 남편에게 삼켜지는 것을 슬픔 속에 지켜보던 레아는, 여섯 번째 아이를 임신하였고 이 아이만은 빼앗기지 않기 위해 속임수를 쓰기로 결심합니다. 그녀는 아이를 낳자 마자 몰래 피신을 시킨 후, 적당한 크기의 돌을 천으로 감싸, 자신이 방금 전에 출산한 아이인 척하며 크로노스에게 넘겨주었습니다. 크로노스는 돌덩이가 자신의 아이인 줄 알고 의심 없이 삼켰고, 그렇게 마지막 아이인 제우스는 무사히 자랄 수 있었습니다.


레아의 부탁을 받은 님프(그리스 신화 속 요정)들에 의해 키워진 제우스는 성년이 되자 아버지에게 대항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크로노스를 이기기엔 역부족이었기에 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들이 필요하였고, 고민 끝에 아버지에게 삼켜졌던 형제자매들을 구출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는 형제자매들을 구출할 방법을 찾기 위해 지혜의 여신 메티스와 상의하였고, 메티스는 크로노스에게 삼켜진 신들을 토해내게 만들 구토제(emetic medicine)를 만들어주었습니다. 결국 몰래 구토제를 크로노스에게 먹이는 데 성공하였고, 크로노스는 자신이 삼켰던 자식들을 차례대로 토해내게 됩니다. 이렇게 구출된 신들이 헤스티아(Hestia, Ἑστία), 헤라, 데메테르(Demeter, Δημήτηρ) , 포세이돈(Poseidon, Ποσειδῶν), 하데스 였는데, 이들은 원래대로라면 제우스보다 형이었고 누나였으나 삼켜졌다가 나중에 세상에 나왔기에 동생이 되었습니다. 


현대 의학에서 구토제는 강한 산성 물질 등을 음독한 환자들에게서, 위에 있는 독성물질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됩니다. 황산구리황산아연 등의 물질이 이와 같은 구토 작용을 일으키게 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구토 유발을 목적으로 하는 약물이 아니어도,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는 약물 중에서도 부작용으로 인해 구토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약물 성분에 도파민(dopamine) 계통이 섞여 있는 경우(대표적으로는 파킨슨병의 증상 치료 약물들)에는, 숨뇌(medulla)의 맨아래구역(area postrema)에 있는 구토 중추와 화학 수용기 유발대(chemoreceptor trigger zone)를 자극하여 구역과 구토를 일으키는 부작용을 겪게 만들기도 합니다.

맨아래구역(붉은 원으로 표시)-출처 위키피디아


그리스 신화의 배경은 지중해 지역일 것이고, 그 지방에는 회양목과 같은 종류의 늘푸른떨기나무가 자란다고 합니다. 회양목의 경우에는 그 꽃이나 열매 등에 북신(Buxin), 북시니딘(Buxinidin)과 같은 알칼로이드 성분이 들어 있는데, 이를 과용하면 구토, 설사 등이 일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런 정보들을 보면 크로노스 신화 속에 나온 구토제에도 이 성분이 들어가 있지 않았을까 추측해보게 됩니다.

메티스가 만든 구토제는 신화 속에서 등장하는 최초의 약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회양목(학명: Buxus microphy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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