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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tros Aug 04. 2021

피 흘리며 죽어 꽃이 된 청춘-2

아도니스의 죽음

앞서 1편에 나왔던 나왔던 히아킨토스처럼, 외상에 의한 죽음은 아도니스(Adonis, Ἄδωνις)라는 청년의 이야기에서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https://brunch.co.kr/@ef4da8729340415/37


아도니스는 키프로스(Cyprus)의 공주인 스미르나(Smyrna, Σμύρνα)의 아들로, 스미르나가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Aphrodite, Ἀφροδίτη)의 저주를 받아 그녀의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임신하게 된 아들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스미르나의 아버지인 키리나스(Cyrinas, Κινύρας) 왕, 혹은 스미르나 자신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뽐내다가 아프로디테의 노여움을 샀다고 합니다.


분노한 아프로디테는 아들인 에로스를 시켜 사랑에 빠지는 황금 화살을 아버지와 함께 있던 스미르나에게 쏘게 만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자신의 아버지를 사랑하게 된 스미르나는 아버지를 속이고 동침하여 아이를 갖게 된 것이었습니다.


신의 저주에 의해서라고는 하지만, 저질러서는 안 될 패륜적인 행동을 하게 된 것이지요.

이 사실을 알게 된 그녀의 아버지는 분노하여 스미르나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패륜을 저지르게 만든 딸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죠.

스미르나와 키리나스(판화). 왼쪽에는 아버지에 침대에 숨어드는 스미르나의 모습이 보이고 있고, 오른쪽 뒤로는 그 사실을 들켜 아버지에게서 달아나는 스미르나의 모습.


스미르나는 거의 9개월의 기간 동안 멀리 도망치다가 지치게 되었고,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녀는 신들에게 자신을 살아있지도 죽어있지도 않은 존재로 만들어달라고 기도하였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어떤 신이 그녀를 몰약나무(Myrrh)로 만들어주었습니다(각주 1).


이 때 스미르나는 임신을 한 상태였기에 나무로 변한 이후에 숲의 여신 아르테미스(혹은 출산의 여신 에일레이티이아)의 도움을 받아 아들을 낳게 되었고, 그 아이가 바로 아도니스였습니다.


미녀였던 어머니를 닮아서인지 아도니스도 눈부시게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소년으로 자라게 되었고, 그 미모에 아프로디테가 반하게 됩니다.

아도니스의 탄생. 1690. Marcantonio Franceschini. 이 그림에서는 달과 숲의 여신인 아르테미스가 출산을 도와주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자신이 저주를 내렸던 여성의 아들에게 첫 눈에 반하다니... 정말 운명의 장난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아프로디테를 사랑에 빠지게 만든 아도니스는 혈기왕성한 청년으로 자라 사냥을 즐기게 되었는데, 아프로디테는 그와 어울리기 위해 평소엔 즐기지 않던 사냥까지 따라다니게 됩니다. 평소엔 햇빛과 바람에 피부가 상할까 나서지도 않을 사냥터에도 따라나설 만큼 말이죠.


한 편으로는 사랑하는 아도니스가 다치게 될까 걱정되어 위험한 맹수는 사냥하지 말라고 늘 당부했는데, 젊은 청년이 여신의 이러한 간섭을 귀담아들을 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프로디테의 연인이자 불륜 상대인 전쟁의 신 아레스(Ares, Ἄρης)가 아도니스를 못마땅하게 여겨, 아도니스가 혼자 사냥에 나섰을 때 거대한 멧돼지를 보내게 됩니다. 아도니스는 멧돼지를 보고 화살을 날렸으나 그 화살은 멧돼지의 두꺼운 가죽을 뚫지 못했고, 오히려 멧돼지를 더 흥분시켜 자신이 공격당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멧돼지의 어금니에 옆구리를 공격당한 아도니스는 그 자리에서 많은 피를 흘리며 사망하게 되지요.

아도니스의 죽음을 슬퍼하는 아프로디테.


아도니스의 죽음을 본 아프로디테는 슬픔에 가득차서 운명의 여신들을 원망했으며, 그가 잊혀지게 두지 않기 위해 그의 피에 술을 뿌려 꽃이 피어나게 했다고 합니다.


아도니스의 피에서는 그의 피를 닮은 붉은 아네모네(Anemone coronaria)가 피어났고, 이 꽃은 현재 이스라엘의 국화이기도 합니다. 아네모네의 꽃말은 '덧없는 사랑'이라고 하는데, 사랑의 여신임에도 연인을 떠나보내야했던 아프로디테의 심정이 잘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아네모네. 다양한 색상을 가진 꽃이며, 그리스어로 바람을 의미하는 'Anemos'라는 단어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이름부터 덧없는 꽃이라 할 수 있죠.


현대에도 멧돼지는 종종 인명사고를 일으키는 맹수이며, 멧돼지 사냥을 하거나 혹은 등산 중에 만나 사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뉴스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신화 속 아도니스처럼 옆구리에 멧돼지의 공격을 받게 된다면, 간이나 비장, 신장, 혹은 유강장기(소장이나 대장) 및 혈관의 손상을 받을 수 있어 매우 위중한 상태에 처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경우에는 병원으로 이송되어 응급 수술을 받더라도 대규모의 수술 후 사망에 이르거나 후유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리 아름답고 젊은 청춘이라고 해도, 뜻하지 못한 사고 앞에서는 덧없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슬픈 교훈을 주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멧돼지 습격에 의한 사망 사고는 최근까지도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사망 원인은 멧돼지에게 물린 자리에서 과다 출혈 혹은 기흉이 발생해서라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각주

1. 몰약나무의 진액은 시체의 부패를 막는 항균작용을 하여 장례를 치룰 때 사용하는 물질로 알려져 있습니다. 죽지도 살아있지도 않은 상태로 변한 '스미르나'가 몰약나무로 변했다는 이야기는 이러한 점에서 착안한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는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의 탄생 때 바친 세 가지 보물 중 하나가 바로 '몰약'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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