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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tros Aug 09. 2021

태양을 피하고 싶은 보라빛 질병

드라큘라는 포르피린증?

이번 글은 히아킨토스의 죽음과 그의 피로부터 피어난 피어난 히아신스의 보라빛을 생각하며 보시면 더 재밌을 것 같습니다.

https://brunch.co.kr/@ef4da8729340415/37


히아킨토스의 죽음 이후 피어난 꽃인 히아신스 이야기를 할 때, 그 색상이 '티로스산 염료에 의한 보라빛'과 같다는 묘사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그 티로스산 염료로 만들어낸 보라빛은 동로마제국의 황족들이 입던 옷감의 색상이기도 했구요.

티로스산 염료는 현재는 레바논에 속해있는 고대 도시 티로스(티레, Tyre) 앞바다에서 잡히는 바닷 고둥(Sea snail)를 원료로 만들었다고 하며, 그 보라빛이 너무도 아름다워 티로스의 보라색(Tyrian purple)이라고 불리웠습니다.

티로스산 염료로 물들인 옷감과 염료의 원료가 되는 바닷 고둥들. 출처-위키피디아.


이 아름다운 보라빛 염료를 만드는 과정은 간단하지 않았고(바닷 고둥의 분비선에서 나오는 보라빛 점액질을 체취하여 만들어야 함), 바닷 고둥의 숫자도 한계가 있었기에 매우 귀한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 염료는 같은 무게의 황금보다 비싸게 여겨져, 3~4세기 로마의 시세를 기준으로 현대에 환산하면 염료 1g 당 대략 20만원이 넘는 가격에 거래되었다고 합니다.


Tyrian purpule은 라틴어로는 'purpura'라고 하였는데, 현대에는 피하 출혈로 발생하는 붉은 색 혹은 보라색의 반점성 병변을 뜻하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한글 용어로는 '자반증'이라고 하죠.

Purpura가 나타난 피부의 모습. 출처-위키피디아.



티로스산 염료에 대한 '높으신 분들'의 애정은 고대 로마 제국의 뒤를 이은 '동로마제국' 시대에도 계속 되었습니다.


동로마제국은 황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그 귀한 염료로 물들여 만든 보라색 의상을 즐겨입었고, 그 색상 자체를 황족의 상징으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황제와 황후 사이의 자녀들은 보라색으로 둘러싸인 '포르피라(Porphyra)'라는 방(각주 1)에서 태어났고, 아들은 포르피로예니토스(Porphyrogenitus, Πορφυρογέννητος), 딸은 포르피로예니타(Porphyrogenita, Πορφυρογέννητη)라고 불렀다고 합니다(각주 2). 


포르피라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혈통의 정당성을 인정 받아 황위를 지키는데도 힘을 얻었고, 귀한 핏줄이라 생각하여 가급적 외국인과는 혼인도 시키지 않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모자이크화. 티로스산 염료로 물들여 만든 보라색 망토를 두르고 있습니다.


보라빛을 상징하는 포르피라라는 단어는 의학에서도 사용이 되는데요, 저 단어가 들어간 질병이 바로 '포르피린증(porphyria)'입니다.


포르피린증은 유전병과 같은 선천적, 혹은 약물 중독 등과 같은 후천적인 이유로 간 기능 이상이 발생하여 몸 안에 '포르피린(Porphyrine)'이라는 물질이 쌓여서 다양한 증상을 일으키게 되는 질환입니다. 

질환에 보라색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이유는, 환자의 대변이나 소변이 보라색으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포르피린증 환자의 소변. 햇빛에 노출되면 보라색으로 변하게 됩니다. 출처-위키피디아.


이 질환은 갑작스럽게 복통, 구토, 발열, 혈압 상승, 말초 신경 손상, 경련이나 의식 변화까지 초래하는 '급성형'과, 태양빛에 노출되었을 때 피부에 물집이 잡히거나 간지럼증, 심하게는 피부 괴사가 일어나기도 하는 '피부형'으로 나뉘어집니다.


이 중에서 피부형 포르피린증의 증상 때문에, 드라큘라 백작과 같은 뱀파이어의 모티브가 사실 포르피린증 환자들이 아니었냐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햇빛을 피해다녀야만 하는 피부형 포르피린증 환자들과, 햇빛에 닿으면 재가 되어 사라지는 뱀파이어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피부형 포르피린증 환자의 햇빛 노출 후 증상(좌), 햇빛에 의해 사라지는 뱀파이어(중간-영화 노스페라투), 햇빛에 닿으면 죽게 되는, 귀멸의 칼날 애니메이션 속 '오니'(우).


사실 포르피린증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 달갑지 않을 겁니다. 햇빛을 피해야한다고 뱀파이어와 같은 취급을 받는다면 매우 불쾌하겠죠. 이번 이야기에서는 포르피린증과 같이 특정한 외부자극을 피해야하는 환자들이 있을 때 그들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언젠가 피부형 포르피린증 환자들도 햇빛을 마음껏 쬘 수 있도록 하는 치료법이 나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의학은 그러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각주

1. 동로마제국 대황궁에 있는 황후 전용의 산실입니다.

2. '포르피라'라는 단어가 그리스어로 '보라색'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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