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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tros Aug 22. 2021

귀 안에 들어있는 놀라운 미로(labyrinth)

테세우스와 미노타우로스

어느 새 제 브런치가 40번 째 글에 도달하였습니다^^.

오늘은 어떠한 이야기를 써볼까 고민하다가,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증상인 '어지럼증'과 관련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어지럼증과 관련된 몸 속의 비밀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비밀을 바로 귀 속에 있습니다!




우리의 는 외부의 소리를 모아주는 청각 수용기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지만, 가장 안쪽에 존재하는 속귀(inner ear)에는 더욱 복잡한 기관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복잡할 것 같은 미로(Labyrinth)인데요, 이 미로는 크게는 뼈미로(Bony labyrinth)와 막미로(membranous labyrinth)로 이루어져 있으며 자세히 살펴보면 또 여러가지 하위 기관들이 있습니다.

귀의 겉모습(좌)과 속귀의 구조(우).

위의 오른쪽 그림에 나오는 속귀(inner ear)라고 불리는 구조물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로 균형감각을 담당하는 전정기관(빨간색 타원)소리를 듣는 기능을 담당하는 와우(초록색 타원)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기관에서 모인 감각 정보는 8번 뇌신경을 통하여 뇌로 전달됩니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 중에서 전정 기관은 세 개의 반고리관(semicircular canal)과 전정(vestibule), 전정미로(vestibular labyrinth), 그리고 전정 신경(vestibular nerve)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와우(Cochlea) 혹은 달팽이관이라고 불리우는 구조물과 청신경(Cochlear nerve)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만약 이 미로라는 기관에 이상이 생길 경우(ex. 미로염)에는 어지럼증과 구토, 이명 등의 증상 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전정미로라는 기관에 ‘labyrinth’라는 단어가 들어가는데, 보통 영어의 미로는 ‘maze’라고 알려져 있으므로 저 단어의 유래 역시 궁금해하실 수 있습니다. 

미로와 연관된 영화들. 두 영화 모두 '미로'라는 소재를 사용했는데, 여기서 미로는 극복해야할 시련이나 두려움을 상징하기도 하고, 또한 흥미로운 모험의 장이기도 합니다.


Labyrinth는 그리스어의 미로(Labyrinthos, λαβύρινθος)를 뜻하는 단어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유명한 영웅 중의 하나인 테세우스(Theseus, Θησεύς)의 모험 이야기에서 나오게 됩니다.


테세우스는 아테네의 왕자로, 아이게우스(Aegeus, Αἰγεύς) 왕과 아에트라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아주 아름답고 훌륭한 청년이었습니다. 그러나 테세우스가 태어나 자라고 있을 당시의 아테네는 크레타 왕국에게 조공을 바치는 상태였는데(미노스 왕의 아들 중 하나가 아테나에서 열린 올림픽 경기에서 살해되어서 사죄의 의미로 조공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크레타의 왕인 미노스가 매년 청년 일곱명과 처녀 일곱명을 바치라고 하여, 아테네에는 늘 슬픈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이렇게 크레타에서 사람을 요구하게 된 이유는 크레타 왕국에서 태어난 황소머리의 괴물미노타우로스(Minotauros, Μῑνώταυρος; Minos + Taurous = 미노스 왕의 황소라는 뜻) 때문이었는데, 이 괴물의 먹이로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희생시켰던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인신공양의 제물이 되기 위해 매년 14명의 아테나 젊은이들이 크레타로 떠나야했던 것이었죠. 


그들이 희생되는 과정도 정말 참혹했는데, 미노타우로스를 가두기 위해 다이달로스(Daidalos, Δαίδαλος)라는 장인(匠人)이 만든 거대한 미로(Labyrinthos, λαβύρινθος)에 그들을 들여보내고, 나올 수 없는 미로에 갇힌 채로 탈출하기 위해 헤매던 도중에 미노타우로스에게 잡혀 죽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미노타우르스를 묘사한 그림. 어찌 보면 남과 다른 모습을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미로 안에 갇혀진 미노타우로스도 이 비극의 일부분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아테네 백성들의 비극을 알게된 테세우스는 왕자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테세우스는 아버지 아이게우스 왕을 찾아가, 자신을 다른 제물로 바쳐질 젊은이들과 함께 크레타로 보내달라고 하였습니다. 본인이 미노타우로스를 없애고 젊은이들을 구해 같이 살아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말이죠. 


그 말을 들은 아이게우스 왕은 커다란 슬픔에 빠졌지만(테세우스는 계속 자식을 얻지 못하던 그가 신탁을 통해 겨우 얻은 아들이었으니까요), 아들의 확고한 뜻을 거두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테세우스에게 반드시 돌아올 것을 당부하며, 무사히 살아 돌아오게 되면 배의 꼭대기에 하얀 깃발을, 혹시라도 나쁜 결과가 있게 되면 검은 깃발을 달고 와줄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아버지와 고향 아테네를 뒤로 한 채로, 다른 13명의 젊은이들과 함께 크레타에 도착한 테세우스는, 미노스 왕의 딸인 아리아드네(Ariadne, Αριάδνη)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고, 그녀의 도움으로 미로를 빠져나올 방법을 찾게 됩니다.


아리아드네는 사랑하는 테세우스를 도와주기 위해, 실타래를 구하여 미로 속으로 들어가는 테세우스의 손에 쥐어 주었고, 그 실타래를 입구부터 풀면서 들어갔던 덕분에 미로에서 다시 돌아나오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죠. 

테세우스에게 실타래를 쥐어주는 아리아드네. 미노타우르스가 기다리는 미로로 들어가는 테세우스의 표정레서 비장함이 느껴집니다.


사랑의 힘으로 만들어진 지혜로 미로 속을 빠져나온다는 것은, 아주 아름다운 클리셰인 것 같습니다.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미로 속을, 가느다랗지만 끊어지지 않는 사랑의 실을 통해 헤쳐나오는 것이니까요. 어찌보면 고구려 시대의 호동왕자와 낙랑공주 이야기와도 겹쳐집니다. 사랑 앞에서 나라도 포기하는 점에서 말입니다.

그림. 미궁 속에서 미노타우르스와 대적하는 테세우스. 둘 다 중세 시대에 그려진 작품인지, 테세우스와 아리아드네 모두 중세시대의 기사와 공주와 같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어쨌든 테세우스는 전설적인 영웅 답게 미로를 빠져나오기 전, 미로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미노타우로스를 없애는 것에도 성공하게 됩니다. 테세우스의 활약 덕에 제물로 바쳐졌던 젊은이들은 모두 무사할 수 있었고, 이 탈출에 가장 큰 도움을 준 아리아드네와 함께 모두 크레타를 떠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테네로 돌아가는 항해 중에 ‘아리아드네를 고국으로 데리고 돌아가면 큰 불행을 얻을 것이다.’라는 신탁을 듣게 된 테세우스는 안타까운 마음을 억누르며, 항해 중에 잠시 머무르던 낙소스(Naxos) 섬이란 곳에서 잠들어 있던 그녀를 남겨둔 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림. 낙소스 섬에 버려진 아리아드네(by John William Waterhouse).


단잠에서 깨어났을 때, 버려진 것을 알게 된 그녀의 심정은 정말 절망적이었을 것 같습니다.

사랑하던 남자에게 버림을 받고 실의에 빠져있던 아리아드네의 앞에 포도주의 신인 디오니소스가 나타나 그녀를 위로하며 아내로 삼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사실 상, 적국(敵國)의 공주였던 그녀를 데리고 돌아가 왕비를 삼기엔 여러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있어서 버려두고 떠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그녀를 위로해 줄 신이 나타났다는 것이 그나마 작은 기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아테네로 돌아가게 된 테세우스는, 고향에 무사히 돌아간다는 기쁨 때문인지, 아니면 사랑하던 여성을 배신하고 떠나야했던 충격 때문인지, 배의 깃발을 흰색으로 바꾸는 것을 깜빡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해안가에서 검은 깃발을 단 채 돌아오는 배를 본 아이게우스 왕은 아들을 잃었다는 비통함에 못 이기고 절벽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아이게우스 왕이 빠져 죽은 바다는 지금 까지도 그의 이름을 따서 에게해(Aegean Sea)라고 불리게 됩니다.

에게해에서 바라본 수니온 곶의 전경. 아이게우스 왕은 포세이돈 신전이 세워진 수니온 곶에서 아들의 귀환을 기다리다가, 검은 깃발을 확인하고 투신했다고 합니다.


귀국과 동시에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은 테세우스 역시 큰 슬픔에 빠졌지만, 왕위에 올라 아테네 왕국을 다스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로도 수많은 업적을 이루며 이름을 날리게 되었지만, 본의 아니게 은인이자 연인인 아리아드네를 배신했던 탓인지, 그의 가정사는 순탄하지 않았다고 전해집니다.


미로처럼 꼬인 가족 관계 때문에 종국에는 왕위도 잃고 나라에서 추방되어 쓸쓸히 죽어가야 했다고 합니다(이에 관한 이야기에서 나온 단어가 바로 파이드라 콤플렉스(Phaedra complex) 입니다).

미로의 모습.


미로라는 존재는 그 안의 구조가 복잡하여 탈출이 어렵다는 점도 있지만, 그 구조물 안을 헤매이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공포감과 어지럼증을 느끼게 하기 충분할 것입니다.


우리 귀 안의 미로 역시, 이상이 발생했을 경우 어지럼증을 유발할 수 있으며, 그 어지럼증을 처음 겪는 환자에게는 미노타우로스가 있는 미로에 갇힌 것만큼이나 커다란 공포감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묘하게 적절한 이름이 붙여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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