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atros Sep 13. 2021

히포크라테스 선서: 두 번째 맹세

의사들은 모두 아스클레피오스의 후예!

https://brunch.co.kr/@ef4da8729340415/47


이전 글에 이어서, 이번에는 아폴론의 아들인 아스클레피오스의 이야기로 넘어가 봅니다.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 Ἀσκληπιός)는 그리스-로마 시대에 ‘의술의 신’으로 숭배를 받았던 존재입니다. 


그는 아폴론과 테살리아의 왕녀 코로니스(Coronis, Κορωνίς)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코로니스가 죽은 후에 그녀의 몸에서 꺼내어졌습니다.


아폴론의 애인이었던 코로니스는 아폴론과 연인 관계였던 와중에 또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고, 그 사실이 아폴론에게 들켜 분노한 아폴론의 화살을 맞아 죽게 되었습니다(각주 1). 


비록 아폴론이 그녀를 죽이긴하였으나 매우 사랑하긴 했었는지, 코로니스의 감시를 위해 붙여 놓았던 까마귀에게 화풀이를 하며 하얀 색이었던 까마귀의 깃털을 검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림. 코로니스를 살해한 아폴론, 1759년, Johann Joffany. 코로니스의 사체 위로 검게 변한 까마귀가 선회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화장되기 전에 그녀의 배속에 있던 태아의 존재를 알게 된 아폴론이 그 아이를 가엽게 여겨, 코로니스의 사체로부터 꺼내어 살리게 되었습니다.

현대 의학적 관점으로 보면 이미 죽은 산모의 몸에서 제왕 절개(Cesarean section)을 통해 태아를 구해낸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물론 현대의 제왕 절개 수술은 매우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아래의 그림과 같이 세로 절개 방법으로 진행하지 않습니다.

그림. 코로니스의 자궁으로부터 꺼내어지는 아스클레피오스. 목판화. The 1549 edition of Alessandro Benedetti’s De Re Medica.


어쨌든 이렇게 태어난 아이는 그리스 신화 속 최고의 현자인 케이론에게 맡겨져 위대한 의사로 자라나게 됩니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의술은 죽은 사람을 살릴 정도에 이르렀는데, 자꾸 죽은 사람들을 살려내자 저승의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염려한 죽음과 지하세계의 신인 하데스(Hades, ᾍδης)가 제우스에게 아스클레피오스를 죽일 것을 탄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아스클레피오스는 제우스의 번개를 맞고 사망하게 됩니다. 


아들의 죽음을 슬퍼한 아폴론의 탄원에 의해 사후에 신으로 승격되어 의술의 신이 되었다고 하며, 아스클레피오스를 모시는 신전은 병원의 역할도 겸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상징은 한 마리의 뱀이 감긴 지팡이로 아스클레피오스의 신상을 구분하는데 도움이 되는 특징입니다.

그림. 아스클레피오스의 조각상. 뱀이 한 마리 감겨 있는 지팡이를 들고 있는 남자는 거의 100% 아스클레피오스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뱀이 감겨있는 지팡이의 유래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스클레피오스가 죽은 글라우코스(Glaucos, Γλαῦκος: 크레타의 왕 미노스의 아들)를 살려내기 위해 치료를 하는 도중에 갑자기 뱀이 나타났고, 그 뱀을 보고 놀라 지팡이로 때려 죽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치료하지만, 파충류에겐 가차 없는 성격이었나 봅니다.

어찌 보면, 거대한 뱀 퓌톤을 사냥했던 아폴론의 아들다운 행동일 수도 있구요.


이 때 또 다른 뱀이 어떤 풀을 물고 나타나 죽은 뱀에게 문지르자, 죽었던 뱀이 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 상황을 관찰한 아스클레피오스가 죽은 것을 살려내는 능력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뱀이 휘감긴 모양의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한 편으로는 뱀이 물고 왔던 풀로 인해 죽은 사람을 살리는 법을 알아냈다고도 하는데, 뱀과 불사의 비밀 간의 관계성은 수메르 신화인 길가메시 서사시에도 나오는 것으로 보아 고대에는 널리 통용되던 개념인 것으로 추측할 수 있겠습니다. 

그림. 수메르 신화 속 최고의 영웅인 길가메시.


서사시에 따르면, 길가메시는 영생을 얻고자 신비의 풀을 찾았는데, 그가 목욕 혹은 잠시 쉬는 사이에 뱀이 나타나 그 풀을 물고 달아나 버립니다. 그래서 길가메시는 영생을 얻지 못하고, 그 풀을 먹은 뱀은 허물을 벗으면서 영생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실제로는 뱀도 영원히 살지는 못하지만, 수메르 사람들에게는 불로불사의 비밀을 지닌 생물로 여겨졌던 것 같습니다.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는 이후로 수많은 의사 혹은 의료 관련 단체의 상징으로 널리 사용되었으며, 한국에서도 수년 전까지는 대한의사협회의 상징으로 뱀이 감긴 지팡이 그림이 사용되었습니다.


이전 대한의사협회의 로고인 뱀이 두 마리로 이것은 전령의 신인 헤르메스(Hermes, Ερμής)의 ‘케리케이온 지팡이(각주 2)’였습니다.


헤르메스는 저승으로 영혼을 안내하는 역할도 담당하는 신으로, 의사의 상징으로 저 지팡이를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 볼 수 있으며, 현재 의사협회의 로고는 뱀 한 마리가 글자를 감싸고 있는 형태로 수정되었습니다.

그림. 대한의사협회의 로고들. 좌측은 이전 로고이며, 우측은 최근(2018년)에 바뀐 로고입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살아 생전에 에피오네(Epione, Ἠπιόνη)라는 여신과 결혼하여 수많은 자손들(각주 3) 을 남겼고, 그들은 모두 의술과 관계된 신들로 추앙을 받았습니다.


부인인 에피오네 역시도 의술과 관련된 신격을 지녔는데, 그녀는 진정(soothing)을 담당하는 여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림. 아스클레피오스와 에피오네. 기원전 400년 경에 만들어진 부조. 가운데에 앉아 있는 남자가 아스클레피오스이며, 그의 오른쪽에 서있는 여성이 에피오네.


질병 치료의 과정에서 환자를 편안하게 하고 통증을 누그러뜨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므로,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의술의 신의 배우자가 가져야할 덕목이 ‘통증을 달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추측해볼 수 있겠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자손들에 대해서 다뤄볼 예정입니다.







* 각주


1. 코로니스가 아폴론 몰래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는 이야기도 있고, 아폴론은 불로불사하는 신이기 때문에 언젠가 늙고 병이 들 자신에게 싫증이 날 것을 두려워 하여 임신한 것을 알고도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2. 고대 그리스어로는 κηρύκειον, 라틴어로는 카두케우스(caduceus) 라는 명칭으로 부릅니다.


3. 아스클레피아드(Asklepiade). 그리스의 철학자인 플라톤은 히포크라테스를 아스클레피아드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제 네이버밴드 ID에도 저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히포크라테스 선서: 첫 번째 맹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