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여러 종류의 데스 게임물의 짜집기'라고도 하고, '한국의 정서가 통했다'라고도 합니다.
사실 평가야 어찌되었든 수많은 사람들이 보고 열광하고 있으며, 드라마 속 게임을 실제로 해보는 사람들도 많고, 오징어게임 속 의상들은 할로윈데이 코스튬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시청하고 리뷰하고 감탄 혹은 비판하는 오징어게임에 대해서, 제가 또 비슷한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기엔 저보다 훨씬 더 깊이 있게 감상하고 해석하는 분들이 많으니까요.
저는 그저 '그리스-로마 신화' 덕후로서,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 '오디세이아'와 오징어게임을 비교해보고자 합니다(본격 오디세이아 영업).
오디세이아란 무엇인가?
호메로스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트로이 전쟁을 다룬 '일리아스'입니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의 부적절한 사랑의 도피로 인한 후폭풍이, 신들까지 간섭하는 거대한 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영웅들이 장렬하게 싸우다 죽어가는 내용이 잔뜩 나오죠.
많은 분들은 비장미 넘치는 트로이 전쟁, 그 중에서도 트로이 목마와 그로 인한 트로이의 멸망에 대해서는 많이 듣고 보았기에(영화 '트로이'가 바로 이 내용이죠), 일리아스에 대해서는 꽤 익숙하실 겁니다.
영화 속에 나오는 트로이의 목마
그러나 트로이 멸망 이후, 수많은 그리스의 영웅들과 트로이의 난민들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그 이후의 내용이 담긴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면 '그런 이야기도 있었어?'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비록 '본편'이라고 할 수 있는 '일리아스'보다는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들도 찾아보면 흥미진진한 것들이 아주 많습니다.
이러한 '트로이전쟁:에필로그' 격인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신화적이고 모험담스러우면서도, 일종의 서바이벌물과 같은 느낌이 나는 이야기가 바로 지금부터 소개할 '오디세이아: 오디세우스의 귀향 이야기' 입니다.
험난하기 그지 없는 오디세우스의 귀향길
오디세우스는 그리스의 작은 도시 '이타카'의 왕으로, 트로이 전쟁에서는 '승자' 포지션에 속하게 됩니다.
비록 전쟁 중에는 무용보다는 지략으로 싸웠기에, 전형적인 고대 그리스식 장수인 '아킬레우스'와 같은 찬양이나 숭배는 받지 못했을지언정 승리자로서 금의환향할 자격은 충분히 갖추고 있었죠.
게다가 고향에는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아내 '페넬로페'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한시 바삐 이타카로 돌아가고 싶었죠.
이타카와 트로이의 실제 위치
사실 이타카와 트로이는 아주 먼 거리가 아니었습니다.
해로로 대략 1000km의 거리이며, 현재 선박으로는 20시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무리 고대 선박이라고 해도, 항해술에 뛰어난 그리스 사람들로서는 그리 오래지 않아 갈 수 있는 거리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디세우스는 집에 가기까지 장장 20년을 바다 위에서 헤매게 됩니다.
그 원인 중 하나는 포세이돈의 아들이기도 한, 퀴클롭스(외눈박이 거인) 중 하나인 폴리페모스의 눈을 멀게 만들고 그를 조롱하기까지 했던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오디세우스는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아 그의 영역인 바다에서 끊임 없이 고통 받고 헤매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이 사건 뿐만 아니라, 같이 항해를 하는 부하와 선원들이 자꾸 사고를 쳐서 꼬이게 만든 경우도 많습니다.
기껏 바다가 평탄하도록 나쁜 바람을 가둬둔,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의 가죽 주머니를 보물 주머니 인 줄 알고 열어보다가 이타카를 코 앞에 둔 시점에서 다시 거센 바람에 의해 밀려나기도 했고, 마녀 키르케의 섬에 올라가서 그녀의 유혹에 넘어가 마법에 걸려 돼지로 변하기도 했으며, 티탄 신족인 헬리오스(아폴론 이전의 태양신)가 다스리는 섬에 상륙했을 때는 절대 먹지 말라는 신에게 봉헌된 소를 잡아 먹고 저주를 받기도 합니다.
물론 바다의 괴물 스퀼라와 카리브디스 사이(Between Scylla and Charybdis)를 지나야하는 상황과 같이 어쩔 수 없이 선원들을 잃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느 쪽으로 가도 큰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서 그나마 6명만 잡아먹는 스퀼라라는 괴물 쪽(카리브디스는 배 전체를 난파시킬 위력)으로 가까이 배를 움직일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스퀼라(오른쪽 위의 뱀과 같은 괴물)와 카리브디스(왼쪽 아래의 소용돌이)
이러한 수많은 고난 끝에 결국 오디세우스는 끝끝내 홀로 최후까지 살아남아 20년만에 그리던 고향에 도착합니다.
오디세우스의 육체는 늙고 지친 상태였지만, 그가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기다리는 왕궁에 들어섰고, 그의 왕국와 아내를 탐내던 불한당들(오디세우스가 돌아올 기미가 안 보이자 페넬로페에게 재혼은 강요하며 왕국을 넘보던 자들이었습니다)을 모두 살육하고 자신의 왕좌를 되찾게 됩니다.
노쇠한 모습의 오디세우스가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강궁을 쏘던 장면을 모티프로 삼은 영화사 로고
오디세이아와 오징어게임의 닮은 점? (오징어게임 스포일러 포함)
그럼 이 고대의 전설이, 과연 어떤 점에서 현대의 작품인 '오징어게임'과 닮아 있을까요?
첫번째로는 주인공들의 목표입니다.
두 이야기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평온한 일상'으로의 복귀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오징어게임의 성기훈은 빚과 가난을 청산하고 '아픈 어머니'를 치료하고 '이혼한 아내 및 계부와 함께 미국에 가게 될 딸'을 다시 데려와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비록 그 전까지의 막장 행각을 보면 가정과 일상의 붕괴는 자업자득이지만 말입니다).
오디세우스 역시 그리스 신화 속 다른 영웅담의 주인공들과 달리, 그저 그리운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본인 특유의 약간은 경솔하고 충동적인 성격으로 인해 신의 아들을 모욕했다가 저주를 받긴 했지만, 자신의 파란만장한 모험에서 얻고 싶었던 것은 무슨 영예나 보상이 아닌 그저 귀향이었습니다.
성기훈
두번째로는 주인공들의 캐릭터성 입니다.
둘 다 기본적으로 무력이 강조되진 않으며, 어느 정도 운도 따르고, 머리도 그럭저럭 굴리며, 사람들과 협력하려 하고, 옆에 적절한 조언자가 붙기도 합니다.
성기훈은 조폭 앞에서는 바로 '깨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몸싸움에는 도무지 소질이 없어 보입니다. 그냥 보통 성인 중년 남성의 평균 정도랄까요? 그러나 유리 다리 건너기 숫자 뽑기에서 운이 아주 좋기도 하고, 달고나 게임에서 해결법을 찾아내기도 하며, 기본적으로 참가자들과 협력하여 이 게임이자 시련을 이겨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나름 적절한 순간에 오일남이나 조상우 같은 캐릭터의 지혜 덕에 살아남기도 하죠.
오디세우스는 '영웅'은 맞으나 다른 무력이 강조되는 영웅들에 비해서는 힘이 강조되는 편은 아니며(물론 성기훈보다는 매우 강할 것 같긴 합니다만), 그럭저럭 운이 좋기도 하고(사실 부하들이 죽어나갈 때 이상하리만치 본인은 안 죽습니다), 지혜로 유명한 사람답게 여러가지 시련들을 머리를 써서 해결해나갑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그에게 호의를 가진 지혜의 여신 아테나가 살짝씩 이런저런 지략에 대해 귀띔을 해줍니다.
드라마 속 게임의 겉모습만 보면 오디세우스가 겪은 시련과는 별 다른 공통점이 없어보이지만, 조금 더 깊이 살펴보다보면 비슷한 모습도 보입니다. 어쨌든 둘 다 생존게임이니까요.
예를 들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폴리페모스의 동굴 탈출 때와 비슷합니다. 양들의 배 아래에 숨어서 '함부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이 필승의 전략이며, 눈이 먼 폴리페모스의 감시를 피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술래가 자신들을 보지 않을 때 최대한 많이 움직여야하는 '무궁화꽃 게임'과 흡사한 규칙이죠.
달고나 게임에서의 성기훈의 성공과 같은 경우는, 오디세우스가 살아남기 위해 고민해냈던 온갖 잔꾀와 흡사한 점이 있습니다(폴리페모스에게 술을 먹이기 라든가, 노래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세이렌들의 구역을 통과할 때 귀를 막는다던가).
구슬뺏기 게임처럼 신뢰하고 친분이 쌓인 상대를 포기해야만 하는 경우는, 스퀼라와 카리브디스 사이를 지나갈 때의 오디세우스가 겪었던 고민과 비슷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최후에 모두가 죽고 혼자 살아남은 성기훈의 모습은, 홀로 이타카에 도착하여 구혼자들의 피를 묻힌 채 왕좌에 다시 앉게된 오디세우스와 매우 닮아 보입니다.
네번째로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관전자들의 존재입니다.
오징어게임에는 엄청난 부자들로 보이는 V.I.P 들이란 존재가 나옵니다. 게임 참가자들과는 완전히 격리되어, 예전 로마 시대 콜로세움 관객석의 황제나 귀족들처럼 화려하게 치장하고 게임의 진행 과정을 지켜봅니다.
그들은 삶의 무료함과 권태를 게임 참가자들의 처절한 사투를 보며 즐거워하는 방식으로 해소합니다.
참가자들을 인간이라기 보다는 게임 속의 캐릭터나 장기판 위의 말처럼 보는 것이죠. 사실 인간으로 보지 않기에 죄책감 없이 즐길 수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징어게임 속 vip들. 동물 가면을 쓴 모습은 '이집트 신화 속 신들' 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저들이 인간성을 잃었다는 비유일 수도 있구요.
오디세이아 속에서는 올림포스의 신들이 오디세우스의 항해를 지켜보며, 도움을 주기도 하고 시련을 내리기도 합니다. 망망대해를 헤매는 오디세우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는 것은 오직 신들 뿐인 것이죠.
어찌 보면 오징어게임보다 더욱 잔인한 설정이기도 하고 고전적인 설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과 다른 존재이기에 오디세우스에게 시련을 내릴 때 특별히 죄책감을 느끼거나 하진 않습니다. 인간을 가지고 노는 것은 우월한 존재인 신의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이죠.
오징어게임이나 오디세이아 모두 공통적인 관전자인 '우리(시청자 및 독자)'가 있기도 합니다. 감정이입을 하거나 추임새를 넣긴 하지만, 참가자와 오디세우스에게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점에서 '안전이 보장되지만 참으로 무력한 존재'입니다. 과연 우리가 '간섭할 힘'을 가지게 되면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게 될까요? 그런 상상을 해보는 것도 꽤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다섯번째로는 선택과 자유의지에 대한 언급입니다.
두 이야기 속 캐릭터들은 '불가항력(삶이 경제적으로 막다른 골목에 몰린 상태/신들이 시련을 내린 상태)'적으로 서바이벌의 장에 떨어지게 되지만, 중간중간 선택의 순간이 나타납니다.
오징어게임은 전체 참가자들의 투표 형식이지만 게임을 그만둘 선택의 여지가 있고, 오디세이아에서는 아이올로스의 당부(가죽주머니를 절대 열지 말라)만 잘 지켰으면 이타카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이야기에서 모두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욕망에 의해 '자유의지'를 가지고 게임에 다시 참가하고, 바람이 들어있는 가죽주머니를 열게 됩니다.
비록 그 선택의 끝이 참혹했을지언정,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인간답다'는 특징을 보여줍니다.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이 항상 올바른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유의지와 선택의 의지를 가진다는 것 자체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이 인간과 삶이라는 존재의 의의니까요.
여기까지가 저의 오징어게임 이야기를 이용한 오디세이아 영업이었습니다.
끝으로 '이야기' 자체에 대해 잠깐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이야기의 힘
잘 만들어진 이야기들에는 힘이 있습니다.
사람을 끌어들이고,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며, 기억 속에 각인되기도 하죠.
오징어게임과 오디세이아 모두 이를 접하는 사람들을 매혹하는 힘이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귀기울이게 만들고자 하는 점에서 호메로스와 넷플릭스의 목적은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현대의 호메로스가 되고 싶은 넷플릭스가 과연 어떠한 매혹적인 이야기를 또 만들어낼지, 그리고 이미 그 인기가 검증된 작품 오징어게임은 '오디세이아'처럼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수 있을지... 앞으로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