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달로스에서 프로메테우스로
MCU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세 번째, [노웨이홈]의 개봉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친절한 이웃 컨셉의 가장 서민적인 영웅, 그렇기에 가장 사랑 받는 히어로이기도 한 스파이더맨을 다루는 영화는 항상 화제를 몰고 다닙니다.
저는 이전에 영화화된 버전들(샘 레이미 감독 버전 등등)도 좋아하지만, 이번에 MCU에 편입되어 만들어진 발랄하고 어린 스파이더맨의 느낌도 매우 좋아합니다.
바야흐로 진정한 21세기 히어로 같아서 참 귀엽기도 하구요ㅎㅎ.
MCU 스파이더맨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아이언맨의 멘티로서의 정체성이 상당히 강조된다는 점입니다.
기존에 가장 인기 있고 중요한 히어로인 아이언맨의 스카웃으로 '시빌워'에 합류하며 화려한 데뷔를 하였고, 이후로도 충실하게 그의 멘토링을 받으며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이언맨이 사망한 이후를 다룬 내용인 '파프롬홈'에서도 아직까지는 아이언맨의 그림자가 강하게 남아있음을 여러모로 보여주기도 하구요.
그리고 세번째 개인 영화인 노웨이홈에서는 드디어 멘토링이 종료된 채 스스로 세상의 거친 바람과 싸우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론과 대중에 노출된 힘없는(사회적으로) 고등학생으로서의 모습 뿐만 아니라, 멀티버스의 혼란 속에 던져진 히어로로서의 모습을 모두 다루게 될 것 같아서 매우 기대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아직 개봉하지 않았기에 오늘은 스파이더맨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을 예정입니다.
오늘은 이미 우리 곁에서 떠나가긴 했지만, MCU의 시작이었으며, 지금껏 계속 그 영향력이 남아있는 위대한 히어로, 스파이더맨의 멘토인 아이언맨에 대해 제 나름대로의 그리스 신화적 해석을 해보고자 합니다.
[어디까지나 아이언맨과 토니 스타크에 대한 제 개인적인 해석글입니다(MCU). 제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께도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MCU 속 캐릭터들은 모두 매력적이지만(배우의 시너지까지 더해져), 그 중에서도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캐릭터는 바로 [아이언맨] 입니다!
아이언맨, 아니 그 안에 있는 '토니 스타크'의 매력은 다음의 대사로 갈음할 수 있습니다.
“천재, 억만장자, 플레이보이, 박애주의자.”
토니 스타크는 저 위의 수식어들만으로도 충분히 화려하고 멋진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언맨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그의 삶은 신화적인 성격을 띄어가게 됩니다.
갑자기 신화??? 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그리스-로마 신화 덕후인 제가 볼 때, 토니 스타크는 다이달로스(Daedalus, Δαίδαλος)처럼 살다가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Προμηθεύς)로 변모해갑니다.
아직 아이언맨 수트를 만들기 전에도, 토니 스타크는 이미 그리스-로마 신화 속 최고의 기술자이자 발명가인 다이달로스와 같은 면모를 갖추고 있습니다.
테러 집단에 납치를 당하고 탈출하는 과정에서도 매우 다이달로스의 신화와 흡사한 모습을 보여주죠.
다이달로스와 닮아서 처음에는 자신의 재능을 좋은 일에 쓰기보다는 '무기'를 만들어 돈을 버는데 열중합니다. 다이달로스 역시 크레타의 '미노스(Minos)' 왕이나 왕비인 파시파에(Pasiphae, Πασιφάη)가 원하는 것들을 만들면서 살아갑니다(각주 1).
그러다가 결국, 자신들의 발명품들과 얽힌 문제로 각자 감금을 당하게 되죠(각주 2). 토니는 사막의 던전 같은 감옥에, 다이달로스는 높은 탑에 갇히게 됩니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자신들의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위대한 발명품을 만들고, 그 힘으로 탈출하게 됩니다.
이 탈출 과정에서, 다이달로스는 아직은 젊고 혈기왕성한 아들인 이카루스(Icarus, Iκαρος)에게 날개를 달아주며, 주의 사항을 세심하게 설명합니다. 이 부성에 가까운 배려와 도움을 주는 역할을 아이언맨 영화 속 '잉센 박사'가 보여주는데, 결국 잉센 박사가 죽음에 이르는 것을 보면, 아이언맨 영화의 토니 스타크와 잉센은 서로에게 다이달로스와 이카루스 역할을 해주었던 것 같습니다.
토니 스타크가 탈출에 성공하고 나서 부서진 수트와 함께 사막에 누워있는 모습은 추락한 이카루스의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아마 이 시점에서 그 안의 이키루스는 죽고 '다이달로스'적인 면모만 남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그가 '영웅'이 되기엔 부족한 상태입니다.
그리스-로마 신화 속에서도 다이달로스는 영웅이 되진 않았습니다. 그저 기술자였고, 발명가였으며, 날개를 가지고 탈출한 이후에는 '시실리 섬'에 도착하여 살았다고 전해지죠. 게다가 자기보다 재능이 뛰어난 조카를 질투하여 사고사시켰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결국 이 조카는 '자고새(Partridge)'로 변하게 됩니다.).
이러한 모습은 아이언맨 영화(1편) 속에서, '오베디아'라는 배신의 아이콘이 잘 보여주죠. 거의 삼촌처럼 굴다가 토니 스타크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역할이니까 말입니다.
토니 스타크는 이러한 시련을 통해, 다이달로스이자 이카루스이기도 했던 자신 안에서 여러가지 나쁜 면들을 제거해 갑니다. 마치 육신을 불태워야 가장 순수한 영혼만 남는다는 고대 그리스인들의 사고 방식처럼, 가장 순수하고 고매한 부분만 남겨 영웅의 길로 들어서는 것 같습니다.
이후 MCU 영화들 속에서, 다이달로스와 달리 자신의 조카뻘인 아이들을 바르게 이끌어주고 도와주는 것만 봐도, 토니 스타크가 MCU에 처음 등장했을 때의 자신과 매우 달리졌음을 보여주죠.
다이달로스의 나쁜 면모들을 벗은 토니 스타크가 프로메테우스로 변모하는 첫 순간은 바로 아이언맨 1편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그는 더 이상 평범한 발명가가 아니라 영웅의 영역으로 발을 디딘 것이죠.
이후에도 그의 발랄하고 약간은 심술 맞은 성격이 완전히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더 이상 이전의 천재-억만장자-발명가가 아닌, 인류의 수호자가 됩니다. 그리고 프로메테우스와 마찬가지로 이기기 힘든 적 앞에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계속 싸우죠.
아이언맨은 타노스와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와 대립하며 그들의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실제로 타노스는 원작 코믹스에서 그리스 신화 속 신들에서 모티프를 따온 '이터널스'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안배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참으로 묘하게 제우스와도 비슷한 느낌을 줍니다.
이러한 영웅적이고 위대한 저항의 끝에 아이언맨과 프로메테우스 모두, 그의 고매한 뜻을 관철한 대신에 죽음, 혹은 그보다 더 고통스런 형벌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의 의지가 인간의 문명을 밝히고 이후로도 이어지듯이, MCU 속에서도 토니 스타크의 의지는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 인류가 프로메테우스가 넘겨준 불씨를 받아 문명을 번성시키고 그의 정신을 계속 기억하듯이, MCU 속의 다음 세대 영웅들이 아이언맨의 의지와 위상을 이어 받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이야기가 이어지기를 기다리고 지켜보는 것입니다.
*각주
1. 미노스 왕은 파시파에와 황소 사이에 태어난 괴물인 '미노타우루스'를 가둘 미로를 원하였고, 파시파에는 황소와 정을 통하기 위한 '암소 형태' 도구를 만들기를 원하였습니다. 둘 다 좋은 발명품은 아니었죠.
2. 다이달로스는 아리아드네 공주의 부탁에 따라 미로를 탈출할 방법을 알려줘서, 미노스 왕에 의해 탑에 갇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