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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tros Mar 24. 2022

DC의 오이디푸스: The Batman (2022)

배트맨과 리들러의 관계성은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이야기의 변주?

그리스-로마 신화 속에는 수많은 영웅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의 뛰어난 능력과 비범한 삶의 여정들은 현대에도 영향을 주어, 우리가 감상할 수 있는 수많은 히어로물의 원형이 되거나 새로운 캐릭터 창조에 영감을 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로마 신화 속 최강의 영웅인 헤라클레스는 슈퍼맨이나 헐크와 같은 강력한 힘을 가진 히어로들과 비슷하고, 나라를 위해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테세우스는 캡틴 아메리카, 신에게 선물 받은 무구의 힘을 빌려(템빨이라고나 할까요) 메두사와 케토를 처치한 페르세우스는 원더우먼이나 아이언맨(발명가 속성을 생각하면 +다이달로스)이 지닌 어러가지 특수 아이템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럼 최고의 인기 히어로 중 하나인 다크나이트 배트맨은 어떤 신화 속 영웅과 닮아 있을까요?


저는 처음에 일신의 힘은 평범한 편에 속하지만, 여러가지 아이템으로 자신을 강화한다는 점에서 DC의 간판 히어로인 ‘배트맨’도 페르세우스 과의 영웅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새로 개봉한 ‘더 배트맨’을 보니 배트맨과 어울리는 영웅은 따로 있었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오이디푸스’입니다.

오이디푸스 이야기 중에서는 소포클레스 작품인 '오이디푸스 왕'이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오이디푸스라 하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는 정신의학 용어의 기원으로 알려져, 단순히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존속살해와 근친상간이란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지른 남자의 이야기로 생각하기 쉽습니다(혹은 조금 더 나아가 수수께끼를 내는 괴물 스핑크스가 나오는 이야기). 

그러나 이 비극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고대에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짜임새 있고 비장한 작품이란 감상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이디푸스 역시 틀림없이 괴수(빌런)을 처치한 당당한 영웅 중 한 명이란 사실도 알 수 있고요.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귀스타브 모로의 작품.


어쨌든 오이디푸스 이야기가 아무리 흥미로운 작품이라 해도, 2022년에 만들어진 ‘더 배트맨’이란 영화와 무슨 연관이 있기에 위와 같은 제목을 지었을까 라는 의문이 드실 겁니다.

그리스-로마 신화 덕후의 관점이긴 합니다만, 두 이야기 및 주인공 캐릭터 사이에서 의외로 여러가지 공통점이 발견되기에 한 번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영화 내용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으니, 원치 않으시는 분은 뒤로 가기를 부탁드립니다.




1.     첫번째 공통점: 이야기 속 주인공과 빌런의 기원이 모두 선대의 ‘죄’에 의한 것


오이디푸스 이야기의 매력을 느끼고 ‘더 배트맨’과의 공통점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오이디푸스 이야기의 시작점부터 자세히 살펴봐야 합니다.

‘더 배트맨’ 속 브루스 웨인의 고뇌의 시작이자 빌런 ‘리들러’의 악행의 시작점이 그들 아버지 세대의 문제(원죄)로 인한 고담의 부패로 인한 것임을 생각해보면, 오이디푸스가 겪는 비극의 원인과 매우 유사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이디푸스가 겪게 되는 끝없는 비극 역시 그의 아버지이자 테베의 왕 라이오스(Laius, Λάϊος)가 저지른 죄악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이오스는 테베의 시조인 카드모스 왕(유럽의 어원이 되는 에우로페의 오빠)의 증손자로 왕위 계승전에 휘말려 죽을 위기에 처하자 테베의 백성들이 다른 나라로 피신시켜 주었습니다. 라이오스가 도망쳐 몸을 의탁한 곳은 ‘피사’라는 나라로 그 왕국을 다스리던 왕은 탄탈로스의 아들이자 죽었다가 살아난 존재인 ‘펠롭스’였습니다. 


라이오스가 자신을 보호해준 펠롭스에게 감사하며 테베의 왕위를 되찾은 후 감사하는 것으로 끝맺음 했으면 훈훈한 미담이 되었겠으나 은혜를 갚기는 커녕, 배은망덕한 짓을 저지르게 됩니다. 라이오스는 펠롭스의 막내 아들이자 뛰어난 미소년이었으며, 자신의 제자이기도 했던 크리시포스에게 반하여 아이를 납치하고 강간하는 범죄를 저질렀던 것입니다. 라이오스의 막장행각에 분노한 펠롭스는 그를 저주하였고(혹은 크리시포스가 자살하며 신들에게 라이오스를 벌주도록 기원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펠롭스의 분노에 찬 청원을 들은 신들이 라이오스에게 불행한 운명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후 라이오스는 델포이에서 신탁을 받았는데, 신탁의 내용이 ‘아이를 갖지 마라, 아이가 태어나면 너를 죽이고 네 아내와 혼인하게 될 것이다.’ 였습니다. 이 끔찍한 신탁 내용에 놀란 라이오스는 이오카스테와 혼인하게 된 이후로도 동침하지 않고 지냈는데, 하루는 술에 취해 실수로 왕비와 밤을 보내게 되었고 그로 인해 아들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라이오스는 아들이 태어나자마자 신하에게 시켜 아이를 죽이도록 하였는데, 갓난 아이를 차마 죽일 수 없던 신하는 키타에론 산에 아이를 버리게 됩니다. 이 때 아이를 거꾸로 매달아 놓고 갔는데, 이로 인해 아이가 양치기에게 발견되었을 때 발이 퉁퉁 부어 있어, ‘부푼 발’이라는 의미의 오이디푸스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고 합니다.


양치기는 아이를 키울 능력이 안 되었기에, 당시에 아이가 없어 고민하던 코린토스의 왕과 왕비에게 아이를 바쳤고, 이 부부는 아이를 왕자로 삼아 잘 키워주었습니다.

오이디푸스가 청년이 되었을 때, 그 역시 델포이의 신탁을 받게 되었는데 신탁의 내용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혼인할 것이다.’였기에 부모님을 해치게 될까 두려워(코린토스 왕과 왕비가 친부모인 줄 알았기에) 코린토스를 떠나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오이디푸스로서는 지극히 상식적인 행동을 한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행의 도중에 결국은 운명의 마수를 피할 수 없는 사태를 맞이하게 됩니다. 바로 자신의 친아버지인 라이오스 왕과 시비가 붙게 된 것이죠. 그리고 이 시비 끝에, 자신의 친아버지인 줄은 꿈에도 몰랐던 라이오스 왕을 살해하게 되고, 왕을 수행하던 마부가 달아나 후에 오이디푸스의 범행을 증언하게 됩니다. 

오이디푸스의 라이오스 살해, 조제프 블랑의 작품.


아버지가 저질렀던 죄악이 아들의 손에 의해 목숨을 빼앗기는 형태로 벌을 받고, 아들 역시 친부 살해의 죄로 인해 이야기 후반부의 비극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 아버지 세대의 부패로 인한 고담의 치안 문제에 의하여 아버지를 잃고 자경단이라는 외롭고 힘든 길을 걷고, 또한 고담 전체에 복수하려는 리들러에게 휘말리는 배트맨의 운명과도 비슷하게 보입니다. 


인간이 저지른 죄악은 돌고 돌아 자식 세대까지 휘감아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이디푸스와 배트맨은 둘 다 너무 어둡고 슬픈 이야기입니다.



2.         수수께끼를 내는 적대자


이 두 이야기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공통점은 ‘빌런’의 특성일 것입니다.


오이디푸스 속의 빌런은 그 유명한 ‘스핑크스’입니다. 상반신은 여성, 하반신은 사자의 모습으로 주로 묘사되는 이 괴수는 그리스-로마 신화 속의 다른 무지성(…) 괴물들과 매우 차별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상대방을 시험하는 ‘수수께끼’를 내는 지능형 빌런이라는 점이죠. 묘한 수수께끼를 내고 그것을 맞추지 못한 자는 잡아먹지만, 오이디푸스가 그 퀴즈를 맞춘 순간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자살하는 괴물이란, 영웅과 괴물의 적대 관계가 극도로 명확하며 단순한 신화 속에서 매우 독특한 캐릭터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오이디푸스의 반응 역시 굉장히 독특합니다. 헤라클레스나 테세우스와 같은 영웅이었다면 과연 스핑크스와 대화하는 형식으로 수수께끼를 풀고 문제를 해결했을까요? 아마 스핑크스는 그 영웅들과는 대화도 나눠보지 못하고 목이 잘렸거나 화살에 맞아 죽거나 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오이디푸스는 대화를 통해 스핑크스가 내는 문제를 듣고, ‘탐정’처럼 고민하여 그 문제의 해답을 찾아냅니다. 마치 ‘더 배트맨’ 영화 속의 배트맨이 리들러의 수수께끼들을 맞춰가며 리들러가 저지르고 있는 범죄의 중심에 다가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배트맨 속의 스핑크스라고 할 수 있는 빌런 '리들러'


그리고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들 역시 리들러의 문제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아침에 네 발, 낮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은?”인데, 이는 하필이면 ‘발(pus)이라는 단어가 이름에 들어가는 오이디푸스’를 위해 만들어진 문제 같으며, 결국은 오이디푸스가 속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문제의 답이 되겠습니다. 영화 속 배트맨이 푸는 수수께끼로 ‘너는 날개 달린 쥐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결국 그것은 박쥐의 이름을 가져온 배트맨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3.         두 가지 상반된 모습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주인공


영웅인 오이디푸스와 배트맨 모두 두 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이디푸스는 ‘친족 살해자와 근친상간을 일으킨 자’라는 어둠과 ‘스핑크스를 물리쳐서 테베를 자유롭게 만든 영웅’이라는 면모를 동시에 지니고 있죠. 게다가 저 어두운 면은 이야기의 종반까지는 본인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도 몰랐던 모습입니다. 


배트맨 역시 어둠 속에서 활동하는 자경단과 낮에 활동하는 ‘사업가이자 브루스 웨인’의 모습을 같이 지니고 살아갑니다. 배트맨의 정체는 그의 충실한 집사인 알프레도 정도만이 알고 있죠.


이 두 가지의 정체성을 별개의 것인 양 유지하는 것이, 두 명의 영웅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어두운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파멸에 이르게 되고, 브루스 웨인 역시 배트맨의 정체가 세상에 밝혀지는 순간 엄청난 곤경에 처하게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오이디푸스 이야기에서는 결국 자신이 다스리게 된 테베에 닥친 전염병의 원인을 밝히고자 노력하던 끝에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자를 벌하지 않는 한 전염병은 물러가지 않는다.’란 신탁을 받게 되고, 예언자 테이레시아스를 불러 신탁이 말한 주인공을 찾게 됩니다. 그리고 그 범인이 오이디푸스 자신인 것이 밝혀져 친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 왕비는 자결하고 자신은 본인의 눈을 찔러 장님이 된 채로 테베에서 추방당하고 모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방황하게 됩니다.

장님이 된 후 딸과 함께 방황하는 오이디푸스, 지팡이를 지니고 있는 모습이 스핑크스의 수수께끼와 연결됩니다.


영화 ‘더 배트맨’에서는 배트맨의 정체가 밝혀지진 않습니다. 그러나 정체가 밝혀진다면 겪게 될 문제들은 상상이 가능하죠. 아무리 정의의 사도라고 해도 공권력을 대신하여 임의로 범죄자들을 단죄하고 다니는 것은 불법적인 행동이기 때문입니다(게다가 범죄자들에게 보복당할 위험성도 있죠). 배트맨의 정체가 브루스 웨인이라고 밝혀지게 된다면, 배트맨의 활동이 중단됨은 물론이고 본인의 사업이나 양지에서의 삶이 정상적으로 유지되긴 어려워질 것입니다. 오이디푸스 정도의 결말은 아니라 하더라도 결국 본인의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어딘가로 떠나야만 하겠죠.



4.         나는 복수다


배트맨의 가장 대표적인 대사가 있습니다. 

“나는 복수다(I'm vengeance).”라는 것이죠. 이것은 배트맨의 캐치프라이즈기도 한데, 그의 자경단 활동의 시작점이 부모를 잃게 만든 범죄에 대한 복수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 자체가 고담의 부패 속에서 제대로 단죄 받지 않는 죄인들에 대한 징벌임을 상징하기도 하죠.


오이디푸스는 운명의 장난으로 인해 패륜을 저지른 인간으로도 볼 수 있지만, 그 자체가 바로 신이 라이오스가 저지른 죄악에 내린 벌, 그리고 강간당한 후 자살한 크리시포스의 라이오스에 대한 복수이기도 합니다.


복수는 물론 통쾌하고 ‘정의의 실현’처럼 보이는 경향도 있습니다. 어차피 이미 당한 괴로움이 있다면 복수라는 존재가 있어야 억울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죠. 그러나 복수를 행하는 것 자체는 쉬운 과정도 아니며, 막상 손에 피를 묻히게 되면 통쾌함도 잠시이고 또 다른 트라우마가 생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고대 사람들이 ‘복수의 여신’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믿은 것도, 나약한 인간이 아닌 초월적인 존재가 흔들리지 않고 자신들 대신 냉엄한 복수의 심판을 내려주기를 바랬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복수의 여신이 아닌 인간으로서 복수가 된 두 영웅, 오이디푸스와 배트맨의 삶은 그래서 고통을 전제로 합니다.

단순히 ‘영웅이 될 거야!’ 혹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줄 거야!’로 시작한 히어로 활동이 아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대한 극복이자 복수를 위해 시작한 배트맨의 삶이 고뇌로 가득한 것은, 스핑크스를 물리친 영웅이자 테베를 잘 다스리던 왕으로서의 오이디푸스의 삶이 언젠가 밝혀질 죄업의 존재로 인해 모래 위에 지어진 누각처럼 위태로운 느낌을 주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영웅이되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자신의 정신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배트맨의 삶은, 이야기로 접하기엔 흥미진진하나 ‘배트맨 자체가 되고 싶진 않다’라는 느낌을 준다는 점에서 오이디푸스 이야기와 참으로 닮아 있습니다.



5.         복수라는 무게에서 해방된 후의 행보


‘더 배트맨’ 영화의 마지막에서 배트맨은 ‘복수’로서가 아닌 ‘희망’으로서 살아야겠다는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은 조금은 더 안정된 마음가짐으로 배트맨 활동을 지속하게 될 것이라는 암시(배트 시그널)와 함께 영화의 막이 내리게 되죠. 현대에 만들어진 히어로물 다운, 조금은 밝은 결말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오이디푸스의 결말은 ‘그리스 비극’ 그 자체입니다. 비록 의도하진 않았던 것이지만, 자신이 저질렀던 끔찍한 죄가 백일하에 밝혀지고 사랑하던 아내는 자살하며 본인은 스스로 눈을 찔러 장님이 됩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모든 비밀을 다 알았기에 약간은 해탈한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돌봐주는 딸 안티고네와 함께 그리스 전역을 헤매어 다니다가 최후에는 테세우스 왕이 다스리던 아테네로 가서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눈이 먼 채로 동굴 속에 들어가 삶을 마무리하는 모습이 어둠 속으로 숨어들어가는 박쥐, 배트맨과도 닮아 보이는 것도 같습니다. 혹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는 모습이 이전 배트맨 영화인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결말과도 비슷해 보입니다.


이 두 이야기의 결말을 비교해보면서, 이번 ‘더 배트맨’으로 리부트되는 시리즈 속의 배트맨은 확실히 오이디푸스와 같은 비참한 결말은 피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마지막까지 ‘복수’라는 존재와 일체화될 수 밖에 없었던 오이디푸스와 달리, 배트맨은 상당히 일찌감치 ‘복수’의 무게를 내려놓고 희망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까요.

복수에서 희망의 상징으로 변모할 배트시그널.






신화 시대를 다룬 이야기 속 주인공인 오이디푸스와 달리, 우리와 같은 세상에 발붙이고 있는 배트맨에게는 ‘자유 의지’의 힘이 ‘운명’보다 더 강하게 작용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힘이 배트맨을 복수자가 아닌 희망의 상징, 진정한 히어로로 다시 태어나게 해주는 것이죠.


이번 영화에서 배트맨은 오이디푸스와 닮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다음 영화가 나온다면, 아주 다른 영웅의 면모를 보이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가 생겼습니다. 그 때는 또 다른 신화 속 영웅과 겹치는 점이 있을지에 대해, 신화 덕후의 입장에서 열심히 고민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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