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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tros May 19. 2021

치매와 파킨슨병 환자가 그리스-로마 신화 속에도?

영원히 늙어가는 티토노스

이번 이야기는 노화(老化, Aging)에 대한 것입니다.


티토노스(Tithonus, Τιθωνός)는 트로이의 왕자로 매우 잘생긴 외모로 유명한 젊은이였습니다. 그는 뛰어난 외모 덕분에 새벽의 여신 에오스(Eos, Ἕως)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신과 인간의 사랑은 비대칭성이 있기에, 현대를 사는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만나서 사귀는 것이 아니라, 에오스가 티토노스를 납치하여 남편으로 삼는 식의 사랑(?)이었습니다.

티토노스를 납치하는 에오스


기껏 납치까지 해왔으나 인간은 유한한 생명을 지녔기에 영원을 살아가는 신과는 함께 할 수 없었고, 이러한 상황이 안타까웠던 에오스는 자신의 남편에게 영원한 생명을 줄 것을 신들의 왕인 제우스에게 청원하였습니다. 제우스는 에오스의 소원을 들어주었는데, 소원을 들어주는 과정에 한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티토노스에게 영원한 생명을 내려 주었으나 그가 늙어가는 것을 막아주진 않았던 것이죠.


제우스가 이렇게 반쪽짜리 형태로 소원을 들어준 이유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신화 속에서 종종 나오는, 인간의 욕심에 대한 경고와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함부로 영생을 바라지 말라는 교훈을 주고 싶었던 것일까요? 실제로 그리스-로마 신화 속에서 신으로 승격되지 않고 '살아있는 인간인 상태'로 영원을 사는 것을 허락 받은 존재는 나오지 않습니다.


어쨌든 에오스의 소원대로 영원한 생명만을 얻은 티토노스는 죽지 않고 계속 늙어가기만 했습니다. 처음엔 티토노스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하던 에오스도, 티토노스가 늙고 볼품이 없어지자 그에게 싫증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인간과 몹시 흡사한 그리스-로마 신들의 사랑이란 얼마나 얄팍한 것인지...


결국 거동하지 못할 만큼 늙은 티토노스는 에오스의 궁전에 있는 방 안에 가둬진 채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소리만 내며 가만히 누워지내게 되었죠.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다시 찾아온 에오스는 그를 가엾게 여겨 매미 혹은 귀뚜라미로 변하게 만들어주었다고 합니다.


Aurora’s Take Off, Louis Jean Francois Lagrenée

위의 그림이 바로 싫증이 난 에오스와 늙은 티토노스의 모습을 묘사한 것인데, 에오스는 본인의 업무인 새벽을 열기 위해 마차를 몰아 나가려하고 있고, 늙고 기운 없는 티토노스는 그녀에게 가지말라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른쪽 뒤로는 새벽이 되니 물러나게 되는 밤의 여신 닉스(Nyx, Νῠ́ξ)의 모습이 살짝 보이고 있구요. 티토노스가 밤의 여신과 같은 방향에 놓여져 있다는 것 역시 의미심장 합니다. 인생의 '밤'과 같이 늙어버린 티토노스는 새벽의 여신과 함께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합니다.



평균수명이 28세였던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아주 고령까지 살다가 노환으로 죽는 사람들을 많이 보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그 시대에도 장수하는 사람들은 있었을 것이고, 그리하여 어느 정도 이상 노화가 진행되었을 때의 모습 정도는 관찰할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마 그러한 관찰을 토대로 티토노스의 마지막 모습도 묘사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현대에 들어와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관찰할 수 있게 된 수많은 퇴행성 질환들이 있으며, 이 중에서 노화와 관련된 대표적인 신경퇴행성 질환(Neurodegenerative disease)에는 알츠하이머병(Alzheimer’s disease)과 파킨슨병(Parkinson’s disease)이 있습니다.


알츠하이머병은 베타아밀로이드(Beta-amyloid)라는 물질이 뇌에 축적되어 기억력 감퇴를 주증상으로 하는 치매를 일으키게 되는 질환으로, 전세계적으로 가장 흔한 신경퇴행성 질환입니다. 그리고 파킨슨병은 흥분성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을 만들어내는, 중뇌의 흑색질이란 부위에 알파시누클레인(Alpha-synuclein) 단백질의 비정상적인 축적으로 인해, 도파민을 만들어내는 신경세포의 사멸이 일어나게 되고 그로 인해 도파민 분비가 저하되어 행동이 느려지고, 근육의 경직이 일어나며 손발이 떨리거나 보행이 어려워지는 증상이 나타나게 되는 질환입니다. 파킨슨병은 알츠하이머병에 이어 두번째로 흔한 신경퇴행성 질환인데, 티토노스의 늙어가는 모습들을 보면 이 두 질환의 증상들이 연상됩니다.


잘 거동하지 못한다는 것은 파킨슨병의 증상,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만 낸다는 것-티토노스가 에오스도 기억하지 못해서 에오스가 알아듣기 힘든 이야기를 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은 알츠하이머병에 의한 치매 증상과 비슷한 인상을 주죠.

기억을 잃어가는 알츠하이머병(좌)와 움직이기 힘들어지는 파킨슨병(우)


이러한 신경퇴행성 질환들의 증상을 통해 진단을 내리고, 증상의 진행을 막거나 정상 기능 유지를 위한 치료법들을 개발하고, 더 나아가 질병 발생을 예방하거나 되돌리는 치료법에 대해 연구하는 현대와 달리, 고대 사람들에게는 노화란 그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며, 불로불사란 신들에게만 허락된 혹은 신들에 의해서도 쉽게 내려지지 않는 은총의 개념이었을 것입니다.


이야기 속의 티토노스를 보면, 완전히 노화가 진행되어 버린 후에는 여신인 에오스조차도 그를 어찌하지 못하고 방에 가둬 버리게 됩니다. 현대에도 매우 안타깝지만 일부 말기 신경퇴행성질환 환자들은 증상을 치료하거나 호전시킬 방법이 없어, 폐렴에 걸리거나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기본적인 간호를 해주는 것 외에 도움을 줄 방법이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마 이러한 질병에 대한 개념이 적은 고대에는 더욱 더 노인 환자 간호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을 것입니다. 티토노스와 같은 방치가 일어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현대인으로서 환자들을 도와줄 수 있는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치료할 수 없는 환자들도 마지막까지 존엄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할 것입니다. 그것이 신화의 시대가 끝난, 인간의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나아갈 방향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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