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작스레 결정된 미국 로드트립이지만 사실 이 여행엔 프롤로그가 하나 있다. 그것은 지난해 2023년 감행한 29년 만의 용평여행이었다.
우리 친구들은 같은 고등학교와 같은 대학교를 나온 동창들이다. 고등학교 때는 다들 몰랐지만 대학생이 되어 각 단과대 회장들을 맡아 매해 있던 동문 카니발 행사를 준비하며 급격히 친해졌다. 88학번인 우리는 89년 여름 2학년이 되어 각 단과대 회장단이 되었고 그 해 가을 카니발 준비를 위해 89년 여름부터 본격적으로 뭉쳐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 모임은 앞서 소개한 나를 포함한 4명에다 한 명이 더 있어 총 다섯 명이다. 그는 현재 사업을 하고 있기에 이번 여행엔 동참하지 못했지만 늘 우리와 함께 했었다.
1989년 카니발을 준비하는 우리의 목표는 하나였다. 당시 고교동문 카니발은 서울 시내 호텔을 빌려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런데 어떤 호텔이냐, 뒤풀이 장소가 어디냐가 티켓판매는 물론 선배들로부터의 인정, 그리고 각 출신 학교 간의 경쟁우위를 가름하는 핵심요인이었다. 노는 것에 진심인 대학교 2학년이었던 우리는 1초의 고민도 없이 당시 가장 인기 있던 호텔 나이트인 <뉴월드호텔+단코> 조합으로 만장일치 합의를 봤다.
카니발 스폰서를 구하기 위해 여름방학 동안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했던 고생을 잊을 수 없다. 지나고 보니 <협찬사 영업>과 같은 형태였는데 사회경험 없는 대학 2학년들이 겪었을 어려움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결국 우리는 2학기 개강 하고 며칠 뒤, 학교 정문 진입로에서부터 학생회관까지 <뉴월드 호텔 단코>에서 <카니발>을 한다는 안내장을 붙일 수 있었다. 이 사건은 학교 내에서도 꽤 화제를 모았다. 선배들로부터 칭찬도 많이 받았고 역시 회장단은 날라리들을 뽑아야 한다는 인재등용 법칙에 대한 모델도 제시했던 것 같다. 우리 학교를 이어 다른 몇 학교들도 뒤늦게 <뉴월드 단코>에서 카니발을 했으나 아폴로 11호의 닐 암스트롱의 경우처럼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 1989년 후 35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결같은 우정을 유지하기 쉽지 않은데 우리는 그동안 큰 다툼 없이 늘 만나면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로 돌아갔던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엔 지금은 추억이라고 얘기하지만 당시는 사건, 사고라 할 수 있는 많은 유흥활동의 에피소드들도 한몫했으리라 생각한다.
여러 에피소드들 중 우리가 만나면 늘 화제의 탑랭킹에 들어가는 것이 바로 1994년 여름 용평여행이었다. 우리 다섯 명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떠난 여행이었는데 지독한 그 해 여름 더위와 함께 너무도 기억이 남는 여행이었다. 당시 나와 수행자, 사업가 친구는 군대 현역을 다녀온 대학 4학년 취준생이었고, 멤피스 친구는 취업이 확정된 대학원 1학년, 샌프란 친구는 6개월 방위를 다녀와 이미 대기업에 취직한 신입사원이었다.
당시 용평에서 있었던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소개하기엔 이 자리는 적절하지 않다. 다만 이 한 장의 사진이 당시 우리 기쁜 젊은 날을 묘사해 주고 있다.
기온은 35도가 넘었지만 화창한 날씨에 환한 미소대신 거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20대 중반의 우리들. 맘속엔 취직의 걱정과 신입사원의 고충 등이 담겨 있었겠으나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젊음과 자신감이 충만한 그것이었다. 우리는 시간이 흘러도 종종 용평여행을 안주로 술자리를 갖곤 했다. 스마트폰이 나오고 난 이후엔 좋은 화질로 이 사진들을 공유할 수 있어 더 1994년의 기억이 아련했다.
매년 여름과 겨울엔 방학이라 한국에 들어오는 샌프란 친구 덕분에 우린 일 년에 최소 두 번 이상의 모임은 하고 있었다. 그러던 2023년 여름. 몇 년간의 수행생활을 마치고 오래간만에 속세로 귀한 한 수행자 친구까지 다섯 명 완전체가 모인 자리에서 우린 어게인 1994 용평행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당시 샌프란과 수행자 친구를 제외한 나를 포함한 3인은 회사를 다니고 있었기에 휴가날짜를 맞추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그놈의 술김에 그다음 주 금요일 하루 휴가를 내어 금토일 2박 3일 용평행을 결정했다.
그렇게 떠난 29년 만의 용평여행은 더없이 즐거웠다. 젊은 날의 여행도 좋았지만 50대 중반의 중년이 되어 떠난 여행도 그에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즐거웠다. 우리의 몸은 29년만큼 노화되었으나 정신과 마음은 그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철들면 죽는다’는 말에 적극 공감하며, 확률 상 모두들 건강히 살아있을 70대가 되어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철없는 모습일 것이라 생각했다. 대신 경제적으론 당시보다 많이 여유로워졌고 세상을 보는 눈과 깊이도 20대 중반의 그때보다는 훨씬 다채로워져 있었다.
많이 마시고 많이 먹고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둘째 날, 이번 여행의 목적을 위해 움직였다. 그것은 바로 1994년 사진의 장소에서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30주년 리마인드 웨딩사진을 찍는 부부들이 이런 마음일까? 뭔가 우리 젊음의 상징적인 자리에서 세월이 흘러 다시 사진을 남기는 것은 당시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충분히 버킷리스트에 들어갈 만한 일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용평리조트도 그동안 소유주도 바뀌고 공사도 잦아 당시의 다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하지만 최대한 비슷한 위치를 찾았다. 50대 아저씨들이 기괴한 포즈로 찍는 사진을 남에게 찍어달라고 요청하는 건 매우 민망한 일이었다. 하지만 넉살 좋은 사업가 친구덕에 지나가던 40대 남자분이 흔쾌히 찍어 주셨다. 우리 사연을 듣고 부럽다고 한마디 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