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대의 나이트문화
십여 년 전 엠넷에서 ‘문 나이트’란 프로그램을 방송했고 코로나 기간 중 SBS의 아카이브 K란 대중음악 역사 프로그램에서도 ‘문 나이트’ 편을 방송했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반 이태원에서 가장 유명했다던 그 나이트를 나는 가보지 못했음은 물론 당시에 존재도 알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같은 ‘나이트’라는 업종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문 나이트’는 나중에 대한민국 힙합계의 거물들로 성장하는 프로춤꾼들이 가는 곳이었고, 평범한 날라리들이 가는 나이트는 춤보다는 엔터테인먼트 전반을 즐기러 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위 두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80년대 말 나이트의 대명사를 문 나이트로만 알고 있는 젊은 세대가 많기에, 프로춤꾼들이 아닌 대학생 날라리들이 가는 또 다른 형태의 나이트가 있었음을 사료를 남기는 심정으로 추억하고자 한다.
8090세대 문화를 연구하는 많은 논객들이 간과하고 폄하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이 나이트문화야 말로 당시 젊은이 문화의 현재 모습과 이후 변천사를 제일 잘 알 수 있는 바로미터라고 생각한다. 야구에서 파워, 스피드, 정확도, 수비능력, 송구능력을 ‘Five Tool’로 분석해서 얘기하는 것처럼 8090 세대의 나이트 안에는 그들의 패션, 음악, 유행, 세태 등이 그대로 녹아 있기 때문이다.
80년대 일본버블 경제를 묘사하는 끝판왕이라 평가받는 80년대 말 일본 코카콜라의 ‘I feel Coke’ CF 시리즈는 그 높은 완성도로 인해 지금도 유튜브에서 회자되고 있다. 당시 코카콜라 미국본사는 88 올림픽을 맞아 대한민국에서도 그 광고가 충분히 통한다고 보고 콘티 그대로 한국 코카콜라 CF에 적용하게 된다. 그 당시까지 전통적인 미녀상과는 거리가 있었던 심혜진을 단연 CF 퀸으로 등극시킨 한국 코카콜라의 ‘난 느껴요 코카콜라’ CF 시리즈는 당시 갓 대학을 입학한 88 꿈나무들에겐 가히 비주얼 쇼크가 아닐 수 없었다. 그전 까지는 여배우의 ‘예쁨’과 남배우의 ‘잘생김’으로 승부하던 티브이광고에 ‘세련됨’이란 기존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카테고리로 30초를 점령한 코카콜라 티브이광고는 정말 신세계였다. 우리나라에도 저런 멋지고 세련된 젊은이들이 있을 수 있을까? 특히 검정 뿔테안경에 넥타이를 맨 정장을 입은 샐러리맨들의 밝고 즐거운 직장생활의 모습을 보며 나도 빨리 학교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어 저렇게 멋지게 다니고 싶다는 환상을 가지게 만들었다. 물론 직장인이 된 후 야근과 회식에 찌들고 와이셔츠에 쌈장을 묻히고 지하철로 퇴근하는 미생의 직장인의 모습이 월급쟁이들의 본모습이란 것을 깨닫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80년대 말 코카콜라 CF에서나 나올 법 한 멋진 젊은 남녀를 볼 수 있는 곳은 강남 나이트였다. 많은 이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지만 특히 잊지 말아야 할 추억의 장소 두 곳은 ‘유니콘’과 ‘단코’다. 먼저 유니콘. 같은 강남역에 있었지만 뉴욕제과 뒤에 있는 월팝, 브이존 과는 달리 국기원 아래 목화예식장 옆에 있었다. 강남역 월팝은 누가 봐도 디스코텍이지만 유니콘은 오히려 호텔나이트에 좀 더 가까운 콘셉트이었다. 갤러리아 EAST, WEST가 과거 명품관, 생활관으로 나뉘어 불렸던 시절의 갤러리아 생활관 느낌이랄까? 명품 라인업이 명품관에 비해 좀 떨어지긴 하지만 갤러리아 생활관도 갤러리아라는 개념과 비슷했다.
강남역 나이트가 저학년들이 주로 가는 비기너 코스라면 유니콘은 3, 4학년 이상의 고학년들이 가는 날라리계의 중급코스에 가까웠다. 강남역에선 대부분 맥주기본을(맥주 3병+ 안주 1) 시키지만 유니콘에선 맥주기본을 시켜도 가오가 떨어지지 않고 양주기본을 시켜도 너무 오버하는 걸로 보이지 않았다. 당시 나이트에서 양주라고 하면 패스포트나 썸씽스페셜, VIP였는데 젊은 손님들이 양주 맛을 잘 몰랐기에 일부 몰지각한 업주들은 캡틴큐나 나폴레옹 같은 기타 제제주를 섞은 가짜양주를 팔기도 했다. 캡틴큐 한 병을 마시면 다음날 숙취가 없는데 그 이유는 기절했다가 이틀 뒤 깨어나기 때문이라는 무시무시한 속설이 있었다. 그런 술들을 양주라고 잘 못 배운 일부 날라리들은 캡틴큐 맛에 인이 박혀서인지 나중에 중년이 되어 면세점에서 사 온 고급 싱글몰트 위스키를 먹으면 오히려 머리가 아픈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다.
타워호텔의 ‘피바’, 힐탑호텔의 ‘니콜’도 인기가 있었지만 88년 말에 등장한 뉴월드호텔 단코야 말로 호텔나이트의 전성시대를 본격적으로 연 장본인이었다. 대학교 고학년에서 직장 초년생까지의 일반인들은 물론 연예인, 운동선수 등 장안의 내로라하는 날라리 고수들이 총집합하는 곳이었다. 장선달, 돼지엄마 같은 구수한 네이밍 전략을 썼던 웨이터들은 단골손님들과 가리(외상), 하이방(무전취식), 팁 등의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며 전담 웨이터제를 만들게 된다. 이후 전담 웨이터제는 그 어원의 출처가 매우 궁금한 ‘부킹’이라는 문화를 만들었고 그 문화는 지금에는 당연한 듯한 나이트, 클럽 문화로 이어지고 있다.
2년여의 짧은 전성기를 누린 단코는 91년 초 한국 SF계의 거장 심형래 감독에게 ‘꾸띠’라는 좀 더 묘한 이름으로 인수되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단코라는 브랜드는 그 이후에도 나이트, 바, 주점 등 업종불문하고 강남은 물론 강북, 심지어 지방까지 잊을만하면 여고괴담이나 좀비처럼 살아나 과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곤 했다. 줄리아나도 나이트업계에선 단코 못지않은 인지도를 가진 브랜드이긴 했으나 줄리아나 도쿄에서 비롯된 친일적인 이미지 때문에 민족적 자부심이 강한 날라리들에게 지속가능한 브랜드로 받아들여지는 데는 실패한 것 같다.
최근 강원도 양양이 MZ세대의 핫플레이스로 각광받고 있고 숏폼 등 동영상에서는 마치 스페인 이비자를 보는 듯한 글로벌한 파티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30여 년 전 대한민국에도 그런 곳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은 바로 용평스키장의 ‘디스코 시즐’이었다.
1988년 대한민국의 스키장은 강원도의 용평, 알프스 그리고 수도권의 베어스타운, 천마산, 용인 정도였던 것 같다. 일단 스키가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양질의 눈과 스키를 제대로 탈 수 있는 슬로프, 그리고 기타 부대시설들을 다 갖춘 곳은 용평 밖에 없었으므로 겨울시즌 용평은 그야말로 장안의 선남선녀들의 집결지가 되었다. 지금 반포역 앞에 있는 반포 뉴타운 주차장에서 롯데관광, 오진관광, 서울교통 등의 용평행 버스가 출발했다. 아침 9시에 버스를 타기 위해 모여 있는 젊은 청춘들의 모습은 앞서 얘기한 코카콜라 CF 출연진의 세련됨에 못지않았다. 버스 안에선 그동안 녹음한 최신 음악테이프를 기사님께 경쟁적으로 틀어달라고 요청을 해 버스기사님은 본의 아니게 디제이로 투잡을 뛰기도 했다. 어느 팀에서 건넨 테이프의 음악이 가장 최신 버전인지를 안 보는 척 하지만 서로 견제하며 관찰하는 팽팽한 긴장감속에 버스 안에서의 3시간은 후딱 지나갔다.
기본적으로 용평의 디스코 시즐은 시설이 후졌다. 리조트 입장에서도 산 구석에 있는 스키장 안 나이트클럽에 많은 돈을 투자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시설은 중요하지 않았다. 시즐은 나이트의 핵심성공요인인 손님들의 ‘물’과 ‘음악’에서 압도했기 때문이었다. 1989년 해외여행자유화가 되기 전까지 학생들은 국내에서 방학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뜨거운 여름엔 동해, 남해, 서해로 흩어질 수 있었으나 매서운 추위의 겨울이 되면 날라리들은 스키장 외 다른 선택지를 찾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용평에서 날라리 집단의 정예화를 이루는 요인이 되었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시즐의 매력은 공식적으로 외박의 허락을 받고 와있다는 점이었다. 스키장이란 곳이 당일치기로 다녀올 곳이 아니다 보니 귀가의 의무에서 공식적으로 면죄부를 받은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엄하신 부모님의 딸이거나 아님 친오빠가 날라리인 여동생들은 평소 많은 통제를 받는 생활을 했기에 용평에선 오랜만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시즐에서 남성팀, 여성팀의 만남이 자연스레 이루어진다면 2차는 당연히 콘도행이었다. 일반 소주는 팔지 않고 관광소주만 팔던 슈퍼에서 과자 봉다리와 오징어포 등을 사서 하얀 눈을 밟으며 콘도로 향하곤 했다. 지금의 양양처럼 핫하거나 블링블링 한건 없었지만 콘도에서 동그랗게 둘러앉아 귀신 얘길 하거나 고백점프를 하는 재미는 잊지 못할 젊은 날의 한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