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부산상고로 옮겼다. 부산상고는 노무현 대통령이 다니셨던 학교고, 신영복 선생님이 나오신 학교다. 내가 신영복 선생님께 편지를 드려 모교에 오셔서 강연도 해 주셨다. 선생님이 학교에 잘 안 오시는데, 마침 부산상고가 선생님 모교라 억지를 좀 부렸다. 그때 하신 말씀 가운데 아직도 잊히지 않는 말씀이 하나 있다. 바로 ‘중용’ 풀이다. 아이들에겐 좀 딱딱한 이야기였지만 나는 참 가슴에 와닿는 말씀이었다. 생생한 선생님 목소리로 들으니, 책에서 읽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중용’은 중간, 가운데가 아니다. 가난한 사람과 부자 가운데 있는 중산층이 중용이 아니다. 진보와 보수의 중도가 중용이 아니라고 하셨다. 그럼, 뭐냐? 중용은 ‘균형’이다. 이 세상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언제 어디서나 대립과 모순 구조가 펼쳐진다. 양과 음, 남자와 여자,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재벌과 노동자, 진보와 보수. 중용은 이 대립 구조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느냐? 하는 인식의 문제이다. 모순과 대립 구조에서 자기와 반대쪽을 적(갈등, 싸움)으로 바라보느냐, 아니면 함께 살아가야 할 짝(균형, 조화)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라고 하셨다.
아시다시피, 신영복 선생님은 붓글씨를 잘 쓰시기에 붓글씨를 예로 들어 말씀하셨다. 붓글씨를 쓸 때 첫 획을 비뚤게 그었다고 지우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 획과 조화를 이루게 다음 획을 긋는다. 첫 글자가 크거나 비스듬하면, 그다음 글자로 균형을 맞춰간다고 하셨다. 중용은 오른쪽과 왼쪽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이다. 배에 타고 있는 사람이 모두 오른쪽으로 몰려 배가 오른쪽으로 기울면, 나는 왼쪽으로 가서 균형을 잡아주고, 배에 탄 사람이 왼쪽으로 쏠리면, 나는 오른쪽으로 가서 균형을 잡아주는 게 중용이다. 나와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 적이 아니라 나와 균형을 맞춰주는 짝으로 보는 게 중용이라는 말씀이었다. 세상 이치를 제대로 꿰뚫어 본 참된 말씀이로구나 싶었다.
부산상고는 부산 서면 한가운데, 지금 롯데백화점 자리에 있었는데, 그 땅을 팔고 지금 자리로 옮겼다. 지금 부산상고 자리는 예전에 당감동 화장터였다. 화장터이다 보니 사람들이 꺼려서 집 짓고 살지 않고 비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 넓이가 2만 7천 평이나 되었다.
학교를 옮기고 얼마 안 되어서, 입에서 입으로 떠도는 재미나는 이야기 하나를 얻어들었다. 학교 옮길 때, 지관이 이 자리는 제왕 터라서 이 학교 졸업생 가운데 대통령이 두 사람 나올 거라고 예언했단다. 그런 눈으로 보면 그 지관이 정말 용했다. 벌써 대통령이 한 사람 나왔으니 아주 그럴싸한 말이었다.
학교에서 귀신을 봤다는 이야기도 많았다. 아이들은 주로 화장실에서 봤다고 하고, 내 옆자리 선생님은 학습 자료실에서 봤다고 했다. 자료 찾으러 갔다가, 건너편 책상 밑으로 지나가는 사람 다리를 봤는데, 그쪽으로 가보니 아무도 없더라는 것이다. 나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비 오는 날 아무도 없는 복도를 걸어가는데 누가 뒤따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내 생각에 빠져 걷다가 무심코 누굴까 하고 돌아봤는데 아무도 없었다.
귀신을 봤다는 곳은 모두 교장실 가까운 곳이었다. 교장실 자리가 죽은 사람 관을 태우던 용광로 자리였다고 한다. 본디 그 자리는 행정실이었는데, 어느 교장이 그 자리가 기운이 세서 좋다고 교장실과 바꾸었단다. 맞는 말이지 싶었다. 현관으로 들어서면 보통 행정실이 먼저 있고 그다음이 교장실인데, 부산상고는 교장실이 바깥쪽에 있고, 행정실이 안쪽에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 소용돌이에 휘말릴 때였다. 어느 날 아침 교무회의에서 교장이 뜬금없이 교문 하나를 걸어 잠그겠다고 했다. 학교가 넓다 보니 교문이 둘이었다. 하나는 정문이고 또 하나는 옆문이다. 3층짜리 본관 건물이 길게 한 줄로 섰고, 그 뒤쪽에 별관이 또 한 줄 있고, 또 그 뒤쪽에 동창회 건물이 있었다. 본관 앞에 넓은 축구장과 체육관이 있고, 그 아래 넓은 야구장이 있고, 그 아래 커다란 정문이 있다. 옆문은 본관과 가까운 옆 울타리에 있었다. 말이 옆문이지 큰 트럭이 드나들 만큼 컸다. 교사고 아이들이고 모두 이 옆문으로 다녔다. 버스 정류소가 옆문 가까이 있으니까, 정문으로 가자면 백 미터 넘게 내려갔다가 다시 백 미터 넘게 걸어 올라와서 교실로 들어가야 한다. 누가 그러고 싶겠는가. 그런데 이 옆문을 걸어 잠그겠다는 말이다.
갑자기 뭔 뚱딴지같은 소린가 했더니, 이 옆문으로 학교 기운이 새 나가고, 정문으로 좋은 기운이 들어오지 않아서, 대통령이 탄핵당할 고비에 이르렀다고 문을 걸어 잠근다고 했다. 이 말을 내게 귀띔해 준 이는 이 학교를 나온 교사였다. 교장도 부산상고 나온 사람이었다. 나도 노무현 대통령을 좋아하지만, 아이들이 먼저였다. 내가 전교조 분회장을 맡을 때라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다.
이번에는 교무회의에서 마이크를 잡지 않고, 교장실로 찾아가서 담판을 지었다. 없는 교문도 내야 할 판인데 있는 교문을 없애겠다니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억지였다. 교장의 점쟁이 논리가 학생이 먼저라는 내 논리를 이길 수 없었다. 옆문을 걸어 잠그지도 않았고, 대통령도 탄핵당하지 않고 일은 잘 끝났다.
그런데 그다음 해에 더 재미나는 일이 벌어졌다. 그 당시 김 아무개 ○○당 국회의원이 자기 아버지(김○○) 흉상을 학교 본관 앞에 세우고 싶다고 했다. 아버지가 부산상고를 나왔는데 흉상을 세워 주면 해마다 장학금으로 돈을 내놓겠다고. 이미 학교 본관 앞에는 김지태 씨 흉상 하나가 있었다.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자리에 누가 봐도 왜 세웠는지 알 수 없는 그야말로 흉상이었다. 김지태 씨는 부산상고를 나왔고, 한때 부산에서 첫 번째로 손꼽히는 부자였다고 한다. 그동안 후배들에게 장학금으로 큰돈을 내놓아서, 해마다 수십 명씩 아이들에게 김지태 장학금 주었다. 모교에 뜻을 기리는 흉상 하나 세워 줄 만했다.
이번에는 학교운영위원회가 열렸다. 나도 운영위원이라 회의에 들어갔다. 들어 보니 교장은 이미 마음을 정한 것 같았다. 아무도 교장 뜻을 거스르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학교에 흉상을 세우는 것은, 그 사람 삶이 훌륭해서 학생들에게 귀감이 되어, 우리 아이들이 본받고 살라고 세우는 것이지, 그 사람 이름을 빛나게 하려고 세우는 게 아닙니다. 김○○ 님은 친일 행적이 있어 학생들의 귀감이 되지 못합니다. 부산상고는 역사가 오래된 학교라 사회 곳곳에 훌륭한 분들이 많습니다. 김응룡 야구 감독님도 부산상고 나오셨고, 지휘자 금난새 님도 우리 학교 나왔습니다. 이 시대 지성으로 손꼽히는 신영복 선생님도 우리 학교를 나오셨습니다. 흉상을 세우려면 이런 분들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본받고 살겠지요. 그리고 장학금 낸다고 흉상 세워 주고 비석 세워 준다면, 얼마 안 가서 온 학교가 공동묘지처럼 되지 않겠어요? 저는 반대합니다.”
내 말에 교장이 반박하고 나왔다.
“친일했다는 것은 정확한 근거가 없습니다. 그리고 흉상을 세우는 비용도 모두 자기들이 부담한다고 했습니다.”
더 길게 말을 늘어놓았는데 기억이 안 나는 것으로 보아, 알맹이는 없이 얼버무리는 말이었지 싶다. 이러다가 안 되겠다 싶었다.
“그럼, 제가 하나 제안하겠습니다. 이런 일에 답을 해 줄 곳이 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에 공문을 보내 이분 흉상을 학교 세우려고 한다. 그래도 되겠는지 답변을 받아보고 정합시다.”
내가 원체 드세게 말하고, 또 내 뒤에는 전교조 분회원 선생님들이 버티고 있는 줄 잘 알기에 교장은 더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민족문제연구소에 공문을 보냈고, 이런 답변을 받았다.
“김○○는 친일 논란이 있는 사람이라, 학생들의 귀감이 되지 못하기에 학교에 흉상을 건립함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부산상고에서는 조금도 외롭지 않았다. 전교조 활동가들이 수두룩했다. 아마 부산 시내에서, 아니 전국에서 전교조 분회가 가장 꽃피었지 싶다. 분회 운영위가 따로 있었다. 모든 분회원이 모이기 힘들 때는 이 몇 사람만 모여 의논했다. 한 주에 한 번은 학교 가까운 보리밥집에서 분회원 모두가 함께 점심을 먹었다. 봄가을로 분회원 나들이를 갔는데, 우리 어머니가 사는 밀양 자두밭에도 갔다. 방학하면 1박 2일로 분회원끼리 서로 마음을 다지는 모임을 하고, 한 해를 마무리할 때는 분회 참실대회까지 했다. 나는 늘 ‘삶을 가꾸는 글쓰기’로 발표했고, 내가 해마다 엮어 내는 문집을 우리 분회원들이 끔찍이도 사랑해 주었다. 선생님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실습 나온 교생들도 문집을 탐내었다. 교생들끼리 있는 방에 문집을 한 권 주었더니, 모든 교생이 돌려가며 읽었다. 너덜너덜해진 문집을 꼭 한 권 갖고 싶다고 해서 선물로 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