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곳(1)

by 구자행

“헤이~ 부고.”

“헤이~ 부고.”

“응원 준비 됐나?”

“됐다.”

“왔다아아~”

“부고가 왔다~ 부우고가 왔다~ 야구장에 부우고가 왔다~ 대한민국~ 방방곡곡~ 부산고교~ 부산고교~ 불러 보세~ 불러 보세~ 만세 만세 부고 만세!”


해마다 봄이면 대통령배 야구대회 부산 예선이 대신동 야구장에서 펼쳐진다. 경고와 부고가 맞붙는 날은 두 학교 전교생이 야구장에 모인다. 시작부터 기 싸움이 대단하다. ‘잘살아 보세’ 노랫가락에 맞춰 이렇게 우렁차게 합창으로 문을 연다.

3루 쪽 관중석에서 부산고가 이렇게 포문을 열면, 이번엔 건너편 1루 쪽 관중석에서 경남고도 이에 질세라 큰북을 둥둥둥 울리면서, 앞뒤와 옆줄 그야말로 자로 잰 듯이 대오를 맞추어 앉았다가 한꺼번에 고함을 지르면서 일어선다. 그러고는 교복 윗도리를 펼쳤다, 오므렸다,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윗도리를 펼치면 온통 흰색이었다가 다시 오므리면 검은색이 되었다 하는데 그 모습이 칼로 자른 듯해서 입이 딱 벌어진다. 보는 사람이야 눈이 즐겁지만, 저렇게 하자면 3월 한 달을 체육관에서 얼마나 시달렸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경기는 지더라도 응원만은 결코 질 수 없다는 듯이.

그때 부산고에는 추신수 선수가 있었고, 경남고에는 이대호 선수가 있었다. 추신수 선수가 그때는 투수로 뛰었다. 왼손을 썼는데 공이 얼마나 빠른지 웬만한 타자들을은 모두 헛방망이질이었다. 그런 추신수 공을 이대호만은 쉽게 담장을 넘겨 버린다.

아무튼 우리 팀이 점수를 내거나 역전이라도 시키면 또 난리가 난다.

“부산 고가~ 경남 고를~”

이렇게 응원단장이 앞소리를 매기면, 전교생이 일어서서 발을 팍팍 구르면서 외친다.

“밟아 밟아 밟아 밟아 밟아 밟아 밟아.”

우리가 이렇게 야루면, 경남고는 점잖게 타이르듯 훈민정음 서문을 외운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쌔!”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쌔!”

우리는 너희처럼 수준 낮은 응원이 아니다. 이렇게 교양을 갖춘 사람들이라고 학식을 자랑하고 나온다.

따뜻한 봄날, 야구장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따뜻한 그림을 나만 떠올리고 웃음 짓는 것은 아닐 터이다. 그때 아이들도 가끔 떠올리면서 살겠지.

그런데 이 응원 기싸움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앰프 성능이다. 졸업생들도 몇몇 운동장에 찾아와서, 지난 학창 시절을 돌아보면서 후배들 경기를 구경한다. 조금이라도 건너편보다 스피커 소리가 작다 싶으면 곧바로 동창회의를 연다. 후배들 앰프 바꿔줘야겠더라. 다음날 바로 동창회장이 교장실로 찾아와 돈 뭉텅이를 놓고 간다. 내 기억으로 그때 소리 빵빵한 신형 앰프가 오백만 원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교장이 이 돈을 떼먹었다는 거다. 앰프는 학교 예산으로 사고, 동창회에서 받은 오백만 원을 제 주머니에 넣었다. 어쩌다 내 귀에 이 말이 들어왔다. 이것 말고도 더 있었다. 서울 명문 대학에 붙은 아이들에게 1인당 50만 원씩 주는 장학금도 떼먹었다는 거다. 또 있었다. 여름방학 때 1학년 학생들 국토순례대행진 하면서 밤에 잘 때, 졸업생이 운영하는 숙소에서 잤단다. 교장도 같이 걸으면서 채신머리 없이 자기가 돈주머니를 차고 다니면서 밥값이고, 물값이고, 숙박비까지 셈을 치렀다는 거다. 졸업생한테는 후원받으면서, 돈은 제 주머니에 넣고. 이것 말고도 두 건이 더 있었다.

이렇게 약아빠진 놈이 다 있나 싶었다. 교장도 이 학교를 나왔다. 그런데 아무도 말하지 못했다. 교장한테 부장 자리를 얻었거나, 3학년 담임 자리를 얻었거나, 교장 후배이거나 했다. 지금이야 담임이고 부장이고 모두 손사래 치지만, 그때는 진급하자면 부장 자리를 얻어야 했고, 학부모 돈봉투가 탐이 나서 3학년 담임을 서로 하려고 했다.

다섯 가지를 낱낱이 밝혀 적었다. 글 제목을 ‘전 교직원에게 알리는 글’로 뽑았다. 아침 교무회의가 열리기 전에 앞앞이 한 장씩 나눠 주었다. 교장과 교감이 앉을 자리에도 한 장씩 놓아두었다. 그러고 내가 마이크를 잡았다.

“이건 범죄입니다.”

첫 목소리가 떠는 게 느껴졌다. 떨면 안 되는데 숨을 한 번 크게 쉬고,

“만약 떼먹은 돈을 모두 돌려주지 않으면, 저는 고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오늘 이 자리에서 바로 답하기 곤란하시면, 제가 이렇게 공식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처럼, 돈을 다 물어내고 교장 선생님도 공식으로 답변해 주십시오.”

힐끔 보니, 교장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꿀 먹은 벙어리다. 온 교직원 앞에 톡톡히 망신당한 거다. 속으로 이를 갈았겠지. ‘구자행, 두고 보자.’ 나는 부산고 4년 있으면서 한 번도 3학년 담임을 해 보지 못하고, 아이들과 수학여행만 세 번 갔다.

2학년 담임을 하면서 나이 젊다고 나를 학년 총무를 하라고 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떠맡았다. 그때는 학원 문제지를 돈 주고 사서 사설 모의고사를 쳤다. 그런 돈은 행정실로 가지 않고, 담임이 아이들한테 돈은 받아 나에게 주면, 내가 모아서 업자에게 건넸다. 그런데 부장이 나한테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받아 두어요.”

“이거 무슨 돈입니까?”

“모의고사 업자가 주는 돈인데, 그냥 학년 경비에 넣어두면 돼요.”

그러고 부장은 자기 자리로 갔다.

조금 있다가 나도 부장 자리로 갔다.

“저는 이런 블랙 마니는 받지 않습니다.”

돈봉투를 부장 책상 위에 내동댕이치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내 목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온 교무실 선생님들이 한순간 얼음이 되었다. 부장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지만, 아무 말도 못 했다. 속으로 이를 갈았겠지. 그 뒤로는 학년 총무를 맡기지 않았다. 그때 아이들은 나를 ‘고자행님’이라 했고, 동료 교사들은 ‘블랙 마니’라 불렀다.

부산고 있을 때, 일이 또 하나 떠오른다.

2학년 담임할 때다. 학년 회의하는데, 반마다 10명씩은 보충수업비를 학년 총무 선생한테 내라는 거다. 한 반이 35명 안팎이었데, 25명은 행정실 스쿨뱅킹으로 내고, 나머지 열 명 아이들 이름을 총무 선생한테 주라는 거다. 총무가 ‘손뱅킹’으로 받는다고 했다.

또 나 혼자 반대하고 나섰다.

“안 됩니다. 이걸 관행이라 생각하시는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엔 범죄입니다.”

이번에는 고발한다는 말도 안 통했다. 눈치를 보니 ‘고발하려면 해 봐’가 아니라 ‘니 배짱에 고발하겠나’였다.

부산시교육청 누리집에 공개 편지를 길게 썼다. 이번에는 글 제목을 ‘남○○ 장학사님께 드리는 공개 질의서’였다. 그때 남○○ 장학사가 중등교육과장이었다.

“저는 부산고에 근무하는 구자행입니다.”

이렇게 내 이름을 밝히고, ‘손뱅킹’을 알고 있느냐?, 이게 부산 시내 모든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관행이다, 이거 밝혀지면 교육감님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할지 모른다, 빨리 실태 조사 하시라, 내가 이렇게 공개로 물었으니 장학사님도 공개로 답변해 주시면 좋겠다.

이번에는 부산시 고등학교가 확 뒤집힌 것 같았다. 들려오는 소문으로, 같은 전교조 교사들도 나를 욕한다는 것이다. 저 혼자 깨끗한 척한다고. 그러면 학년 경비가 없는데 무슨 돈으로 학년이 돌아가냐고. 남○○ 장학사는 끝내 답변이 없었고, 다른 젊은 장학사가 학교로 나를 찾아왔고, 교장도 나를 따로 불러 이제 그만하면 안 되겠느냐고 타일렀다. 나도 그쯤 하고 말았다. 그 뒤로 점심을 혼자 먹었다. 교사들 모두가 나를 따돌리는 것 같았다. 아니다. 내가 그들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돌아보니 이때가 참 힘든 시절이었다.

그래도 부산고 4년을 꿋꿋하게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이들이고, 글쓰기였다. 해마다 문집을 냈다. 1999년에 <할아버지 담배>, 2000년에 <버림받은 성적표>, 2001년에 <밥상 앞에서>, 2002년에 <꽃잎>을 냈다. 이 문집들이 2005년 엮어 낸 아이들 시집 ≪버림받은 성적표≫의 바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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