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깔나게 쓴 시

by 구자행

7교시에 4층 2학년 7반 교실에서 공부 마치고 나오다가

복도에서 가희를 만났다.

“샘, 우리 시 쓰기 또 언제 해요?”

가희랑 지난해 국어 공부를 함께 했다.

이름을 외우는 데 꽤 오래 걸렸다.

다섯 번은 물었지 싶다.

가희는 그때마다 웃으면서 이름을 다시 알려 주었다.

“다음 주 월요일. 왜? 기다려지나 봐?”

“저는 아직 보여 드리지 않았는데, 맛깔나게 썼거든요.”

지난 시간에 아이들이 저마다 쓴 시를 들고 오면

나랑 함께 이야기 나누면서 시를 다듬었다.

가희는 아직 시를 들고 오지 않았다는 말이다.

태블릿을 열어 시를 보여준다.

“샘이 보시기에 맛깔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맛깔나게 썼다는 시 제목이 <서양>이다.

<윤리와 사상> 시간에

동양 사상부터 배울 줄 알고

방학 때 미리 공부해 두었 더랬는데

첫 시간에 선생님한테 서양 사상부터 배운다는 말을 들은 모양이다.

가희가 쓴 시를 나도 맛깔나게 읽었다.

서양 / 고2 전가희

윤사 첫 시간이다.

드디어 60일 동안 배운 걸

써먹을 시간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는

공자도 만나고

지폐에서만 보던

이황도 만나고

해골바가지 물 먹고

식겁한 원효도 만났다.


이 모든 걸

이제 펼쳐낼 시간이다.

그런데

“이번 중간시험 범위는 서양부텁니다.”

머리에 ‘공자’ 말고 ‘공’을 맞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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