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하루의 한 조각

by 구자행

점심시간 학교 한 바퀴 걷다가

느티나무 쉼터에서 1학년 여학생 셋을 만났다.

한 아이가 핸드폰에 ‘정민우’ 이름을 쳐서 내밀면서

나더러 아느냐고 묻는다.

“키 크고 농구 잘하는 민우 말이지?”

“네. 맞아요! 맞아요!”

“잘 알지. 민우는 시를 잘 써요.”

“공부도 잘해요?”

“되게 잘하지는 못해.”

민우는 농구에 빠져 공부는 뒷전이다.

“왜? 내가 말해 줄까?”

“안 돼요. 절대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요!”

그러면서 뭐가 좋은지 셋이 깔깔깔 웃어댄다.

곧이말인지 뒤집은말인지 아리송해도

반짝이는 눈빛으로 봐서는 아무래도 뒤집은말 같다.



연산역에서 양정역까지 / 사직고2 정민우


농구 학원이 끝나고

등이 땀에 젖은 채

연산역 골목을 걸어 나오니

도시도 노을빛으로 젖어 있다.


빠르게 지나치는 차들 옆으로

나는 느리게 걷는다.

하루를 던지고 돌아오는 발걸음

높은 아파트 건물들이 하늘을 베고 누워

꿈을 꾸는 사이

나는 그 발밑 보도를 걸으면서

오늘의 나를 조용히 내려놓는다.

누군가에겐 바쁜 풍경일지 몰라도

내겐 낭만이다.

이 도시의 소음과 불빛,

오가는 사람들과 시원한 바람

모든 것이 나를 안아 주고 있으니까.


양정역에 다다를 즈음

노을이 내 이마에 입을 맞춘다.

오늘 나는 이 아름다운 하루의 한 조각이었다.

(2025.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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