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영국말을 두고서, 대놓고 말하지 않고 빗대어서 에둘러 말한다고 한다. 비유가 뛰어나다고. 그래서 매우 값진 말이라고.
“셰익스피어가 울고 가겠다.”
“어 피스 어브 케잌(식은 죽 먹기)”
“유얼 하이 메인트런스(손이 많이 가는 사람이다)”
정말 영국말만 그럴까? 찾아보면 우리 말에도 빗댄 말이 수없이 많다.
“뜬금없다, 낯간지럽다, 귀엣말하다, 어처구니없다, 감때사납다, 맞장구치다, 감쪽같다, 귀신 씻나락 까먹는다, 해장작을 팬다, 빛 좋은 개살구다 …….”
그런데 이토록 그윽한 맛이 우러나는 말들을 내팽개치고, [2음절 한자말+하다]로 된, 이 멋대가리 없는 말을 하고 산다. 판에 박은 말이라 늘푼수 없고, 싹수도 없는 말이다. 들으면 위에서 내리누르는 행정 냄새가 물씬 난다. 이 말로 무엇을 새롭게 빚어내거나 펼쳐낼 수 있겠는가? 어림도 없지 싶다.
“간섭하다, 간여하다, 개입하다, 관계하다, 관여하다, 상관하다, 참견하다”
‘간섭’ ‘간여’ ‘개입’ ‘관계’ ‘관여’ ‘상관’ ‘참견’ 이런 한자말들이 어떤 뜻넓이를 지녔는지, 아무도 그 말뜻을 가릴 수 없다. 사전을 뒤져 보면, ‘간섭하다’는 ‘부당하게 참견하다’로 풀이해 놓았고, ‘참견하다’를 찾아보면 ‘간섭하거나 관계하다’로 풀이해 놓았다. 그래서 ‘관계하다’를 찾으니 ‘어떤 일에 참견하거나 주의를 기울이다’로 풀이했다. 이번에는 ‘간여하다’를 찾으니 ‘관계하여 참여하다’로 풀었고, ‘개입하다’를 찾으니 ‘끼어들어 관계하다’로 풀어 놓았다. ‘관여하다’를 찾으니 ‘관계하여 참여하다’로 풀었고, ‘상관하다’를 찾으니 ‘남의 일에 간섭하거나 신경을 쓰다’로 풀이해 놓았다. 이렇게 뒤죽박죽으로 돌려막기해 놓은 것은 누구도 말뜻을 가릴 수 없기에 그랬을 터이다. 그저 눈대중으로 어림하여 이것 썼다가 저것 썼다가 한다는 말이다. 이게 개수만 늘었다고 좋아할 일인가? 내 눈에는 우리 말을 어지럽히는 사나운 무리 같아 보인다.
그럼 어떤 말을 하고 살아야 할까?
[2음절 한자말+하다]로 된 말을 뜯어보면 잡탕말이다. 몸통은 일본말을 그대로 베껴온 말이고, 꼬리는 우리 배달말이다. 이렇게 빚어낸 말이 무려 4~5천 낱이나 된다. 참으로 놀랍다. 든사람들이 쓴 글을 한번 눈여겨보면, 풀이말이 죄다 이 잡탕말이다.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지점이 노출되어 우려하고 있다.”
온통 이 모양이다. 우리 풀이말을 이 잡탕말이 모조리 잡아먹었다. 이 잡탕말을 버려도 얼마든지 우리 배달말로 살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다. 우리 배달말이 얼마나 넉넉하고 가멸진지, 또 얼마나 깊고 그윽하고 맛깔 나는 말인지 여살펴 보자.
고맙다(감사하다),
아랑곳하다(간섭하다), 너그럽다(관대하다),
나무랄 데 없다(완벽하다), 감쪽같다(완전하다), 아리송하다(모호하다),
몸소 보다(목격하다),
안간힘을 쏟다(노력하다), 얼토당토않다(부당하다), 나몰라라하다(무관심하다), 어렵잖다(무난하다), 어림없다(불가능하다),
똑 부러지다(단호하다), 본데없다(무례하다), 터무니없다(무모하다),
이끌다(선도하다),
들쑤시다(선동하다), 입씨름하다(토론하다), 꼼꼼하다(섬세하다),
너끈하다(충분하다),
또렷하다(분명하다),
틀림없다(정확하다),
간추리다(정리하다),
대꾸하다(대답하다), 맞장구치다(반응하다), 매듭짓다(수습하다), 판가름하다(판단하다), 저울질하다(평가하다), 내보이다(제시하다),
붐비다(복잡하다),
건네다(전달하다),
감싸다(두둔하다), 곤두박질치다(급락하다), 치솟다(급상하다),
빚어내다(창조하다),
일구어 가다(실천하다),
꾸리다(기획하다),
마침맞다(유용하다),
다듬다(가공하다),
업신여기다(멸시하다), 얕잡아보다(무시하다), 터무니없다(사실무근하다), 가냘프다(연약하다),
마련하다(준비하다),
애바쁘다(시급하다), 홀가분하다(편안하다), 느긋하다(한가하다),
호젓하다(한적하다),
씻은 듯이 낫다(쾌차하다), 짓밟다(침해하다),
스스럼없다(각별하다), 마음먹다(결심하다),
짬짜미하다(유착하다, 공모하다), 부질없다(공허하다),
촘촘하다(과밀하다, 자세하다), 뽐내다(과시하다),
떠벌리다(과장하다),
다독이다(위로하다),
탈바꿈하다(변화하다, 진화하다), 게으르다(나태하다, 태만하다),
거덜 내다(탕진하다),
싹 트다(태동하다, 발아하다),
샅샅이 찾다(탐색하다),
알맞다(적당하다),
여살피다(점검하다, 검토하다), 베풀다(봉사하다, 제공하다), 앞지르다(추월하다),
넘볼 수 없다 휘어잡다(압도하다)
2음절 한자말에 ‘-하다’가 붙은 말을 모조리 걷어내고, 우리 배달말을 되찾겠다고 굳게 마음먹고 일한 지 벌써 세 해째 접어들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대로 옮겨왔다. 이 일을 처음 할 때는 한자말에 ‘하다’가 붙은 풀이말이 이만큼이나 될 줄 몰랐다. 어림잡아 1~2천 낱쯤 되겠지 싶었다. 그리고 이 말들에 걸맞은 우리 토박이말이 다 있을지 미심쩍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몇몇 낱말을 빼고는 모두 찾아냈다.
[한자말+하다]는 그 옛날 면사무소 냄새가 물씬 난다. 어릴 적 시골 마을 공무원은 ‘벼가 쓰러졌다’ 말하지 않는다, 시골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고 주눅 들어 대들지 못하게 하려고, 또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아는 체하려고 ‘벼가 도복했다’ 그랬다. 옛날만 그럴까. 지난 여름에 자전거 타면서 보니까, 만덕고개 길가에 난 도랑을 손보면서 펼침막에 이렇게 써 놓았다.
“온천동 만덕고개 일원 측구 보수 공사”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측구’를 버리고, 우리 말 ‘도랑’이라 하면 좀 좋을까. “온천동 만덕고개 언저리에 도랑을 말끔히 손봅니다” 이렇게 써 붙여놓으면 지나가던 강아지도 알아보고, 날아가던 까마귀도 눈치채고 조심할 터이다.
말이란 게 옷을 고르듯이, 또 먹거리 고르듯이 제 입맛 따라 골라 쓰는 거라서 이래라저래라 아랑곳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어느 쪽 말을 하면서 살아야 좋을지 저울질해 보라는 말이다. 한쪽은 바로 우리 삶에서 우러난 말이라서 쉽고도 또렷하고, 아름답고도 깨끗하고, 말맛이 깊고도 그윽하다. 다른 한쪽은 일본말을 그대로 베껴온 말이다. 우리 삶에서 우러난 말이 아니다 보니, 뜻이 흐리멍덩하고 그윽한 말맛도 없는 판에 박은 말이다. 동그라미나 가위표나 화살표 같은 기호처럼 느껴진다.
그 사람이 즐겨 쓰는 말이 무어냐에 따라 사람마다 빚어내는 삶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마치 우리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몸이 따라가듯이. 한 사람 삶만이 아니라 한 겨레가 나아가는 길도 말에 달렸다. 깨끗한 배달말을 익혀 쓰면, 사람들 마음이 깨끗해지고 누리도 깨끗해질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