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밥'은 우리 삶 위로 옮겨온 '달'
누가 저기다 밥을 쏟아 놓았을까 모락모락 밥집 위로 뜨는 희망처럼
늦은 저녁 밥상에 한 그릇씩 달을 띄우고 둘러앉을 때
달을 깨뜨리고 달 속에서 떠오르는 노오란 달
달은 바라만 보아도 부풀어오르는 추억의 반죽 덩어리
우리가 이 지상까지 흘러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빛을 잃은 것이냐
먹고 버린 달 껍질이 조각조각 모여 달의 원형으로 회복되기까지
어기여차, 밤을 굴려가는 달빛처럼 빛나는 단단한 근육 덩어리
달은 꽁꽁 뭉친 주먹밥이다. 밥집 위에 뜬 희망처럼, 꺼지지 않는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57』(조선일보 연재, 2008)
달을 섬기듯 밥을 섬기다
사람들에게 달은 흔히 꿈과 이상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입니다. 때로는 ‘우러러보는 대상’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화자는 밥을 그와 같은 위상으로 봅니다. 화자는 달을 '쏟아 놓은 밥'으로 보며, 사람들이 우러르는 달을 생활의 자리로 끌어와서 밥과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이 시에서 밥은 단순한 끼니가 아닙니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밥 한 그릇은 가족을 살리고 하루를 버티게 하는 가장 구체적인 목표, 말하자면 '생활 속의 이상’입니다. 그래서 화자는 달을 보듯 밥을 바라보고, 달을 대하듯 밥을 대합니다. 하늘의 이상이 밥상으로 옮겨 오는 순간, 달과 밥은 서로를 닮은 정도를 넘어 서로를 대신하는 이름이 됩니다.
누가 저기다 밥을 쏟아 놓았을까 모락모락 밥집 위로 뜨는 희망처럼
늦은 저녁 밥상에 한 그릇씩 달을 띄우고 둘러앉을 때
달을 깨뜨리고 달 속에서 떠오르는 노오란 달
밥상 위에 뜬 달
화자는 달을 '쏟아 놓은 밥'처럼 보고, '모락모락'이라는 말로 달빛을 밥김 같은 따뜻한 기운으로 바꿉니다. 달빛이 희망처럼 느껴지듯, 밥집 위로 피어오르는 김도 희망처럼 느껴집니다. '한 그릇씩 달을 띄우고'라는 말은 그 희망을 하늘에만 두지 않고, 식구들 각자의 그릇 위에 밥으로 나눠 놓는 가치로 만들겠다는 뜻처럼 들립니다. 소복하게 떠 놓은 흰 밥을 위에서 내려다보면 보름달처럼 둥글고 봉긋하니, 화자는 결국 밥이 곧 나의 달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1연 마지막에서는 비유가 겹칩니다. '달을 깨뜨리고 / 노오란 달'은 밥을 숟가락으로 파헤치는 동작을 ‘깨뜨린다’고 말해 달을 ‘보는 것’에서 ‘먹는 것’으로 바꿉니다. '노오란'이라는 색채는 달걀 노른자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여, 밥을 달로 바꾼 뒤 다시 달걀처럼 느끼게 하는 이중의 비유를 만듭니다. 겉의 흰 달(밥)이 생존의 달이라면, 속의 노란 달은 한 끼 속에 숨은 작은 기쁨, 삶의 알맹이처럼 보입니다.
달은 바라만 보아도 부풀어오르는 추억의 반죽 덩어리
우리가 이 지상까지 흘러오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빛을 잃은 것이냐
밥은 삶을 치대어 만드는 반죽
여기서 달, 곧 밥은 '추억의 반죽 덩어리'가 됩니다. 반죽은 치대고 기다리고 부풀려야 형태를 얻듯, 밥 한 그릇에는 우리가 흘린 땀과 시간, 지나온 일들이 반죽처럼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바라만 보아도 부풀어오른다'는 말은, 밥상을 마주하는 순간 과거의 시간이 마음속에서 다시 커지는 것을 보여 줍니다.
여기서 '이 지상까지 흘러오기'는 하늘의 '달'과 같은 이상인 '밥'이 상위에 놓여지기까지의 과정을 말할 것입니다. 이어지는 질문 '얼마나 많은 빛을 잃은 것이냐'는 그 과정의 대가를 묻습니다. 여기서 ‘빛’은 먹고살기 위해 깎여 나간 꿈, 순수, 여유 같은 ‘빛나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밥은 ‘빛을 잃은 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는 여기서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빛은 줄어들 수 있어도, 삶은 다른 형태의 힘을 만들어 냅니다.
먹고 버린 달 껍질이 조각조각 모여 달의 원형으로 회복되기까지
어기여차, 밤을 굴려가는 달빛처럼 빛나는 단단한 근육 덩어리
달은 꽁꽁 뭉친 주먹밥이다. 밥집 위에 뜬 희망처럼, 꺼지지 않는
빈 그릇을 다시 채우기 위해
'먹고 버린 달 껍질'은 한편으로는 먹고 난 뒤의 빈 그릇을, 다른 한편으로는 1연의 ‘깨뜨림’이 남겨 둔 달걀껍질을 연상시키며 비어 있음과 남은 자리를 뜻합니다. 그런데 시는 그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껍질이 '원형으로 회복'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달이 이지러졌다가 다시 차오르는 순환이면서, 동시에 빈 그릇이 다시 채워지도록 밥을 마련하는 생활의 순환이기도 합니다. 그 회복을 움직이는 힘이 '어기여차'이고, 여기서 달빛은 낭만이 아니라 밤을 굴려 보내는 힘이 됩니다.
그래서 '단단한 근육 덩어리'가 나옵니다. 달은 빛이 돌아오며 차오르듯, 사람은 근육이 움직여 일하고, 그 노동으로 다시 밥을 얻습니다. 마지막의 '주먹밥'은 이를 잘 보여줍니다. 집에서는 소복한 밥이지만, 일터에서는 버티기 위해 단단하게 뭉친 주먹밥이 됩니다. 달이 결국 주먹밥이 되는 것은, 그 이상이 노동의 현장에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밥집 위에 뜬 희망'이 끝에 다시 돌아오며, 희망이 김 같은 기운에서 주먹밥 같은 실체로 굳어졌음을 보여줍니다.
밥은 삶 위로 옮겨진 달
이 시는 멀리 있는 하늘을 동경하는 노래가 아닙니다. 화자는 하늘의 달을 밥상으로 끌어내리고, 따뜻한 김이 나는 생활 속으로 옮기고, 마침내 노동의 현장으로 데려갑니다. 그래서 화자에게 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하늘의 이상이 내 삶의 자리로 옮겨진 지상의 달입니다.
우리는 소복하게 담긴 밥그릇을 내려다보며, 또 일터에서 주먹밥을 쥐며 생각합니다. '이것이 나를 살게 하는 진짜 달이다.' 달빛이 희망이라면 밥김도 희망이고, 그래서 달이 차오르듯 근육을 움직여 또 한 끼를 만들어 내는 것이 이 시가 말하는 삶의 의지입니다.
[비평 노트]
일부 해설이 이 작품을 이미지의 기발한 변주(달→밥→반죽→근육)나 달의 순환(회복)에 무게를 두었다면, 나는 그 변주가 결국 생활의 무게로 수렴한다고 보았습니다.
첫째, 달과 밥의 동일시는 단순한 언어 놀이가 아니라 '이상의 자리'가 하늘의 달에서 밥상의 밥으로 이동한 결과입니다.
둘째, '빛을 잃음'을 막연한 허무가 아니라, 밥을 얻기 위해 깎여 나간 삶의 비용을 묻는 질문으로 보았습니다.
셋째, '근육/주먹밥'은 회복의 상징을 넘어, 끼니를 다시 채우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노동의 현실을 정면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나는 이 시를 ‘달을 반죽으로 만든 재미’보다, '하늘의 이상을 땅의 현실로 옮겨 온 생활인의 간절한 기원'으로 읽었습니다.
지금은 '2008년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조선일보)'을 해설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 기존에 내가 고른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다 모아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