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절한 화가의 미학적 유서
해바라기의 비명(碑銘)
-청년화가 L을 위하여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한국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82』(조선일보 연재, 2008)
[배경 읽기] 청년화가 L을 위하여
이 부제로 보면, 시 속의 ‘나’는 죽은 청년 화가가 자신의 마지막 당부를 남기는 목소리일 수도 있고, 혹은 시인이 그를 대신해 써 주는 비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이 작품이 '돌에 새긴 문장'보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으로 남는 추모를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바라기·보리밭·하늘·새 같은 이미지는 단지 상징만이 아니라, 마치 한 폭의 화면처럼 색과 원근과 상승선을 갖추며 우리의 시선을 끕니다.
특히 ‘화가’를 명시한 부제는 이 시를 회화적으로 읽게 만드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많은 연구들이 이 작품을 반 고흐의 ‘해바라기’ 연작, ‘밀밭’ 연작과 함께 제시하며 시와 그림을 상호텍스트로 하여 해석하는 사례도 있습니다. 그러나 단정할 일이 아닌 만큼, '젊은 예술가의 요절과 그 열정'이라는 주제 안에서, 시가 이렇게 강렬한 색채와 비상(飛上)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듯합니다.
죽음 이후에도 '돌'이 아니라 '빛'으로 남고 싶다
이 시의 화자는 자신의 사후를 가정하며, 보편적인 추모의 방식인 '비석'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대개 무덤 앞에는 죽은 이를 기리기 위해 차가운 돌을 세워 그 이름을 고정합니다. 그러나 화자는 그러한 정지된 기념물을 자신을 '박제'하는 것으로 여깁니다.
대신 그는 해바라기, 보리밭, 노고지리와 같은 역동적인 자연물을 통해 자신의 무덤이 생명력이 넘실거리는 장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기서 제목의 '비명(碑銘)'은 돌에 새기는 글자이지만, 같은 음을 가진 비명(悲鳴)을 연상시키면서, 죽음이 가져오는 차가운 침묵에 저항하는 뜨거운 생의 외침으로도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거운 비(碑)ㅅ돌을 세우지 말라.
비석을 거부하는 단호한 어조
화자에게 비석은 단순히 기억의 매개체가 아닙니다. 그것은 살아 움직이던 한 인간의 역사와 감정을 '차갑게' 굳혀 버리는 단절의 상징입니다. 화자는 자신의 삶이 화석화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죽음 이후에도 생동하는 존재로 남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생명으로의 전환
무덤 주변에 심어달라는 해바라기는 어둠과 슬픔의 공간인 무덤을 빛과 생명의 공간으로 뒤바꾸는 장치입니다. 해바라기는 늘 태양을 갈구하는 꽃으로, 이는 화자가 죽음 이후에도 지상의 빛과 온기를 놓지 않겠다는 열망을 시각화한 것입니다.
'남겨진 이름'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형상'으로 남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시선의 무한한 확장
해바라기 줄기 사이로 보이는 보리밭은 무덤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을 광활한 대지로 확장시킵니다. 좁은 땅속에 갇히는 대신, 살아 있는 것들이 일렁이는 끝없는 들판을 바라보겠다는 것입니다. 화자는 죽음이 결코 삶과의 단절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사랑의 시각적 형상화
화자는 해바라기를 자신의 사랑으로 보아 달라고 요구합니다. 해바라기의 노란빛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한때 삶을 환하게 밀어 올리던 사랑의 온도인 것입니다.
여기서 태양은 어떤 특정한 대상이라기보다, 끝까지 향하고 싶었던 삶의 방향에 가깝습니다. 태양을 향하는 해바라기의 습성은 곧 화자의 사랑이 지녔던 한결같음, 그리고 화려함을 형상화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화자는 자신의 사랑이 기억 속의 감상이 아니라, 눈앞에서 계속 빛나는 형태로 남고 싶은 것입니다.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이상을 향한 비상
마지막에 등장하는 노고지리는 땅의 풍경(보리밭) 위에서 하늘로 치솟는 존재입니다. 화자는 그 새를 자신의 꿈으로 읽어 달라고 말합니다.
사랑이 ‘빛’이라면, 꿈은 ‘상승’입니다. 죽음이라는 물리적 종결이 있어도, 화자의 정신적 이상은 멈추지 않고 위로 뻗어 오른다는 선언입니다. 노란 해바라기(사랑)와 푸른 들판·하늘(꿈)의 대비는, 화자의 삶을 색채와 운동감으로 또렷하게 각인시키며 시를 마무리합니다.
죽음의 언어를 생명으로 치환한 작품
이 시는 한국 현대시사에서 '생명파' 문학이 도달한 미학적 성취를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인간의 필연적인 숙명인 죽음을 다루면서도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선명한 색채 대비(노란색과 푸른색)와 상승하는 이미지를 통해 삶의 찬란함을 극대화했습니다.
이 시는 '기념비적 추모'라는 경직된 관습을 '생명적 추모'라는 역동적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점에서 독보적인 가치를 지닙니다. 슬픔의 절규가 아닌 생의 환희로 가득 찬 이 '비명'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어진 삶을 얼마나 뜨겁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는 강렬한 메시지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2008년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조선일보)'을 해설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 기존에 내가 고른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다 모아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