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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해설과 감상

- 모란 그 자체가 소망이어도 좋은

by 느티나무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모란이 피기까지의 '기다림'과 모란이 떨어져버린 뒤의 '절망감'이라는 이중적 갈등을 반복적으로 다루고 있다. 기다림이 무산되어버리는 순간 다가오는 절망감을 시인은 '설움'의 감정 속에 농축시키고 있는데, 마지막 행에서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리겠다는 화자의 의지는 절망을 절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

이 시에서 모란의 모습이나 향기, 그리고 뚝뚝 떨어지는 정서적 무게는 물론 화창한 봄의 찬란함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처럼 모란에 무르녹아 있는 설움과 기다림의 정서를 감지할 때 이 시가 '봄'과 '모란'을 노래한 절창(絶唱)의 작품임을 인식하게 된다. 주체와 대상을 구별하지 않는 서정시의 원리를 극대화시킨 작품으로 널리 애송되고 있다.

- 이응백, 김원경, 김선풍. '국어국문학자료사전' -



커다란 삶의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림,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지고 난 후 그 가치와 의미가 퇴색하거나 소멸하면서 생기는 비애를,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고 그 꽃이 피었다가 지는 과정으로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모란은 영랑이 가장 좋아했던 꽃이라고 합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1-2행 - 모란이 피기를 기다림[현재]

'모란'으로 상징되는 '소망'에 대한 기다림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란'은 봄에 피니 '봄'은 '소망이 이루어지는 시간'입니다. '아직'이라는 부사를 통해, '그 소망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3-4행 -모란이 지고 난 후의 슬픔 [미래]

'설움에 잠길 테요'라는 표현에서 화자는 이미 모란이 지고 난 후의 슬픔을 알고 있으며, 그 슬픔을 기꺼이 감당할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비로소'라는 시어는 '모란이 진 후에'라는 뜻이니, 모란이 질 때까지는 모란을 보는 기쁨만을 생각하고 모란이 지는 설움은 생각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뚝뚝'이라는 표현에서, 모란이 질 때 화자의 절망감이 얼마나 큰 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5-10행 - 모란이 지고 난 후의 슬픔과 절망감 [과거의 체험]

3-4행에서 모란이 지고 난 후에야 깊은 슬픔과 절망감에 빠질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바로 시적 화자가 과거에 거듭 체험했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모란이 지는 것은 봄의 막바지 오월입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모란이 지고, 진 모란마저 시들고 말라 사라집니다. 모란이 피었을 때의 '뻗쳐 오르던 보람'은 와르르 무너지고, 지난 일 년 간 기다려 이루어졌던 소망이 덧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 슬픔에 화자는 '삼백예순 날'을 늘(하냥) 울고 지낸다고 합니다. '삼백예순 날'은 수치로 계산할 시구가 아닙니다. 그저 모란이 졌을 때의 슬픔이 얼마나 깊은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한 과장적 표현일 뿐입니다.

이런 체험을 통해, 화자는 3-4행의 미래를 예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11-12행 - 모란이 피기를 기다림 [현재]

그럼에도 화자는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겠다는 의지를 버리지 않습니다. 간절한 소망과 달성의 기쁨, 기쁨의 소멸과 좌절, 그리고 다시 간절한 소망, 이런 과정이 바로 삶 자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찬란한 슬픔'이라는 모순 형용(꾸미는 말과 꾸밈을 받는 말 사이에 논리적 모순이 존재하는, 역설적 표현의 한 유형)에서, '찬란한'은 '모란이 피었을 때의 환희'를, '슬픔'은 '모란이 지고 났을 때의 설움'을 표현합니다. 그 두 가지의 사태를 예상하면서도, 화자는 모란이 피기를 기다리겠다는 것입니다.


* '성취 이후에 기쁨의 소멸과 좌절이 오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소망을 품고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는 삶의 태도'라고 주제를 정리하고, 소망을 식민치하의 지식인들이 가졌던 실의와 좌절감 속의 큰 가치라고까지 확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러나, 화창한 봄의 찬란함이 가득한 모란꽃밭의 정경이, 너무나 곱고 섬세해서 애상감이 느껴지는 정조가, 마치 옥을 쪼듯이 곱고 아름답게 고르고 다듬은 우리말 율조 가운데 느껴질 때, '모란'은 더 이상 무엇일 필요 없이 그냥 그 아름다움 자체로 '소망'이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 지금은 '2008년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조선일보)'을 해설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 기존에 내가 고른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 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다 모아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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