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빛과 연기 사이, 공감의 동반자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디나 계실 것이면,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 드리지.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
1935년 박용철이 펴낸 『영랑시집』(시문학사)에 수록되었다. 총 4연으로 1연과 3연은 각 3행, 2연과 4연은 각 4행으로 되어 있다. 이 시는 『시문학』 2호에 실린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후에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로 개제)와 함께 ‘내 마음’이 표제로 되어 있다. 이 시는 내 마음을 나와 같이 알아줄 사람을 염원(念願)한 노래다. 지금은 내 앞에 없는, 그러나 내 마음을 잘 알아줄 사람을 향하여 도란거리듯이 속삭이고 호소하고 있다. 요컨대 이 시는 구김살 없이 짜여진 시어들 하나 하나가 표상하는 이미지의 선명도(鮮明度)는 물론, 그 율격조차도 곱게 다듬어져 있다.
- 권영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
이 작품은 계몽적 교훈이나 정치적 목적에서 벗어나, 순수 서정과 언어의 세련미를 정면으로 추구한 영랑의 시 세계를 잘 보여줍니다. 화자는 부드럽고 섬세한 어조로, 자기 마음을 온전히 알아줄 단 한 사람을 조용히 찾습니다. 티끌·눈물·이슬 같은 미세하고 맑은 자기 마음의 감수성과 직관은 불빛 속의 희미한 연기 같은 것이어서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인데, 이러한 시심(詩心)을 알아줄 사람입니다.
간절한 그리움을 호소력 있는 목소리와 남도 특유의 섬세한 감각적 시어를 바탕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모두 네 연이 기·승·전·결의 4단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내 마음을 아실 이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그래도 어디나 계실 것이면,
내 마음을 알아줄 그 사람에 대한 기대(기)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를 반복하고 ‘어디나 계실 것이면’이라는 가정법을 사용하여, 현실에는 아직 없는 사람(나를 이해해 줄 사람)에 대한 염원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마음에 때때로 어리우는 티끌과
속임 없는 눈물의 간곡한 방울방울,
푸른 밤 고이 맺는 이슬 같은 보람을
보밴 듯 감추었다 내어 드리지.
그 사람과 나눌 나의 마음(승)
화자는 그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마음을 드리겠다고 다짐합니다. 미세한 동요(티끌), 모든 고뇌가 그대로 응결된 솔직한 감정(눈물), 맑게 응결된 마음의 빛(보람)이 그것입니다. 아마 자신만이 깊이 감추어 두었던 보배같은(보밴 듯) 시심(詩心)을 특별한 사람에게만 열어 보이겠다는 말일 것입니다.
사실 시심은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이 ‘드림’은 단순한 ‘헌신(獻身)’이 아니라 화자의 내면세계에 대한 그 사람의 이해와 공감(共感)을 요구하는 바람으로 이해해야 할 듯합니다.
아! 그립다.
내 혼자 마음 날같이 아실 이
꿈에나 아득히 보이는가.
그 사람의 존재에 대한 회의(전)
그러나 화자의 내면세계를 완벽히 이해하고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그 사람이 현실에서 쉽게(꿈에나 아득히) 나타날 리가 없습니다. 바로 화자의 그러한 회의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향 맑은 옥돌에 불이 달아
사랑은 타기도 하오련만
불빛에 연긴 듯 희미론 마음은,
사랑도 모르리 내 혼자 마음은.
마음을 알아줄 그 사람이 없는 안타까움(결)
결국 완전한 이해와 공감을 요구하는 화자의 기대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넷째 연에는 그러한 안타까움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드러납니다. 사랑은 맑고 정결하지만(옥돌) 향기를 내며 붉게 달아오르므로 누구나 쉽게 눈치 챌 수 있지만, 화자의 섬세한 서정은 환한 불빛의 사이를 희미하게 날아오르는 연기와 같아서 사랑과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연인(최후의 이해 가능성)조차 이 마음을 알아보지 못할 거라는 말입니다. 곱고 섬세한 자신의 서정 세계에 대한 화자의 자부심마저 느껴집니다. 이 작품을 단순히 사랑을 갈구하는 화자의 회의와 좌절로만 읽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화자는 ‘내 마음을 알아줄 이’에 대한 가정적 호소에서 출발해(1연), 티끌·눈물·이슬로 압축된 시심을 내어 보여줄 사람을 찾고 싶은 의지를 밝힙니다(2연). 그러나 그러한 사람은 ‘꿈에나 아득히’ 보일 수 있을까(3연), 정결히 달아오르는 사랑의 불빛과 달리 연기처럼 희미한 시심을 포착할 사람은 찾기가 불가능할 듯합니다. 화자는 최후의 이해 가능성(사랑)마저 닿지 못하는 지점에서, 겉으로 드러나기 어려운 서정적 자의식을 좌절감과 함께 표현하고 있습니다(4연).
사랑의 열정이 아니라, 연기처럼 희미한 시인의 내면까지 알아보고 공감해 줄 사람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