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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영 '그리움' 해설과 감상

- 그 빛나는 때를 기억하고 있습니까?

by 느티나무

두고 온 것들이 빛나는 때가 있다
빛나는 때를 위해 소금을 뿌리며
우리는 이 저녁을 떠돌고 있는가
사방을 둘러보아도
등불 하나 켜든 이 보이지 않고
등불 뒤에 속삭이며 밤을 지키는
발자국소리 들리지 않는다
잊혀진 목소리가 살아나는 때가 있다
잊혀진 한 목소리 잊혀진 다른 목소리의 끝을 찾아
목 메이게 부르짖다 잦아드는 때가 있다
잦아드는 외마디소리를 찾아 칼날 세우고
우리는 이 새벽길 숨가쁘게 넘고 있는가
하늘 올려보아도
함께 어둠 지새던 별 하나 눈뜨지 않는다

그래도 두고 온 것들은 빛나는가
빛을 뿜으면서 한 번은 되살아나는가
우리가 뿌린 소금들 반짝반짝 별빛이 되어
오던 길 환히 비춰주고 있으니



내란 사태 이후의 여론 추이를 보면서 놀랄 때가 많습니다. 내란에 대한 국민적 반감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여전히 여기저기서 그 세력에 대한 옹호 발언이 터져 나오거나, 지지하는 사람이 꽤 있다는 것을 확인하곤 합니다. 지역과 기득권세력에 대해서는 새삼 말하고 싶지도 없지만, 일부 10·20대나 60·70대의 태도는 꽤 당황스럽습니다. ‘그것이 정의인가’를 고민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의외로 많은 듯합니다. 또 유신시대와 서울의 봄을 함께 겪었던, 그 시절의 대학생들, 시청 앞의 넥타이 부대였을 60·70대 중에도 이미 사라진 이들이 많습니다.


시에 등장하는 ‘밤을 지키는 등불’, ‘함께 어둠 지새던 별’은 단순히 어둠 속에서 느끼는 화자의 고독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 아닌 듯합니다. ‘등불’의 이미지는 오늘날의 ‘촛불’처럼, 진실이며, 저항의 의지이고, 시대의 양심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의 화자는 앞에서 내가 느낀 것처럼 ‘정의로운 젊은이, 저항의 동지’를 잃어버린 그 시대의 역사적 상실감에서 출발합니다.



두고 온 것들이 빛나는 때가 있다
빛나는 때를 위해 소금을 뿌리며
우리는 이 저녁을 떠돌고 있는가
사방을 둘러보아도
등불 하나 켜든 이 보이지 않고
등불 뒤에 속삭이며 밤을 지키는
발자국소리 들리지 않는다


과거(두고 온 것들)가 몹시도 선명하고 소중하게 떠오를 때(빛나는 때)가 있습니다. 그 기억은 빛을 밝혀 함께 공동체를 지키던 시간의 기억일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앞장 서던 사람들(등불 하나 켜든 이), 서로를 버티게 해 주던 동지들(속삭이며 밤을 지키는)의 모습(발자국소리)은 보이지 않습니다.

화자(우리)는 어둠의 시간(저녁) 속에서 그 정의의 시대가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며, 아프지만 잊지 않고 썩지 않게 붙들어서 다시 빛날 때를 준비하는 고통의 시간(소금을 뿌리며)을 견디고, 사라진 빛을 찾고(떠돌고) 있습니다. 화자는 이를 '떠돌고 있는가'라는 물음 형식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화자 자신만을 향한 질문이 아니라 독자 모두를 향해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묻는 양심의 성찰처럼 느껴집니다.



잊혀진 목소리가 살아나는 때가 있다
잊혀진 한 목소리 잊혀진 다른 목소리의 끝을 찾아
목 메이게 부르짖다 잦아드는 때가 있다
잦아드는 외마디소리를 찾아 칼날 세우고
우리는 이 새벽길 숨가쁘게 넘고 있는가
하늘 올려보아도
함께 어둠 지새던 별 하나 눈뜨지 않는다


여기서 ‘목소리’는 단순한 말소리가 아닙니다. 억눌렸던 역사적 진실이나 저항의 외침을 상징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기억의 목소리가 되살아나면서, 다른 잊혀진 기억을 또 불러냅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잊힌 외침이 다른 사람의 잊힌 외침을 불러내면, 서로 연결된 역사의 기억들이 연쇄적으로 되살아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격렬했던(목 메이게 부르짖다) 저항의 목소리, 진실의 외침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잊힘과 침묵 속으로 묻혀 버리려 합니다(잦아드는 때가 있다). 화자는 그 잔향(외마디소리)을 놓치지 않으려는 결의(칼날 세우고)를 품고, 저녁에서 새벽으로 이어지는 고난의 길(이 새벽길)을 숨가쁘게, 힘겹게 건너가려 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기대(하늘 올려보아도)마저 저버리고, 함께 버텨 주던(어둠 지새던) 동지(별)는 보이지 않습니다. 희망의 별마저 뜨지 않는, 가장 깊은 어둠의 시간입니다.



그래도 두고 온 것들은 빛나는가
빛을 뿜으면서 한 번은 되살아나는가
우리가 뿌린 소금들 반짝반짝 별빛이 되어
오던 길 환히 비춰주고 있으니


그래도 과거의 싸움은 여전히 가치가 있는 것들입니다(빛나는가). 언젠가는 다시 살아나 공동체의 정의를 위해 빛을 발할 것입니다(빛을 뿜으면서 한 번은 되살아나는가). 돌아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오면서 뿌린 인내·고통(소금)이 별빛이 되어, 우리가 걸어온 길을 비추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우리가 가면서 또 뿌릴 인내와 고통의 소금도, 언젠가 앞길을 비추는 힘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이 시에서 말하는 그리움은 단순히 옛 추억을 떠올리며 슬퍼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화자는 예전에 우리가 함께 지키고자 했던 것들, 곧 정의·연대·양심 같은 가치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서로 등을 기대고, 어둠 속에서도 등불을 들고 길을 지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도 잘 들리지 않습니다. 화자는 외롭고, 길을 잃은 듯 느끼지만, 그 기억을 놓지 않으려 애씁니다. 이것이 이 시가 말하는 ‘그리움’의 핵심입니다.

시 속에서 소금은 우리가 겪은 눈물과 인내, 아픈 시간입니다. 그 시간들은 당장의 보상이 없는, 무가치한 고생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의 화자는, 그 소금들이 별빛으로 바뀌어 우리가 걸어온 길을 환하게 비추었고, 지금의 우리 앞길을 밝히는 힘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시의 화자는 단지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억을 통해 지금을 지키려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화자는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그 빛나는 때를 기억하고 있는가.
우리는 아직도 소금을 뿌리며 이 저녁과 새벽길을 걸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는 오늘의 어둠 속에서, 다시 한 번 ‘등불’과 ‘별’이 될 수 있는가.


이 물음 앞에 서는 순간, 이 시에서 말하는 ‘그리움’은 과거에 머무는 감정이 아니라, 지금 우리의 자리를 돌아보게 만드는 양심의 질문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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