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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한계령을 위한 연가' 해설과 감상

- '눈 부신 고립', 헬리콥터를 거부한다

by 느티나무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 폭설이 내린 강원도에서 고립된 산짐승들에게 헬리콥터로 먹이를 뿌려준다는 자비로운 뉴스가 들립니다. 순간 시인에게는 5·18의 젊은이들에게 기관총을 쏘아대던 헬리콥터가 떠오르고, 그 임의적 정의, 선택적 자비에 환멸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추측한 이 작품의 창작 동기입니다.



'못 잊을 사람'은 누구일까

'못 잊을 사람' 하면 보통 옛 연인이나 특별한 누군가를 떠올리게 됩니다. 대부분의 해설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시에서 그 사람은 이상하게 단 한 번 언급된 이후에는 어떤 말도, 행동도, 표정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내가 이 시의 ‘못 잊을 사람’을 사람이 아니라 화자가 끝내 포기하고 싶지 않은 어떤 상태, '폭력'과 ‘선택적 자비’ 바깥에 있는 평화롭고 온전한 삶의 상태를 임시로 빌린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입니다.

그런가 하면 헬리콥터는, 과거에는 젊은 심장을 향해 포탄을 뿌리던 존재였고, 지금은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골고루' 뿌리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누군가는 죽이고, 누군가는 돌보는 ‘선택적 자비’, ‘임의적 정의’를 행사하는 힘의 상징인 것입니다.

이 대비가 작품 이해의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1연 - 한계령, 폭설, 그리고 문명에서 비켜서기

1연은 한계령, 폭설, 뉴스, 자동차의 풍경들입니다. 뉴스는 폭설을 두고 '수십 년 만의 풍요'라고 포장하는데, 자동차들은 각자의 안전한 자리(제 구멍들)를 찾아 우왕좌왕합니다. 물질적 가치를 추구하고, 생존에만 연연하는 우리들의 세속적 삶을 비꼬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때 화자는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이라고 말합니다. 겉으로는 폭설에 발이 묶인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속마음은 분명합니다. '기꺼이 묶이고 싶다.' 한계령은 지명이면서 동시에 ‘한계’라는 말과 겹치며, 문명이 돌아가는 세계와 그 바깥의 세계를 나눠 주는 경계가 됩니다.

여기서 ‘못 잊을 사람’은, 실제 한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동시에 내가 여기 묶여서 지키고 싶은 어떤 삶의 상태가 됩니다.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2연 -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이는 자리

‘고립’은 보통 부정적인 단어이지만, 여기에 '눈부신'이라는 말이 붙으면서, 이 고립은 피하고 싶은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달콤한 상태로 바뀌게 됩니다. '발이 묶였다'는 잠깐의 사고로 야기된 어쩔 수 없는 불편의 표현이겠지만, '운명이 묶였다'에는 내 인생을 기꺼이 맡기고 싶다는 소망이 담깁니다. 화자는 눈 덮인 한계령의 고립을 사고가 아니라, 내가 추구하는 ‘못 잊을 상태’에 도달하는 자리로 받아들이고 있는 셈입니다.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3연 - 구조의 거부

'풍요'라고 부르던 눈은 날이 어두워지며 '조금씩 공포로 변'합니다. 미디어가 붙인 이름(풍요)과 실제 체험(공포)이 어긋나는 순간입니다. 문명이 규정하는 ‘좋음’과 화자가 느끼는 삶의 진실 사이의 간극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헬리콥터가 등장합니다. 눈 속에 갇힌 야생동물에게 '골고루' 먹이를 뿌리는 헬리콥터는, 겉으로 보기에 아주 자비롭고 정의로운 존재입니다. 이 장면만 따로 떼어 놓고 보면, 헬리콥터는 자연과 생명을 돕는 '좋은 기계'입니다. 그런데 화자는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라고 합니다. 구조를 요청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일부러 거부하는 것입니다. 다음 연에서 이유가 드러납니다.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4연 - 선택적 자비 혹은 임의적 정의

헬리콥터의 과거가 드러납니다. '젊은 심장'을 향해 포탄을 뿌려대었습니다. 저항하는 사람, 살아 있는 사람을 제거하던 폭력의 도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헬리콥터가 이번에는 동물들에게 일용할 양식을 자비롭게 '골고루' 뿌립니다. 주체는 그대로인데, 뿌리는 것만 포탄에서 먹이로 바뀌었습니다.

이 헬리콥터는 단순히 '문명의 폭력'만을 상징하지 않습니다. 어떤 생명은 죽이고, 어떤 생명은 돌보되, 그 기준을 스스로 정하는 ‘선택적 자비, 임의적 정의’를 보여주는 힘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화자는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라고 말합니다.

자비로운 얼굴로 다가오지만 이 체계 안에서는 ‘보호받는 존재’가 되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단지 억압된 질서가 싫어서가 아니라, 폭력과 자비를 한 몸에 지닌 위선적인 지배 체계는 믿지 않겠다는 선언인 것입니다.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둘 바를 모르리.

5연 - 한계령에 묶인 짧은 축복

헬리콥터가 주는 안전과 자비는 위에서 내려오는, 선별된 임의의 보호입니다. 반면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있는 이 상태는, 화자가 스스로 선택하여 들어간 자리입니다.

‘못 잊을 사람’은 여기에서 위선적인 선택적 자비 바깥에서 누리고 싶은, 더 온전한 평화와 안전의 상태로 드러나게 됩니다.

이 축복은 짧습니다. 폭설이 그치면 다시 그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화자도 알기 때문입니다. 그 세계가 지속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시간은 더욱 강렬합니다. 위선적인 자비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상태’에 머무는 첫 경험이기 때문에 '난생 처음'의 축복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단순한 사랑 노래를 넘어, 인간이 지키고 싶어 하는 가치와 위선적인 세계가 맞서는 장면을 보여주는 시로 읽을 수 있습니다. '눈부신 고립'이라는 역설 속에서, 화자가 추구하는 '못 잊을 사람' (타협 없는 자유와 정의)과 헬리콥터가 상징하는 '선택적 자비' 또는 '임의적 정의'의 위선적 질서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습니다.

화자는 잔혹한 폭력과 위선적인 구원(먹이)이라는 이중성을 가진 헬리콥터의 손길을 단호히 거부하고, 난생 처음 맛보는 '짧은 축복'을 선택합니다. 생존을 보장해 주는 듯하지만 오염된 현실 대신, 자신이 믿는 평화와 정의의 상태를 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작품은 단순한 연가를 넘어, 세상이 제공하는 안락함과 임의적 정의에 편입될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 선택한 가치 곁에 머물 것인지를 묻는 시로 읽힙니다. 그런 점에서 이 시는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이 시를 기존의 일반적인 해석들은 대개 '낭만적 사랑의 성취'나 '문명 비판'에 초점을 맞추는 듯합니다. '못 잊을 사람'을 사랑하는 연인으로 보고, 폭설로 인한 고립을 둘만의 사랑이 완성되는 낭만적 장치로 보는 것입니다. 또한 헬리콥터는 단지 고요한 자연(한계령)을 방해하고 세속으로 복귀시키는 '기계 문명'의 상징 정도로만 다루어집니다.

나는 좀 달리 읽었습니다.

우선, '못 잊을 사람'의 의미를 더 넗게 보았습니다. 단순한 연인이 아니라, 화자가 위선적인 현실을 떠나 끝까지 지키고자 하는 '훼손되지 않은 가치' 혹은 '평화롭고 온전한 삶의 상태'로 본 것입니다.

다음은 '헬리콥터'에 대한 역사적·정치적 해석입니다. 헬리콥터를 단순한 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과거에는 폭력을 행사했으나 현재는 시혜를 베푸는 척하는 '이중적인, 위선적인 권력'으로 보았습니다. 화자의 구조 거부는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임의적 정의'에 타협하지 않겠다는 '윤리적 선언'인 것입니다.

그리고, '고립'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입니다. 한계령을 사랑을 위한 도피가 아니라, 부조리한 시스템(선택적 자비)에 편입되기를 거부하는 '주체적인 저항'의 공간으로 본 것입니다.

나는 이 작품을 한 편의 사랑 노래가 아니라, 폭력과 위선이 공존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이 어떻게 자신의 존엄을 지킬 것인가를 묻는 치열한 '사회적 고민'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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