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규 '삽' 해설과 감상

- 언어로 인생을 삽질하다

by 한현수

삽이란 발음이, 소리가 요즘은 들어 겁나게 좋다 삽, 땅을 여는 연장인데 왜 이토록 입술 얌전하게 다물어 소리를 거두어들이는 것일까 속내가 있다 삽, 거칠지가 않구나 좋구나 아주 잘 드는 소리, 그러면서도 한군데로 모아지는 소리, 한 자정(子正)에 네 속으로 그렇게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이 삽 한 자루로 너를 파고자 했다 내 무덤 하나 짓고자 했다 했으나 왜 아직도 여기인가 삽, 젖은 먼지 내 나는 내 곳간, 구석에 기대 서 있는 작달막한 삽 한 자루, 닦기는 내가 늘 빛나게 닦아서 녹슬지 않았다 오달지게 한번 써볼 작정이다 삽, 오늘도 나를 염(殮)하며 마른 볏짚으로 한나절 너를 문질렀다



삽, 도구에서 언어와 인생 탐구로

이 작품은 나이 든 화자가 곳간 구석의 삽 한 자루를 떠올리며 말을 거는 산문시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화자는 삽의 모양이나 무게보다 먼저 '삽이란 발음이, 소리가 요즘은 들어 겁나게 좋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곧 '속내가 있다 삽'이라고 말합니다. 이 지점부터는 삽이 단순한 농기구가 아니라, 소리와 의미, 속내를 가진 언어, 곧 시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뒤이어 나오는 '잘 드는 소리, 한군데로 모아지는 소리, 한 자정에 네 속으로 지나가는 소리'는 겉으로는 소리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삽질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잘 드는 삽날, 흙이 한쪽으로 모이는 모습, 자정의 고요 속에서 삽이 땅속(혹은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느낌이 겹쳐 있습니다. 이 시는 그렇게 삽이라는 언어(시)를 손에 쥔 화자가 인간과 인생의 속내를 파고 들어가는 과정으로 읽을 수 있을 듯합니다.



삽이란 발음이, 소리가 요즘은 들어 겁나게 좋다 삽, 땅을 여는 연장인데 왜 이토록 입술 얌전하게 다물어 소리를 거두어들이는 것일까 속내가 있다 삽, 거칠지가 않구나 좋구나 아주 잘 드는 소리, 그러면서도 한군데로 모아지는 소리, 한 자정(子正)에 네 속으로 그렇게 지나가는 소리가 난다


겉소리에서 속소리로, 그리고 삽질

처음 부분의 ‘삽이란 발음이, 소리가 - 소리를 거두어들이는 것일까’까지는 입에서 나는 겉소리의 느낌을 말한 것으로 보입니다. '소리를 거두어들인다'는 말에는 소리가 밖으로 흩어지지 않고 안으로 모이고 쌓인다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뒤에 나오는 '내 곳간'을 미리 비추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속내가 있다 삽' 이후부터 소리는 달라집니다. '잘 드는 소리, 한군데로 모아지는 소리, 자정에 네 속으로 지나가는 소리'는 여전히 ‘소리’라는 이름을 쓰지만, 내용은 이미 삽질에 가깝습니다. 삽날이 흙을 시원하게 떠 내는 느낌, 흙이 한 곳에 쌓이는 모습, 그 움직임이 자정의 고요 속에서 ‘네 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장면이 함께 떠오릅니다. 이 대목에서 삽은 더 이상 그냥 쇳덩이가 아니라, 예리하고 집중된 언어, 그리고 보이지 않는 파기(파는 일) 행위를 상징합니다.



이 삽 한 자루로 너를 파고자 했다 내 무덤 하나 짓고자 했다 했으나 왜 아직도 여기인가 삽,


'너' - 시, 또 다른 나, 인생

여기서 삽은 분명 파는 도구이고, ‘너’는 그 도구가 파고들 대상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너'는 어느 하나로 한정 지을 수고, 삽으로 파야 할 대상을 두루 가리키는 듯합니다.

'너'와 관련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 세계, 인생 같은 외부의 대상일 것입니다.

하지만 화자는 시의 끝에서 '오늘도 나를 염하며'라고 말하며 자기 자신을 대상처럼 바라보는데, 이 흐름을 생각하면 ‘너’를 화자 자신의 또 다른 자아, 내면 깊이 숨은 ‘진짜 나’로 읽을 수 있습니다. 이때 '너를 파고자 했다'는 말은, 삽이라는 언어와 시를 통해 내면 깊이 묻혀 있는 나를 파헤치고 싶었다는 고백이 됩니다.

또 삽을 언어·시로 본다면, 이 ‘너’는 화자가 쓰고 싶은 시 자체이기도 합니다. 평생 닦아 온 언어(삽)로 한 편의 시(너)를 깊이 파고 들어가, 그 속에서 인간과 인생의 본질을 캐내고 싶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보면 ‘너’는 시이면서 동시에 그 시 속에 비치는 또 다른 나, 그리고 인생 전체가 겹쳐 있는 다층적인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반대로 '내 무덤 하나 짓고자 했다'의 ‘나’는 지금까지 살아온 겉의 나, 육체를 가진 나에 가깝습니다. '파고들고 싶은 나(너)'와 '정리하고 묻어야 할 나(무덤의 나)'가 서로 마주 서 있는 장면으로 볼 수 있는데, '왜 아직도 여기인가'에는 제대로 파지도, 제대로 마무리하지도 못하고 보낸 세월에 대한 한탄이 배어 있습니다.



젖은 먼지 내 나는 내 곳간, 구석에 기대 서 있는 작달막한 삽 한 자루, 닦기는 내가 늘 빛나게 닦아서 녹슬지 않았다 오달지게 한번 써볼 작정이다 삽, 오늘도 나를 염(殮)하며 마른 볏짚으로 한나절 너를 문질렀다


곳간의 삽과 '나를 염하며' - 준비된 언어와 죽음 의식

곳간은 현실에서는 농사 창고이지만, 여기서는 상징적으로 말과 경험, 인생의 무게가 쌓인 내면처럼 보입니다. 구석의 작달막한 삽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몸에 익은 도구이고, 녹슬지 않게 닦아 둔 삽은 언젠가 제대로 쓰기 위해 평생 갈고닦아 온 언어의 도구로 생각됩니다.

'오달지게 - 문질렀다'에서는 평생 닦아 온 삽을 ‘한 번 제대로, 깊게’ 쓰겠다는 다짐이 드러납니다. 겉으로 보면 화자는 그저 삽을 볏짚으로 문지르며 닦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 행동을 '나를 염하며'라고 부름으로써, 자기 삶을 정리하고 죽음을 조용히 의식하는 노년의 태도를 드러냅니다. '내 무덤 하나 짓고자 했다'는 앞부분과 이어서 보면, 이것은 갑작스러운 임종 장면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조금씩 자기 자신과 언어를 정리해 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삽이라는 언어, 인생의 속내를 파는 시

이 작품은 일상의 사물인 삽을 통해 언어·자아·인생·죽음을 동시에 다루고 있습니다. 소리에서 출발해 삽질의 감각으로 내려가는 방식, ‘너’를 시이자 또 다른 나, 인생 전체로 겹쳐 읽게 만드는 방식은 이 시의 문학적 묘미입니다.

나는 ‘소리’ 속에 이미 삽질의 움직임이 숨어 있다는 점과, ‘너’를 시·내면의 나·인생으로 겹쳐 읽을 수 있다는 점, ‘나를 염하며’를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점을 중심으로 작품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렇게 보면 이 작품은 단순한 죽음의 시가 아니라, 언어라는 삽으로 인간과 인생의 속내를 한 번만이라도 깊이 파 보고 싶어 하는 노(老) 시인의 조용한 자기 고백으로 다가옵니다.

그것이 이 작품을 오래 붙들고 읽게 만드는 힘일 것입니다.


**** 지금은 '2008년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조선일보)'을 해설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 기존에 내가 고른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 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다 모아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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