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읽기에서 넘겨짚기, '함축의 확장'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구요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화자가 헤어진 그대에게 말을 하고 있는 형식입니다. 그런데 이별과 관련된 소회보다는 주로 우체국과 편지에 대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이 작품을 '그대와의 이별 시'로 읽지는 않는 듯합니다.
보통 이 시는 '우체통을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아쉬움' 곧 '기다림의 상실'을 노래한 시로 봅니다. 그러면 여기서 '그대'는 그저 시를 이끌어 가기 위한 보조자일뿐입니다.
아름다운 산책은 우체국에 있습니다
나에게서 그대에게로 편지는
사나흘을 혼자서 걸어가곤 했지요
그건 발효의 시간이었댔습니다
가는 편지와 받아볼 편지는
우리들 사이에 푸른 강을 흐르게 했구요
화자는 그대에게 편지를 부치기 위해 우체국까지 한참을 걷곤 했습니다. 설레는 시간(아름다운 산책)이었습니다. 그 편지가 도착하는 데에는 사나흘이 걸렸는데, 화자는 이를 '걸어가곤'으로 의인화하여 앞의 '산책'의 이미지를 이으면서 느림의 가치를 암시하고 있습니다.
화자는 그 며칠을 '발효의 시간'이라고 부릅니다. 발효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김치가 익고 술이 익듯이, 편지가 이동하는 동안 보내는 사람과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도 천천히 익어 갑니다. 그래서 제목이 '푸른 곰팡이일 것입니다.
이렇게 편지는 오고가는(가는 편지와 받아볼 편지) 동안 두 사람의 사이에 아름다운 사랑의 길, 관계의 길(푸른 강)을 만들었습니다.
그대가 가고 난 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소중한 것 가운데
하나가 우체국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체통을 굳이 빨간색으로 칠한 까닭도
그때 알았습니다, 사람들에게
경고를 하기 위한 것이겠지요
보통의 이별 시였다면 '잃어버린'의 목적어로 이별과 관련된 감정이 왔을 법한데, 화자는 우체국 곧 편지를 강조합니다. 그 사람에게 편지를 부치러 가던 발걸음, 창구 앞에서 우표를 사던 일, 사나흘 동안 답장을 기다리던 시간, 곧 그 편지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그대와 헤어지고 나서 편지를 주고받는 일, 아마도 설렘의 행복이었을 그 일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화자는 '우체통'이 '빨간색'을 통해 사람들에게 '경고'를 한다고 말합니다. 무엇을 '경고'하는 것일까요? 추측하건대, '편지가 없어지면 기다림, 숙성, 생각의 여유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경고일 듯합니다. 즉, '속도와 효율이 지배하게 된 세상에 대한 비판'일 것입니다.
[비평 노트] 함축의 확장
그런데 이 해설을 구상하면서 좀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빨간색 우체통'의 경고를, '속도와 효율이 지배하게 된 세상에 대한 경고'로 생각한 것은 내 추측이라는 것입니다. '현재는 e-mail, SNS가 편지를 대신하게 되었다.'는 내 지식을 바탕으로 '넘겨짚기'를 한 것입니다. 작품 어디에도 '그대가 가고 난 뒤 사람들이 편지를 e-mail, SNS로 대신하게 되었다.'는 정보는 없습니다. 게다가 어디에도 우체국, 우체통, 편지 시스템이 없어졌다는 말도 없습니다. 그저 우체국을 이용할 일, 곧 편지 쓸 대상이 없어져서 이용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인간관계에서 남의 언행에 어떤 숨겨진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 의도를 '넘겨짚기'하는 것은, 오해와 편견을 낳는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시 해석이라고 다를 리가 없습니다.
작품 내에 주어진 정보로만 보면, 이 시는,
그대와 헤어졌다 - 편지 쓸 일이 없어졌다 - 느림, 기다림, 숙성, 생각의 여유를 가질 일이 없어졌다 - 그래서 우체통이 경고를 한다 - (느린 삶을 살려면 편지 쓸 일을 없애지 마라) - (그러러면 편지를 나눌 연인과 헤어지지 마라) - (그런데 그대와 헤어져 아쉽다)
이런 식의 흐름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편지를 나눌 그대와 헤어져서 아쉽다.'로 주제를 정리하기에는 '푸른 곰팡이'라는 제목과, 1연의 편지 시스템에 대한 장엄한 예찬이 너무 무색합니다. '넘겨짚기'를 할까요? 말까요?
* 윗글을 복사해 주고 AI에 물었더니 그 다운 답변을 냅니다. AI는 극단적인 말을 하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그의 인간성(?)만큼은 배울 만합니다.
'이 시는 내적으로는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통해, 그와 편지를 주고받던 느린 세계를 잃어버린 아쉬움을 노래한 시이다. 동시에,
발효와 곰팡이, 푸른 강, 경고와 같은 함축적인 상징들을 고려할 때, 그 주제를 넓혀 개인의 상실을 통해 현대 사회의 속도 지상주의가 잃어버린 ‘느림·기다림·숙성의 가치’를 환기하는 시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넘겨짚기’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라기보다, 작품 안에서 보장되는 해석과, 오늘의 현실을 겹쳐 보는 확장된 해석을 서로 구분해서 정직하게 밝히는 것, 그것이 이 시를 읽는 한 가지 성실한 태도일 것이다.'
**** 지금은 '2008년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조선일보)'을 해설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 기존에 내가 고른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 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다 모아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