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가슴 속에 말 못 하는 소 한 마리가 있다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식 뽑혀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시집『소』(문학과지성사, 2005)
타자가 된 나의 내면
이 작품은 언뜻 보면 소를 바라보는 조용한 관찰시처럼 읽힙니다. 그러나 이 시의 진짜 무게는 다른 곳에 있습니다. 화자가 바라보는 소는 마당의 짐승이 아니라, 이성의 언어로는 끝내 건드리지 못하는 자기 내면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이 시는 '나'가 '나'를 바라보면서 겪는 불통과 무력감을 기록한, 아주 조용하고 아주 깊은 자아 분열의 드라마입니다.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눈 속에 갇힌 말
시는 소의 눈에서 시작합니다. 그 눈은 커다랗고, 무언가를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화자에게는 그것을 알아들을 귀가 없습니다. 이 말은 청각의 문제가 아닙니다. 소의 눈에 가득 들어 있는 것은 아직 언어가 되지 못한 내면의 진심이고, 화자의 이성은 그 비언어적 신호를 끝내 해독해 내지 못한다는 고백입니다.
말이 입이 아니라 눈에 들어 있다는 것은, 진심이 밖을 향해 있으면서도 밖으로 흘러나가지 못하고 안쪽에 고여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나'와 '내 안의 나'는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면서도, 처음부터 소통의 문이 닫혀 있는 것입니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식 뽑혀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언어가 되지 못하고 고여 버린 진심
하고 싶은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간신히 매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 막힘은 외부의 억압 때문이 아닙니다. 인간이 가진 언어라는 그릇이 내면의 거대한 슬픔을 담기에 너무 작고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뽑혀 나올 듯 울어봐도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화자는 자기 분신이 겪는 이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습니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순하고 동그란 감옥
화자는 소의 눈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라고 부릅니다. 이 역설이 시의 가장 빛나는 대목입니다. 감옥이라면 마땅히 딱딱하고 날카로운 것이어야 하는데, 이 감옥은 순하고 동그랍니다. 그것은 외부에서 씌운 쇠창살이 아니라, 몸의 일부처럼 벗어날 수 없는 내적 폐쇄성을 가리킵니다.
속뜻이 언어로 바뀌지 못해 눈 속에 고여 버리는 이 구조는 수천만 년의 시간 동안 계속되어 왔습니다. 겉으로는 온순하고 평온해 보이는 그 눈 안에서, 말하지 못하는 것들은 출구 없이 쌓이고 있습니다.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되새김질 - 끝나지 않는 내면의 사투
어찌해볼 도리가 없으니, 소가 할 수 있는 일은 안으로 삼키는 것뿐입니다.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뱃속에서 다시 꺼내어 짓이기고, 삼켰다가 또 꺼냅니다. 이 되새김질은 단순한 소화 행위가 아닙니다. 뱉어내지 못한 말, 완성되지 못한 생각, 해결되지 않은 고민들을 끊임없이 꺼내고 갈아 부수고 도로 삼키는 내면의 사투입니다. 삶을 이어가는 방식이면서 동시에 자신을 조용히 갉아먹는 형벌이기도 합니다. 이 반복에는 끝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있는 소
이 작품은 사회적 약자의 침묵을 다룬 시가 아닙니다. 이성적 자아가 자신의 감정적 자아를 이해하지도, 표현하지도 못하면서 겪는 소통의 단절과 고독을 다룬 시입니다. 화자가 '귀가 없다'고 할 때, 그것은 나 자신을 온전히 알아듣지 못하는 예술가의 절망이자 인간의 근원적 비애입니다.
이 시의 문학적 힘은 '소'라는 구체적이고 낮은 존재를 통해 그 보편적인 비애를 눈앞에 세워 놓는 데서 나옵니다. 독자는 시를 다 읽고 나서 소의 눈을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슴속에서 조용히 눈을 끔벅이고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비평 노트] 기존 해설들을 보면 좋은 시일 이유가 없어 여러 번 다시 읽었습니다. 그리고,
1. 사회적 은유로 판단하지 않았습니다.
기존 해설들은 ‘순한 소’를 사회적 약자, 침묵하는 민중, 억압된 언론의 상징으로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는 작품 내부에서 그런 사회적 해석의 단서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2. 그래서 ‘소’를 타자가 아니라 ‘나의 분신’으로 보았습니다.
기존 해설들이 소를 ‘대상(동물/타자)’으로 두고 인간이 바라보는 연민의 시선에 무게를 둔다면, 나는 소를 감당하기 어려운 내면이 밖에 서 있는 형상, 곧 ‘몸 밖으로 떨어져 나온 또 다른 나’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인간-동물의 관계가 아니라 나-나(이성적 나-감각적 나) 사이의 관계로 재구성됩니다.
3. 문제 상황을 ‘침묵’이 아니라 ‘언어화(표현)의 실패’로 보았습니다.
기존 해설들이 ‘말을 못 하는 존재의 침묵’ 또는 ‘말이 봉쇄된 상황’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나는 말(속뜻)은 충만하지만 그것이 언어(표현)로 성립하지 못하는 상태, 즉 언어의 무력과 한계를 작품의 문제 상황으로 파악했습니다.
4. '귀가 없다'를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내면을 해독하지 못하는 문제로 해석했습니다.
기존 해설에서는 화자의 '귀가 없다'를 타자의 말에 대한 이해 부족, 혹은 소통 부재로 간단히 처리하는 것 같습니다. 나는 이것을 이성적 자아가 감정적 자아의 신호를 언어로 해석해 내지 못하는 한계로 읽었습니다. ‘자기 내부의 불통’이 문제인 것입니다.
**** 지금은 '2008년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조선일보)'을 해설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 기존에 내가 고른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 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다 모아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