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물을 글썽이며 쓴 해설, 이토록 참혹한 그리움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과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 『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31』(조선일보 연재, 2008)
죽은 사람이 남긴 고통
죽음은 죽은 사람에게는 모든 것의 '끝'이지만, 남겨진 사람에게는 지독한 슬픔과 고통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는데, 산 사람은 그 기억에 갇혀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는 경우입니다.
이 작품은 바로 이 죽은 사람(부재하는 당신) 때문에 겪는 산 자의 처절한 슬픔과 고통을 다룹니다. 너무나 그립고 그래서 너무나 슬프고 괴로운 이 상황에서, 화자는 울음 대신 '킥킥'이라는 기이한 웃음을 뱉어냅니다. 그것은 미친 사람의 웃음이 아니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그리움과 슬픔의 무게에 짓눌려 터져 나오는 비명이자 오열입니다.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이 작품에서 화자에게 '당신'이라는 말은 '그립다'는 말의 동의어입니다. 보고 싶다는 흔한 말로는 이 사무치는 마음을 다 담을 수 없어, 화자는 그저 그 이름, '당신'을 부릅니다. 하지만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순간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몰려듭니다. 그래서 '당신'이라고 부르자마자 감정이 북받쳐 올라, 말을 잇지 못하고 '킥킥'거리는 파열의 비정상적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가장 그리운 이름을 부르며 가장 비참하게 우는, 그리움의 병적 수준입니다.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과거에는 고요하게 울 수 있었던 시간(적요로움의 울음)도 있었습니다. 아마도 죽음 이전의 과정에서 겪었던 고통과 슬픔을 말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삶은 가혹하게도 하나의 슬픔이 끝나면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음 슬픔을 문 안으로 들여보냈습니다. 슬픔의 연속적인 쇄도 속에서 화자는 이제 고요한 울음조차 사치스러운, 고통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경에 이르렀음을 보여줍니다.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보통은 희망에 기대어 살지만, 화자는 '상처'에 기대어 서 있습니다. 연속적인 상처 속에서도 이만큼 살아온 것은 당신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당신은 없지만, 그래서 더 큰 상처를 안게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를 살게 하는 것은 당신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상처에 기대어 오열하며(킥킥대며) 당신을 부르는 모습은, 엄청난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당신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또 살 수 있는 역설적이며 비극적 현실을 나타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 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화자는 자연물의 변화를 통해 두 사람의 사랑이 겪은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줍니다. '단풍의 손바닥'처럼 붉고 뜨겁게 서로를 움켜쥐며 시작된 사랑은, '은행잎'처럼 찢어지고 다시 합쳐지는 모진 애증의 시간을 건넜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치열했던 시간 끝에 남은 것은 '개망초'같은 병든 시름이었고, 결국 당신은 '밟힌 풀'처럼 쓰러져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화자는 이 네 마디의 짧은 묘사 속에 사랑의 탄생과 죽음을 모두 담아내고 있습니다. 회상하는 화자에게 또 애절한 그리움이 솟구칩니다(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그리고 미칠 듯한 비명과 오열 속에 있는(킥킥거리며) 화자에게, 세월과 사랑,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와서 몸을 비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정반대일 것입니다. 화자가 세월 속에 희미해져 가는 사랑을 붙잡기 위해 상처에 매달려 있는 것입니다. 상처가 아물면 당신을 잊게 될까 봐, 화자는 스스로 아픈 기억의 모서리에 상처의 몸을 비비며 딱지를 떼어내고 피를 흘립니다. 그것이 아플지언정 당신을 느끼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대라는 자연의 달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과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떠나간 당신은 이제 내 곁에 없지만, 밤하늘의 '달과 별'이 되어 돌아옵니다. 화자는 달이 나에게 몸을 비빈다고 말하지만, 이 역시 사무치는 그리움에 빠져 버린 화자가 밤하늘의 허공(당신)을 향해 닿을 수 없는 몸을 필사적으로 비비고 있는 모습입니다. '부비다'는 짐승들이 체온을 나눌 때 하는 가장 원초적인 행위입니다. 화자는 차가운 죽음의 세계에 있는 당신에게 내 온기를 전하고 싶어서, 자연의 달과 별을 보며 살이 헐도록 오열하며(킥킥거리며) 몸을 비비고 있는 것입니다. 연이은 '당신'에서 사무치는 그리움이 깊고 깊게 느껴집니다.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다시 밤하늘을 봅니다. 물기를 머금고 흔들리는 달과 별은 마치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당신(사내)의 얼굴'로 보입니다. 그 처연한 아름다움 때문에 화자는 당신을 내보내지 못하고, 내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당신의 무덤'을 만들어 묻어두었습니다.
화자는 그 무덤을 지키는 병든 묘지기입니다. 맨 정신으로는 그 참혹한 무덤을 마주할 수 없어, 밥(진설 음식) 대신 독한 술을 차고 비틀거립니다. 이별 후에도 낫지 않는 그리움이라는 병을 앓고 있기에, 그는 영원히 '병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화자는 술기운을 빌려 망각의 풀을 베며(벌초), 당신이 내 안에서 희미해지지 않도록 고통스럽게 묘를 관리해 나갑니다.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죽음으로 모든 것은 끝납니다(치병). 하지만 그로 인해 앓아야 하는 그리움(환후)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화자는 다시 오열하면서 그리움에 몸부림칩니다.(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그리운 것이 나라면 나를 버리면 됩니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이기에 내가 마음대로 버릴 수도, 그 사랑을 없던 일로 무를 수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참혹'입니다.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고통의 근원. 화자는 그 끔찍한 '참혹'의 그리움에 다시 한번 절규합니다.(그러나 킥킥 당신)
참혹을 응시하는 문학의 힘
이 작품은 한국 서정시가 도달한 슬픔의 가장 깊은 곳 중의 하나입니다.
슬픔을 아름답게 포장하거나 승화하려 하지 않고, 상처의 '생살'을 그대로 드러내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킥킥'이라는 소리는 죽은 자를 향한 그리움과 슬픔의 과부하 상태를 청각적으로 보여주고, '상처에 기댄다'는 표현은 그리움이 고통이면서 삶의 이유가 되는 자의 처절한 실존을 증명합니다.
무엇보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때문에 마음속에 무덤을 쓰고, 스스로 병자가 되어 그 무덤을 지키는 화자의 모습. 그것은 치유되지 않은 자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투명하고도 참혹한 사랑의 증명일 것입니다.
제목 '혼자 가는 먼 집'은 결국 화자가 도달해야 할 저 세상일 것입니다. 이승의 집은 당신이 없기에 더 이상 집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화자는 '미망인(未亡人)'으로서, 당신이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는 그 '먼 집(저승)'을 향해, 남은 생을 바쳐 홀로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비평 노트] 기존 해설과 이런 점이 다릅니다
보통 이 시의 화자를 '이별의 슬픔에 빠져 자아 분열을 겪는 수동적 여성 화자'로 보는 듯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 작품의 화자를 '기억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고통을 선택한 미망인'으로 보았습니다.
* '킥킥'의 의미: 기존 해설들은 실성한 사람의 웃음, 혹은 스스로를 비웃는 자조적인 태도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내게는 '킥킥'이 웃음이 아니라, '당신'을 호명할 때마다 북받치는 그리움이 억눌렸다가 터져 나오는 '막힌 울음(오열과 비명)'으로 들립니다. 미친 것이 아니라, 감정의 과부하 상태에서 언어가 붕괴되는 현상인 것입니다.
* '부비다'의 의미: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자연의 달이 나에게 기대와'를 기존 해설들은 화자가 고통을 당하는 방향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를 '내가 죽은 당신(허공/상처)에게 미친 듯이 몸을 비비는 행위'로 해석했습니다. 죽은 자의 온기를 느끼기 위해, 혹은 내 체온을 전하기 위해 짐승처럼 비벼대는 이 모습은, 화자의 처절한 집착과 그리움이 시각적으로 극대화된 표현입니다.
* 자연물의 의미: 기존 해설들이 '단풍, 은행, 개망초를 가을의 쓸쓸한 풍경이나 하강 이미지'로 해석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를 '단풍(만남/열정) → 은행(갈등과 결합) → 개망초(투병/시름) → 흙(죽음)'으로 이어지는 두 사람의 구체적인 역사로 보았습니다. 단순한 시각적 이미지가 아니라 서사의 압축인 것입니다.
* '마음의 무덤'과 '병자'의 의미: 단순히 '마음이 황폐해졌다'는 비유가 아닙니다. 나는 화자가 내면의 묘지기를 자처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상처가 아물어 당신을 잊는 것이 두려워, 스스로 '병자'로 남기를 선택하고 매일 망각의 풀을 깎으며(벌초) 고통을 갱신한다는 관점입니다. 이렇게 보면 화자는 단순한 피해자가 아닌 지독한 사랑의 수호자가 됩니다.
* '사내의 아름다움'의 의미: 기존 해설들은 과거 떠날 때의 모습을 회상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나는 '밤하늘의 달과 별'에 눈물이 맺힌 당신의 얼굴을 투영하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지금 내 머리 위에서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는 당신(자연물) 때문에, 나는 결코 당신을 떠날 수가 없다는 표현으로 본 것입니다.
* 이 시에서 문장이 종결어미(-다, -요 등)로 맺어지지 못하고 계속 흘러내리거나, 말줄임표(……)로 얼버무리며 다음으로 넘어가는 일이 많은 이유를 포착했습니다. 이것은 고도의 장치입니다. 불완전한 문장 구조는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과부하’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이고, '당신……' 하며 흐려지는 그 말줄임표 속에는 백 마디 말보다 더 깊은 침묵의 오열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 시는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까지도 '참혹한 슬픔' 그 자체입니다.
이 작품은 단순히 '슬픈 시'가 아닙니다. '죽음이 갈라놓은 관계 속에서, 남겨진 자가 기억을 사수하기 위해 벌이는 끔찍하고도 아름다운 투쟁기'인 것입니다.
**** 지금은 '2008년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조선일보)'을 해설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 기존에 내가 고른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다 모아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