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꾸준히 하면 정말 될까?

내가 영어 독학을 위해 별 짓거리는 다 해봤는데 말이야 -

by 샌디


누구나 영어를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4년 전에 처음 들어간 스타트업에서 나는 그 흔히 말하는 '판교어'를 처음 경험했다.

작가 출신이던 나는 그동안 들어왔던 담백한 말들과 다른 뉘앙스의 새로운 언어(?)를 듣고 당황했지만 그것도 아주 잠시, 나는 적당히 영어를 섞으며 꽤나 있어 보이고 유창해 보이게 말하는 법에 빠르게 물들어 갔다. 흔히들 쓰는 영단어 몇 개를 적절히 돌려 쓰며 스스로 영어를 잘한다고 착각하기도 하며, 그렇게 언어에서 도태되는 줄도 모른 채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2024년, 바로 전 직장으로 이직을 했다.

좀 더 큰 규모의 스타트업이었고, 역시나 입사 첫날부터 여기저기서 '판교어'가 들렸다.

그런데 웬 걸, 여기는 그전보다 조금 더 유창한 회화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닌가? 이를테면, 해외에도 지사가 있어 개발자들끼리 간간히 영어로 미팅이나 슬랙콜을 하질 않나, 심지어 내부에서 만드는 글로벌 서비스를 위해 저 너머엔 영어 원어민 팀원을 앉히는 게 아닌가. (물론 이 팀원은 한국어가 아주 유창하다.)

아침에 출근하면 파티션 너머 들리는 미팅 속 다른 사람들의 영어에 한동안은 익숙해지지 못했다. 자세히 들어보면 그리 유창한 것 같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자신 있게 대화를 해나간다는 게 부럽기도, 나는 저 정도도 입 밖으로 뱉어내지 못한다는 생각에 주눅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외면할 수는 없을 터. 당시 옆자리였던 개발자분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때의 대화가 나의 생각을 조금은 바꿔놓았다.


"혹시 ㅇㅇ님도 따로 영어 공부 하세요?"

"공부는 아니고... 영어 어플 쓰기는 합니다. '케이크'라고..."

"오, 그럼 그것도 공부라고 해야 하는 거 아녜요?"

"공부라기엔... 그냥 가볍게 하는 거죠... 안 하는 것보단 나으니까요."


'안 하는 것보단 낫다.'

그래, 가만히 있는 것보단 조금씩이라도 움직여야지. 그날 저녁 나는 나의 지독한 영어 울렁증을 극복해 보고자 퇴근 길에 AI 영어 어플을 결제했다.


그렇게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져온 나의 꾸준하고 작은 영어 기록들.

약 1년 반동안 느끼고 경험한 점들을 기록해 보며, 실제로 어떻게 내 삶에 변화를 일으켰는지 적어보고자 한다.




1. 스픽 (Speak)

말하기 연습에 가장 특화된 서비스라고 생각해 가장 처음으로 결제한 어플.

나의 영어 수준에 맞춰 커리큘럼을 선택해 수업 / 스피킹 연습 / AI와 예제 연습을 단계별로 익힐 수 있고,

나만의 상황 설정을 통해 AI와 롤플레잉을 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커리큘럼이 체계적으로 잘 짜여 있어 실제 원어민이 쓰는 숙어를 빠르게 익힐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 소개할 어플 중 유일하게 실제 사람이 등장해서 수업하기 때문에, 한국인에게 친숙한 인강 형태와 가까워 '진짜 공부'를 한다고 느껴진다.

나는 AI 롤플레잉 중에서도 Topics 섹션을 가장 유용히 썼는데, 각 상황별로 미션이 3개씩 있어 이 미션을 클리어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3가지 미션을 전부 클리어한 롤플레잉은 왕관 아이콘이 표시된다는 점도 나의 승부욕을 자극했다.


다만, 스피킹 특화 어플이니만큼 핸즈프리 모드가 좀 더 잘 지원됐다고 느껴졌다.

나는 스픽을 보통 설거지하면서, 화장하면서, 운전하면서 등등 다른 수고스러운 일을 하며 대화를 하고 싶을 때에 사용하곤 한다. 하지만 매 말끝마다 일일이 전송 버튼을 눌러줘야 하는 게 오히려 어플 활용도를 저해시켰다.

스픽 누적 기록




2. 듀오링고 (Duolingo)

회사 동료의 강력 추천으로 시작하게 된 어플.

광고를 보면 무료로도 사용 가능하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다.


멤버십 결제 레벨에 맞춰 광고 제거, AI 캐릭터와 영상 통화 기능을 제공한다.

하나의 예문 수업을 가장 많은 형태로 학습할 수 있어 간단한 놀이처럼 즐기기에 가장 좋다. (단어 배열하기, 문장 해석하기, 빈칸 채우기, 말하기, 듣기, 쓰기 등등...... 아, 캐릭터가 들려주는 라디오도 있다)

영어 외에도 일본어, 스페인어 등 다른 국가 언어도 지원하기 때문에 다양한 언어 찍먹용으로 적절하다.


차별점은 Friends Streak 제도가 있어 학습을 통해 친구와의 불꽃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학습하지 않을 시 친구와의 불꽃이 꺼져버린다는 말인데, 이게 장기 출석에 꽤나 도움이 된다. (실제로 나는 90일 가까이 되는 불꽃을 한 번 꺼뜨려서 함께 하던 지인에게 호되게 혼난 적이 있다ㅎ)


아쉬운 점이라면, 개인적으로 너무 라이트한 느낌이라 깊고 딥한 영어 공부를 필요로 하는 이에겐 적절치 않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다. 나 또한 공부한다는 느낌보단 데일리 보상을 위한 게임처럼 들어가는 경향이 있다.

듀오링고 누적 기록




3. 말해보카 (sayvoca)

역시나 지인 추천으로 시작하게 된 어플.

말해보카란 이름에 걸맞게 영단어 외우기에 가장 유용하다.


기능은 크게 세 가지로, 빈칸의 단어를 맞추는 어휘 / 영단어를 배치하는 문법 / 듣고 따라 말하는 리스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잘 쓰는 기능은 '어휘'로, 학습할수록 나의 어휘력을 100 분위 기준으로 실시간 측정해 준다. 상위 x.xx%로 표기되기 때문에 이 숫자를 올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음으로 잘 쓰는 기능은 '문법'이다. 듀오링고에서도 마찬가지의 기능을 제공하지만, 말해보카에서는 '문법 사전'을 제공해 준다는 점이 차별점이다. 이 문법에 대한 해석과 다른 예문을 함께 제공해 주기 때문에 정답이 이해가 잘 되지 않을 시 한 번씩 참고하면 꽤 큰 도움이 된다.


또 다른 추천 기능은 '나만의 단어장'. 이 기능은 내가 직접 사전에서 검색하여 찾은 단어를 하나의 카테고리로 엮어 '어휘'와 같은 방식으로 학습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이다. (실제로 나는 최근에 본 영어 시험 직전에 이 기능을 어려운 단어들을 외우는 데에 활용하기도 했다.)

다만, 조금 아쉬운 것은 아직까지 제공되지 않는 단어가 꽤 있다는 점. 필요한 단어를 힘들게 직접 찾아서 추가하여도 말해보카에서 제공하는 학습 예문이 없는 단어가 더러 있었다. 이런 경우는 학습에서 제외되어 스스로 따로 외워줘야만 했다.

말해보카 누적 기록




그래서 결과는?


결론적으로, 나는 영어에 대한 울렁증을 '아주 조금'은 극복한 것 같다.

왜냐면, 얼마 전 내 인생 처음 영어 원어민과의 전화 영어 수업을 스스로 신청하여 해냈고, 선생님께 "너 영어 잘한다"라는 칭찬까지 들었기 때문!

게다가 퇴사하자마자 신청한 영어 스피킹 시험도 꽤나 괜찮은 성적으로 마쳤으니, 이 정도면 노력이 가상하다고는 봐줄 수 있을 것 같다. (더 나아가 가끔씩 문득 떠오른 문장을 머릿속으로 영작해 보거나, 궁금한 점이 생기면 GPT를 통해 자주 물어보게 된 것도 큰 변화 중 하나일 것이다.)


사실, 아직 갈 길은 멀다.

영어가 조금 재밌어졌다고 하지만, 업무를 위한 비즈니스 영어를 유창하게 하기에 나는 아직까지 너무 더듬대고 느리게 말하며, 문장이 길어지면 쉬운 문법일지라도 군데군데 틀리고는 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영어를 잘한다는 건 그런 작은 요소에 영향받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조금 틀려도, 조금 서툴러도, 어떻게든 말하려고 최대한 무언갈 내뱉다 보면 어느 날처럼 "잘한다"를 이야길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니.

어쩌면, 흔히 말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언어를 배우는 데에 가장 중요한 점은 '자신감'일지도 모른다.


오늘 잠들기 전에도 AI와 영어로 조금 더 대화해보려 한다.

울렁증을 '아주 조금'만 극복한 나에게, 아직까지 '틀린다'는 건 조금 무서우니까.


근데 그래서,

영어, 꾸준히 하면 정말 되냐고?

그래, 된다. 정말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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