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장에서 생긴 일

밝고 씩씩하게만 지내다오

by 샌디


오랜만에 옷과 머리를 단정히 하고, 화장은 곱게 한 채 집을 나섰다.

부업으로 한답시고 언제 넣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강사 채용 서류가 합격되어 면접을 오라는 소식 때문이었다.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해 직원분께서 안내해 주신 미팅룸에 도착했는데, 그곳엔 나보다 먼저 와계신 꽤나 연륜 있어 보이는 여성분이 앉아 계셨다.

당연히 면접관이시겠거니 싶어 인사드리며 테이블 맞은편에 앉으려던 찰나,


"ㅎㅎ 나 같은 사람 말고 이렇게 젊은 분이 돼야 하는데."


그 여성분은 혼잣말인 듯 아닌 듯 나를 보며 웃는 표정으로 중얼거리셨다.


"엥?" 하는 생각과 함께 나의 머리엔 제동이 걸려 앉지도 일어서지도 않은 애매한 상태가 돼버리자, 여성분은 "대학교 졸업한 지는 얼마나 됐어요?"라며 이번엔 나의 나이를 물으셨다.


"아, 스물아홉이에요. 대학 졸업한 지는 좀 됐어요.“

"좋은 나이네요. 내 조카랑 동갑이구나."


그 외에도 여성분은 쉬지 않고 연이어 나에게 갖가지 질문을 던지셨다. '뭐지'하는 생각이 든 것도 잠시, 대화의 기본은 ping-pong이 아니던가. 여성분이 계속해서 나의 전공, 사는 곳, 경력 등등을 연이어 물으셨기 때문에, 나도 비슷한 유형의 질문을 되받아치며 눈앞에 앉아계신 이 여성분에 대해 단시간에 빠르게 알아갈 수 있었다. (이제부터 이 여성분을 A라고 칭하겠다.)


A는 대학 시절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전공하고, 현재 AI를 활용하여 솔루션을 제공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사회생활을 몇 년 하다가 서른이 넘어 뒤늦게 대학원에 들어가 학위를 새로 땄으며, 초등학교 방과 후 교사부터 대학교 출강까지- 대충 들어도 꽤나 화려한 강의 경력을 자랑하는 분이었다. 1990년대에 대학을 다니신 걸로 보아 어림잡아도 나와 최소 20살은 차이 날 게 분명했지만, 딥러닝이나 AI에 대해 꽤 깊은 지식을 갖고 계신 걸로 보아 자기 계발을 끝없이 하시는 것에도 틀림없어 보였다.


"아, 혹시 제가 바로 옆에 가서 앉아도 될까요?"


같은 면접자라는 사실도 잊은 채 어느새 몰입하여 A의 일대기를 들으며 감탄하던 나는 멋대로 자리를 옮기며 말했다.

어차피 면접관은 우리 둘을 마주 보고 앉아야 할 테니 내가 자리를 그녀의 옆으로 옮기는 게 아마 맞았을 것이지만, A는 바로 옆자리로 온 나의 손을 잡으며 "너무 밝고 씩씩하네. 나라면 너무 뽑고 싶을 것 같아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면접이 시작되었다.

면접관은 우리 둘의 이력서를 나란히 놓고 번갈아가며 우리의 이력을 확인하였다.


"어떻게, A 선생님. 일 가능한 거 맞으세요? 지금 다른 회사 대표로 계신 것 같은데?"


... 엥? 이건 또 무슨 말이지?

수많은 곳에 출강을 나갔던 그녀의 화려한 이력은 알겠다, 그런데 한 회사의 대표라고?


이 황당한 상황이 채 이해되기도 전에 면접관은 우리 둘의 간단한 이력 확인과 짧은 질의응답을 마치고 회사 내에서 진행 중인 일들을 소개하였다. 그런데 참 재미있게도 고개를 끄덕이며 면접관의 이야기를 수동적으로 듣고 있던 나와는 다르게, A는 지금에서 보완하면 더욱 좋을 것 같은 점이나 우려되는 점을 몇 가지 꼽아서 이야기하는 등 마치 사업 컨설턴트 같은 허를 찌르는 질문으로 순식간에 면접 분위기를 역전시켰다.

심지어 면접관은 그것을 정말 필요했던 조언인 것 마냥 진지한 뉘앙스로 듣기도 하였는데, 이 오묘한 상황에 나는 웃음을 지으며 A를 마치 나의 어미새를 보는 것처럼 줄곧 빤히 바라보았다.




면접이 끝나고, A와 나는 건물을 함께 나와 길거리를 걸으며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A는 나를 처음 본 순간부터 줄곧 자신의 조카 이야기를 하였는데, 좀 더 자세히 들어보니 그녀의 조카는 나와 비슷한 전공에 (디자인 계통), 비슷한 시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경력이 비슷하였고, 얼굴 생김새와 성격이 꽤나 닮아있는 듯했다.


한마디로, '예쁘고 씩씩하고 똑 부러지는 아이'라고 자신의 조카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던 그녀는, 내가 퇴사를 하게 된 이유, 앞으로 하고 싶은 일 등의 좀 더 심오한 질문을 이어가기 시작하며 내 이야기를 따뜻한 눈빛으로 경청했다.


"평소와 같이 똑같이 출근을 한 어느 날이었는데,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돈을 벌기 위해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까 앞으로 내 10년, 20년도 너무 불행할 것 같았어요. '지금 내 길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하루라도 빨리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 한다.' 하면서 퇴사를 결심한 당일 오후에 바로 회사에 얘기했어요.

어떻게 일을 24년이나 하셨어요? 그 일이 재밌으셔서 가능했겠죠?"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그녀는,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조언을 조카의 이야기를 빌어 조심스레 시작했다.


"내 조카는 7년을 한 회사에서 근무를 했어. 대기업도 아니었고, 생긴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아무것도 없는 작은 스타트업이었는데 20대의 아이 중 보기 드문 성실함이었지. 그 기간 동안 회사를 엄청 성장시켜 놔서 대우도 잘 받았어. 근데, 어느 날 퇴사를 하더니 자기 회사를 차리고 싶다는 거야. 작은 회사에서 7년이라는 시간 동안 모든 업무를 1부터 100까지 해봤던 경험이 자기 사업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줬나 봐. 그리고 마음 맞는 사람 몇 명 모여서 밤이고 낮이고 일하더니 다행히 벌써 꽤 괜찮은 성과를 보이고 있는데, 온전히 내 일이라는 생각 덕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겠대.


AI가 상용화된 게 이제 고작 3년 정도 일거야. 그 사이에 많은 게 변했다고 느껴지지? 난 90년도에 인터넷이 처음 도입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무수히 빠른 발전을 봐왔고, 업계에 있으면서 그 발전을 따라잡기 위해 고군분투했었어. 근데, 그러다 보니 한계가 딱 거기까지더라고. 더 좋은 회사, 더 큰 기업을 들어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 같아서 어느 날 퇴사를 하고 대학원에 들어갔어. 그리고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며, 지금은 대기업이 된 회사의 각종 서비스들을 나도 만들 수 있었는데 왜 못했을까, 를 곰곰이 생각해 봤어. 결국 나는 '두려움'때문에 안정적인 회사원을 택하며 살았던 거야. 이제 회사를 창업한 지는 8년 정도 됐는데, 결국 내 회사를 위한 거라고 생각하니 새로운 AI를 공부하는 것도 어렵지만 재밌게 느껴져서 줄곧 해올 수 있었어.


요즘 시대가 참 좋잖아? AI로 창업을 하기에도, 유학을 가기에도,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에도 너무 좋은 시대잖아. 결정을 하는 건 너의 몫이야. 나는 할 수 있는 일을 하다 보니 지금까지 왔을 뿐이야, 어떻게 보면 기반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지만 내 인생의 방식을 크게 바꾼 건 결국 '용기'하나였고 그게 이제는 나에게 재미가 된거지.“


그녀는 긴 조언을 마치고 난 후 분위기가 침체됐다고 느껴졌는지 자신이 아는 분의 재밌는 창업스토리를 들려주기도 (지인분이 호주에 산양 목장을 차리셔서 초대박이 나셨다고 한다), 혼자 쉬면서 하기 좋은 취미 생활이나 운동 루틴을 알려주기도 하였다. 그러다 문득문득 대화하고 있는 나를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너도 참 성실했구나.“ 라며 나의 양손을 쓰다듬곤 하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업무 전화처럼 보이는 연락을 몇 차례 받더니, 우리는 미리 약속했던 서로의 갈림길에서 작별인사를 고했다.

나는 연락처나 명함을 부탁드려 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삼켜버리곤, 대신 이 짧은 만남에서 의미 있는 조언과 위로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기로 했다.


"오늘 너무 감사해요. 요즘 가장 고민하던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들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모든 만남엔 뜻이 있다던데, 저희도 그런 걸까요?"

"난 인연이었다고 생각해. 우리가 다음 인터뷰에서 만나게 된다면, 그땐 또 다른 인연이 되겠지? “


그녀는 나의 어깨를 다정히 어루만지며 손인사와 함께 자리를 떠났고, 나는 그녀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 발걸음을 돌렸다.


아마 다시 그녀를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의 면접도 원인 모를 불안감에서 비롯된 지원의 결과물이었기 때문에 나는 다음 인터뷰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말마따나 이 일이 나 스스로 자긍심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면 또다시 과거의 일을 되풀이할 것이란 생각이 들어 쉽게 내릴 수 있었던 결론이었다.

그녀와 또 다른 인연은 될 수 없겠지만, 대신 그녀의 따뜻했던 말과 눈빛을 꽤 오랫동안 품기로 했다. ‘사람 보는 눈은 다 비슷하다’기에, 구김 없고 성실하다는 게 내게 큰 장점이 될 거라며 나를 다정히 바라봐주던 그녀의 눈빛. 그 눈빛을 기억하며 나만의 템포로 서서히, 그리고 조금씩 내 길을 찾아나가야지.



뭐든 지금처럼만 밝고 씩씩하게 해내면 돼.
그럼 뭘해도 분명 잘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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