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많을 땐 3km만

천천히 숨을 고르며 달리다 보면

by 샌디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말을 나는 참 좋아한다.


온갖 잡념과 걱정으로 범벅이 돼있다가도 애써 힘겹게 몸을 일으켜 운동으로 땀을 내고 샤워를 하고 나면, 그 우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개운한 에너지만 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20대 후반의 퇴사자는 생각이 많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해야만 하는 일의 중간 지점을 찾으려면 끊임없이 스스로와의 대화를 시도해야 하니까. 그리고 때론 가슴 한편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고민과 걱정을 잠재워주는 능숙함또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따금씩 멍하니 침대에 누워 책이나 영화로도 다스려지지 않는 고민을 안게 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더 이상 생각하는 것을 포기하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곤 밖으로 향한다.

이건 다름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밤공기를 숨차게 마시며, 나의 수용성 잡념을 땀과 물로 씻어내기 위해서이다.




20대 초반의 초보 작가 시절엔 새벽에 자전거 타는 것을 좋아했다.

새벽 작업을 선호하다 보니 밤낮이 완전히 뒤 바뀌어 오후 4시쯤 눈을 뜨고 아침 7시까지 작업을 했던 시절, 유일하게 나의 숨구멍을 틔워줄 시간은 푸르스름한 새벽녘 혼자 찬바람을 맞으며 타는 자전거뿐이었다.

물론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취객을 마주치거나 (갑자기 어떤 남자가 내 뒤를 따라와서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았던 적도 있었다) 가로등이 온전히 켜지지 않은 곳을 두려움에 떨며 다니기도 했지만, 작업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을 때는 하루에 2시간, 거리상으론 꼬박 30km의 자전거를 탈만큼 나에겐 자전거가 나의 스트레스를 다스릴 수 있는 건강한 방식 중 하나였다.




안타깝게도 직장을 다니며 자전거를 처분하였던 나는, 두 달 전 퇴사 이후 다시금 그때의 기분을 느끼기 위한 수단으로 러닝을 택했다.


물론 첫날엔 순탄치 않았다.

러닝이라는 게 단순한 뜀박질 같아 보이지만 그렇지 않아서, 아무런 생각 없이 무작정 러닝을 시작했던 나는 아주 형편없는 나의 달리기 실력을 마주해야만 했다. (분명 얼마 달리지 않았는데도 심장은 터질 것 같고, 허벅지가 앞 뒤로 당겨왔다. 힘껏 달려보았지만, 나는 머지않아 뜀박질을 멈추고 제자리에 서서 헉헉거리며 숨을 골라냈다.)


집으로 돌아와 스트레칭을 하며 생각했다.

뭐가 문제지? 이렇게까지 내 체력이 별로였나? 아니면 내 뛰는 방식이 잘못됐나?

거두절미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자, "몇 백편의 콘텐츠를 보는 것보다 직접 몸으로 체험하며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방식으로 직접 달려보는 것." 그것이 명쾌한 정답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러닝 둘째 날, 속도에 집착하지 않기로 한다.

빨리 달리는 것보단 천천하더라도 꾸준히 뛰며 뛸 수 있는 만큼만 뛰어보기로 했다. 페이스는 누가 봐도 느리다 할 만큼 천천히, 숨이 차오를 때면 더 천천히도 괜찮다. 힘들 땐 주위를 둘러봐도 좋지만 멈춰 서지만 않기로 한다.

그렇게 약 25분에 걸려 멈추지 않고 3km를 완주했다.


러닝 셋째 날, 거리에 집착하지 않기로 한다.

'더 많이'를 목표로 달리는 것보단 스스로 정한 시간동안 할 수 있는 만큼 뛰기로 했다. 어제의 내가 여유롭게 3km를 뛰었던 시간은 대략 25분, 오늘은 그 시간만큼 멈추지 않고 뛰어보기로 한다.

그렇게 숨이 찰 때도 있었지만 25분 동안 3km를 조금 넘게 뛰게 되었다.


러닝 넷째 날, 인터벌로 뛰어본다.

러닝 다섯째 날, 자세를 신경 쓰며 달려본다.

러닝 여섯째 날, 어플의 러닝가이드를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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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날씨가 궂은 날에나 일정이 있는 날에는 쉬기도 하며, 7주 동안 나는 약 34km를 달렸다.

매일같이 몇십 킬로를 달리는 러너들에겐 작고 귀여운 거리일지 몰라도, 나에게 이 34km는 얼마나 꾸준히 달렸는지를 보여주는 성실함의 방증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는 180bpm의 심장이 터질 것은 러닝도 좋아하지만, 160bpm의 조금 빠른 심장박동의 슬로우러닝을 좋아한다는 것을,

7분 후반에서 8분 초반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리는 것으로 가장 오래 달릴 수 있다는 것을,

딱 3km가 다음 날 무리 없이 나에게 오늘의 에너지를 주는 거리라는 것을.


인생이라는 건 결국 세상에 흩뿌려진 많은 선택지 가운데에서 최대한 할 수 있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선택할 것을 선택하고 버릴 것을 버리며 나의 취향을 좁혀가는 과정이 아니던가.

그런 의미에서 러닝이라는 운동을 택하고 나에게 맞는 러닝법을 꾸준하고 깊게 탐구해 간다는 건, 결국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를 알아가며 구축하는 작은 예시 중 하나가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러닝이 재밌냐고 꾸준히 달려보지 않은 사람들은 묻는다.

그런 이들에게 나의 짧은 식견으로 대답해 보자면, 러닝은 끝없는 나와의 타협이자 대화이다. 더 갈 것인지, 멈출 것인지, 페이스를 올릴 것인지 낮출 것인지를 오롯이 혼자 계속 판단해야 하며, 쳐지거나 힘이 들 때는 할 수 있다며 스스로 다독여주기도 해야 한다.

그리고 순간에 집중해 열심히 달리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잡념은 사라지고 개운함과 뿌듯함이 남는다는 점과, 별다른 장비 없이 운동화와 운동복 하나면 내가 원하는 곳 어디서든지 할 수 있다는 점도 엄청난 장점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점은 자전거보다도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나의 첫 러닝화.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고심 끝에 산 나의 첫 러닝화는 어느새 나와 10km를 함께 했다, 그리고 이 친구와 300km를 달리는 게 나의 중장기적 목표. 퇴사자로서 시간이 가는 것은 최대한 늦추고 싶지만 그 이면적 바람에는 가을이 어서 와서 날씨가 시원해졌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다.


아, 그리고 올해 꼭 10km 마라톤을 뛰어봐야지. 달팽이에게 속도는 중요치 않으니, 목표는 완주인 것으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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