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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회생 누구를 위한 제도인가?

채무자의 슬픈 사연

by 유그리나 Feb 19. 2025

요즘 회사에서 개인회생에 관한 업무를 하고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개인회생을 신청하여 인가결정을 받은 채무자였다.

(인가결정이란 개인회생 신청 채무자가 작성한 변제계획안에 대해 허가한다는 의미로 채무자의 개인회생신청을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왜 인지는 모르지만 그동안 인가결정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미납회차가 여러 번이어서 걱정이 많은 목소리였다.

채무자

“혹시 질문이 있는데요. 제가 죽으면 이 사건은 어떻게 되나요?”

나는 기록에서 채무자의 나이를 보았다.

 90년대 생이었다.

“죽으면 개인회생이 폐지되지요.”라고 말했다.

채무자

“폐지가 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나는 "다시 채권이 살아나고 채무자가 사망한다면 상속이 개시되겠죠? 상속재산이 있다면 상속인에게 청구가 들어가겠죠."하고 말했더니

채무자

...

대답이 없었다.

나는 "왜요? 왜 죽어요? 죽지 마세요. 아직 젊으신데요. 그런 생각하지 마시고 힘들더라도 변제하려고 노력해 보세요. 이제 남은 회차가 많지는 않아요."

채무자

"너무 힘이 들어서요, 회사도 다음 달에 문을 닫을 것 같아 변제액을 납부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측은지심이 발동한 나는 다시 무슨 말이든 해주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더 이상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도 오지랖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회생 업무를 하지 않았을 때에는 수억 원의 채무를 지고도 원금의 일부만(물론 많게는 원금의 100%를 변제하는 경우도 있지만 희박하다.) 변제하고 나머지 채무를 면하게 해주는 이 제도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채권자의 입장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던 것 같다. 돈 벌기가 얼마나 힘든데 돈 빌려준 사람은 어쩌라고 쥐꼬리만큼 갚고 책임을 면하게 해 준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

누가 이런 법을 만든 것이지?

철저하게 가진 자(가진 자가 아니나) 입장에서의 해석이었다. 게다가 처음에는 입법이 미비하여 업무에 지장이 얼마나 많았던지,,,

아직도 입법의 미비가 존재한다.

최근 개인회생업무를 직접 하게 되면서 세상에는 내가 생각하지 못할 만큼 가난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으며 자기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해 형편이 어려워지거나 하는 경우를 기록을 통해 많이 보다 보니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회생이란 제도는 불운한 채무자나 힘든 사람들이 빚으로부터 빨리 벗어나 갱생할 수 있게 하는 좋은 제도라는 생각까지 이제는 든다.

이런 불운한 채무자를 국가가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서 이렇게 구제해 주어야 채무자도 살아갈 수 있고 채권자들도 조금이라도 변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국가의 제도적인 장치인 것이다.

역시 이론과 실무는 다른 것이다.

아마 실무를 해보지 않았다면 여전히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20년 넘게 법원에 근무하면서 때로는 너무 많은 업무량과 민원에 정말 언제까지 이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고민했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사회를 다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고 소송, 이혼, 가사, 경매, 집행등 여러 방면의 사건 진행을 통해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는 인생 경험을 하기도 한다. 게다가 평생 공부해야 하는 일이니,,,,

내가 강제로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바람직한 직업이 아닌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나에게 요즘 행복으로 다가온다.

이리 사람 생각이 달라지는 걸 보니 오래 살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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