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1년차 여자 항해사의 진로 갈등
여자 항해사부터 선박교통관제사까지
퍼시픽 석세스에서의 6개월도 후딱 지나 2008년 봄이 되자 신임 항해사들이 승선을 시작했다.
여전히 교대할 가망이 없는 기관사들은 어쩔 수 없고, 나에게는 다행히 인수인계할 신임 3항사가 올라왔다.
이번 3항사도 여자였다.
왜 자꾸 다른 좋은 배 다 놔두고 낡은 이 배에 여자를 태우는 건지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그랬다.
하필이면 서울 부서 사람 2명이 승선체험을 위해 배에 있었기에 신임이 쓸 방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 둘이 한방을 쓰게 됐다.
대학 때부터 2인실을 써왔던 데다가 신임 3항사가 바로 정읍 동문 후배이기까지 해서 부담은 없었다.
방이 침대 하나 있고 바닥에 이불 깔고 누우면 끝인 크기라 둘이 쓰긴 작았지만 그래도 2주간의 인수인계 시간이 기다려졌다.
드디어 여자랑 편하게 얘기할 수 있다.
거기다 친한 여자 동생이었으니 할 말은 더 많았다.
업무 이야기 외에 속 깊은 이야기까지 엄청 나눌 수 있었다.
배에 사람이 북적여서 그런지 분위기가 조금 들떠 있었다.
외부인인 서울 본부 사람들이 승선해 있는 것도 영향이 있었다.
왠지 우리 뱃사람과는 전혀 다른 세계 사람들이 배에 있는 것 같아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선원에 대한 인식을 좋게 가져가길 바랐다.
우리가 하는 일이 대단하다고 봐주길 바랐다.
아무리 우리가 상선 사관이랍시고 으스대도 결국은 현장 노동직인 걸 인식하고 있어서 그랬나 보다.
그들의 당당하고 세련된 모습이 좋아 보이고 대단하다 싶기도 하고 뭔가 설명하기 힘든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친한 후배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하면서 그들에게 현장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뿌듯하기도 했다.
어리바리한 신임 티는 벗은 것 같고 업무도 익숙해져서 내 스스로가 제법 멋진 항해사가 된 기분이었다.
2주 동안 정신없이 바쁘게 그리고 사람 사는 것 같은 시간이 지나고 하선을 하려니 뭔가 좀 아쉬웠다.
이렇게 승선하라면 더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는 안 되는 게 회사 생활이었지.
역시 승선 생활에서 가장 힘든 건 물리적으로 단절된 외로움이다.
이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게 해주는 건 역시 금전적 보상이었는데 이번 배를 타면서 조금 현타가 많이 왔다.
당시 중공업 쪽으로 취직한 여자 동기들이 몇 있었는데 2007년도 말 성과급을 연봉의 100%인가 암튼 엄청 많이 받아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새 빠지게 배 6개월 타도 그거보다 못 버니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거기다가 같이 현대에 입사한 여자 항해사 동기가 1년도 안돼 그만두었단 소식까지 들려 충격을 받았다.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비싼 위성전화를 걸어서 무슨 일인지 물어봤을 정도였다.
설마 안 좋은 일을 겪어서 그런 걸까 봐 걱정도 됐다.
다행히 나쁜 일은 아니었고 건강 문제라고 했다.
1억을 모으겠다는 확실한 목표가 있던 친구가 그런 선택을 하니 나는 어째야 하나 고민이 많이 됐다.
지금이라도 내려서 중공업 취직 준비를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돈 많이 벌려고 배를 탄 건데 솔직히 돈 더 많이 벌 수 있는 육상직에 갈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않나.
승선을 하고 싶어 하는 여자 후배들을 위해서 배를 쉽게 그만두면 안 된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이건 내 인생이라고 생각하면 갈등이 일었다.
배가 꼭 정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