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석탄 한 톨까지 모두 가져가는 일본 항구
여자 항해사부터 선박교통관제사까지
나는 배 타고 일본은 딱 한 번 밖에 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항구 이름도 기억이 안 난다.
그런데 한 가지 또렷하게 기억나는 게 있다.
엄청나게 깨끗하고 엄청나게 알뜰하다는 것.
미국과 장기계약을 맺어 핫코일을 정기적으로 일 년에 4번만 날라다 주고 나면 우리 배는 현대상선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 배를 타고 일본도 가게 되었다.
캐나다에서 실은 석탄을 한국이 아닌 일본으로 수출한 것.
뭐 최말단 일개 노동자가 윗 분들의 사정을 어떻게 알겠나.
시키면 시키는 대로 가야지.
벌크선에서는 다양한 화물들을 다양한 해역으로 실어 나를 때 항해사로서의 가치와 재미를 느꼈다.
바닷물의 비중을 체크하고 화물의 밀도를 확인하여 최적의 양을 계산하는 것들이 신기했다.
회사 측에서는 최대한 많은 양을 안전하게 가져오면 좋을 테니까.
옛날 옛날에는 이런 걸 잘 모르고 무조건 화물창에 꽉꽉 채워 실었다가 선박이 침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만재흘수선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각 배 선측에 동그란 모양의 그림을 그려 넣었다.
일정선 이상 화물을 싣지 못하도록 규정하고서야 화물 과다 적재로 사고가 나는 일이 사라졌다.
석탄은 자주 싣는 화물이었지만 석탄도 원산지와 종류에 따라 밀도가 달랐다.
물론 캐나다 석탄은 자주 실었기에 그건 괜찮았지만 이번엔 항구가 다르니 일본 바다의 비중을 확인하며 화물을 실었다.
큰 차이가 안 난다고 하지만 1항사님이 안전을 위해 신중하게 확인하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고 멋있었다.
석탄은 굉장히 좀 더러운? 화물이었다
화물을 싣고 내리는 과정에서 엄청나게 많은 석탄 가루들이 흩날렸다.
그러다 보니 작업복도 금방 더러워지고 마스크 없으면 안 되고 갑판도 까맣게 뒤덮이고.
그래서 출항을 하고 원양으로 나가면 갑판 청소를 하는 게 일이었다.
그런데 일본은 정말 놀라웠다.
석탄을 싣는 작업 자체도 다른 나라와 다르게 조심스럽게 석탄 한 톨도 떨어뜨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작업을 했다.
여느 항구에서보다 갑판에 석탄 가루들이 적게 떨어졌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들고 배에 올라오더니 갑판 위에 떨어진 얼마 없는 석탄가루까지 모두 알뜰하게 쓸어 담아 갔다.
출항하고 보니 너무 깨끗해서 이 배에 석탄을 실었던 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디플레이션이 그렇게 길어지면 모든 물질 하나하나가 소중해지는 걸까?
아니면 일본인 천성이 그렇게 꼼꼼해서 그런 걸까?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한국해운회사들이 설립되기 전에는 해대 선배님들 대다수가 일본배를 탔기에 정말 수전노 같이 아낀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어떤 게 더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선원으로서는 꼼꼼하고 확실한 일본 항구에 입출항하는 게 더 편하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