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이제 따뜻한 남쪽나라로 가자!
여자 항해사부터 선박교통관제사까지
그렇게 힘들게 도착한 한국에서 철근, 후판, 핫코일 등 각종 철강 제품들을 실었다.
핫코일도 되게 특이한 화물이었는데 다른 것들이 실리는 걸 보니 더 신기했다.
고박 장치를 하는데 사람이 직접 화물창에 들어가 작업을 했다.
움직이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시켜 놔야 배도 안전하고 화물도 망가지지 않을 테니 굉장히 중요하고 위험한 작업이었다.
1항사님이 신경을 많이 쓰셨다.
육상에서 올라온 베테랑분들이 다 작업하기는 하지만 화물 운반 책임은 1항사님이니 그럴 수밖에.
항해하다 보면 기온차가 심한데, 그로 인해 화물창에 생긴 땀이 철강제품을 부식시키기 때문에 이를 최소화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1항사님 나이가 겨우 28살인가 그랬는데 그런 무거운 책임이라니 ㄷㄷㄷ
철없던 나는 추운 겨울바다를 지나 이제는 따뜻한 곳으로 간다는 마음에 그저 좋았다.
새로운 항구로 가는 거라 완전히 처음부터 항해계획을 짜야하는 2항사님도 바쁘고 선장님도 바쁘고 기관부도 황천항해의 후유증으로 바빴다.
태국 방콕이라니!
태국 같은 나라는 후진국이라 부두시설 기계화가 덜 되어있어 화물작업이 느리다.
이는 바로 긴 접안시간을 의미한다!
항해하는 선박이 한 곳에 것도 부두에 접안한 시간이 길다? 이는 신이 내린 축복이다.
필요하면 상륙도 나갈 수 있고!
거기다 이번에 실은 화물은 선원들이 특별히 할 일이 없는 것이었다.
육상 작업자들이 올라와서 작업을 하고 우리는 그냥 안전 감독 정도만 하면 되었다.
선박 컨디션을 위한 발라스트 작업도 화물 작업이 느리니 급박할 건 없었다.
항해 준비로 다들 바쁜 와중에 묘한 즐거움과 기대감이 감돌았다.
미얀마 부원들은 특히 더 들뜬 게 보였다.
바로 옆나라라 앙숙인 태국이지만 고향 근처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태국으로 가는 남중국해는 항해하는데 좋은 곳이었다.
거친 바다에서 돌아온 우리에게 잔잔한 바다 위에서 하는 항해는 식은 죽 먹기나 마찬기지 아니겠는가.
그렇게 출항을 하고 가는데 손재주가 좋으신 조기장님이 나무 합판과 각목들을 가지고 이상한 걸 만들기 시작했다.
태국에서 올라올 사람들을 위한 화장실이라고 했다.
엥? 화장실? 선내에 많은데 굳이? 이상했다.
조기장님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다 필요할 데가 있다고 두고 보라고 했다.
다 만들어진 화장실은 좀 위험해 보였다.
나무로 만든 것도 불안한데 밑이 뻥 뚫려 있었다.
배출물이 그대로 배 밖 바다에 투하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었다.
헉. 저걸 이용한다고? 사람들이? 볼 일보다 부러지면 같이 그대로 바다에 빠지게 생겼는데?
정말 저게 어떻게 쓰일지 아리송해하면서 새로 입항할 방콕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