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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메리 Aug 22. 2023

33. 선박교통관제사로 일한다는 것

여자 항해사부터 선박교통관제사까지

정식 선박교통관제사로 근무하려면 9급 채용 시험 합격 후 10주간 관제사 교육을 수료해야 했다.
기존 항해사 입장에서 바라보던 선박 항해를 제3자인 관제사 입장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교육 훈련이었다.
항해사로서는 내가 탄 배나 우리 회사 사고 아니면 크게 신경 쓰질 않아 선박 사고가 별로 안나는 것 같았는데, 관제사 입장에 서 보니 완전히 달랐다.
한국 연안에서 일어난 사고는 전 관제센터에 공유되다 보니 사고가 많이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나 내가 주로 타던 상선 말고도 선종이 훨씬 다양했다.
선박 급유선이나 통선은 소형선이라 항해가 어느 정도 예상이 되었지만, 예인선이 부선을 줄로 길게 묶어 끌고 가는 예부선은 정말 감이 안 잡혔다.
그 외 크레인 바지선, 그라브 준설선 같은 여러 작업선들마다 조종성능이 판이하게 달랐다.
상선만 생각하고 관제할 수 없었다.
그나마 법적으로 이런 선박들을 우선피항선으로 분류하여 상선의 진로를 피하여야 한다고 정해져 있었기에 관제하는데 기준을 잡을 수 있었다.

정말 정말 배들의 종류가 많았다.
상선만 타봤던 나는 너무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그들의 근무환경도 상선보다 훨씬 어려웠기에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선장과 항해사 단 둘이 6시간씩 맞교대를 하며 항해하는 경우도 있으니 정말 살인적이다.
우리나라 연안은 섬 같은 지형지물도 많고 어선들도 많아 항해 난이도가 상당해 외국인으로 대체하기도 힘들어 더 인력 구하기가 어려운 듯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런 특수 선박들의 속력이 매우 낮아 다른 배들이 피해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항해사 및 선장님들이 안전 항해를 위해 애쓰시지만 휴먼에러는 여전히 상존했다.
그 휴먼에러를 제3자의 시선에서 객관적으로 잡아내어 사고를 예방하는 게 선박교통관제사의 주 업무라고 볼 수 있었다.
휴먼에러는 단순한 시각적, 인지적 오류로 주로 발생하고 그 외에는 조류 세기나 바람 특성, 수심 깊이 등 항만 별로 다른 정보들에 대한 부족으로 인한 것이었다.
이런 것들을 해당 관제구역을 모니터링하는 선박교통관제사들이 잡아주고 보충해 주어 안전항해를 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 외에 나를 가장 골치 아프게 하는 것은 항해 당사자의 고집이다.
넓은 바다에서 서로 양보하고 넉넉하게 피해 가면 될 텐데 변침을 안 하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분들이 계셨다.
상대방이 하는 말에 기분이 상해 생기기도 하고, 내 배가 더 크고 위험하니 상대가 피해야 한다는 이상한 우월의식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좌현 대 좌현이라는 대원칙을 무조건 고수해야 된다며 융통성이 없어 일어나기도 했다.
이럴 때는 두 선박 간의 교신만으로는 답이 없다.
서로 욕설이 오가기도 할 정도로 감정이 고조된다.
관제사가 나서서 중재를 해야만 상황 정리가 된다.

초창기 근무 시절엔 어린 여자 목소리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싫어서 그랬는지 선박들이 관제를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럴 땐 관제팀장님이나 선배님들이 대신 나서서 중재를 해주어야만 상황이 해결됐다.
이런 상황을 몇 번 겪다 보면 안 그런 관제사들도 좀 권위적이고 강압적으로 변하기도 했다.
그러면 또 불친절하다고 민원을 받아 사유서를 쓰고 징계를 먹을 수도 있어 어려웠다.
관제라는 게 결국 목소리만으로 교신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명확한 정보 전달이 어렵고 오해도 쌓이기 쉬워 더 그런 것 같다.

신규자 때 10주 교육을 수료하고 난 후에는,
5년마다 2주간 관제사 보수교육을 받아 관제사 자격증을 갱신한다.
이는 국제협회인 IALA에서 정해준 관제사 자격에 따라 실시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IALA VTS 분야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에 국제 표준을 잘 따르고 있다.
중동이나 동남아에서 우리나라 VTS를 모델 삼아 자국에 설치하려고 할 정도이다.
자국 연안의 안전과 보호는 여러 나라에 갈수록 대두되는 과제인 것 같다.

내가 입사했던 2011년부터 2023년 지금까지 해상교통관제센터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고 인식도 점점 좋아지고 있어, 이렇게 변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해양수산부 각 지방 항만청에서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하급 부서여서 9급으로 입사하면 진급해 봤자 6급이 한계였다.
그 6급도 못 달고 퇴직하는 선배님도 계셨다.

해상교통관제센터 자체가 민간기관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그 이상의 역할은 부여받지 못했다.
대외적으로 해상 교통량이 증가해 사고 발생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었지만 공무원 조직의 한계가 있으니 변화는 불가능할 줄 알았다.
그렇게 말단 공무원으로 편하게 일하다 퇴직하면 될 줄 알았는데, 지금은 정말 많이 달라졌다.
그만큼 능력 있고 욕심 많은 관제사 후배들도 많이 들어왔고 관제 업무를 바라보는 인식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선박들도 VTS에 대한 생각이 정말 달라졌다.
세상이 그대로인 줄 알았는데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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