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둘째 임신한 채로 9급 선박교통관제사 합격
여자 항해사부터 선박교통관제사까지
이런저런 부수입을 벌고 있고 돌도 안된 아들을 키우고 있었지만 취직이 안되자 마음이 불안했다.
이렇게 취직이 안 될 바에 출산과 육아를 빨리 끝내고 30살에 취직 전선에 다시 뛰어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육아란 게 끝이 없는 거였는데, 그땐 3년만 키우고 나면 괜찮을 줄 알았다.
그렇게 둘째를 임신했다.
첫째를 키우며 둘째를 임신한 상태에서 우선 취직이 급하니 9급을 먼저 하다가 나중을 도모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건 뭐... 쓰자니까 내가 정말 너무 현실을 몰랐단 생각만 드네...)
어쨌든 2011년까지도 해운경기가 다시 살아날 거란 믿음이 강해서인지 남자들이 9급은 잘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조차도 9급은 좀 그렇다고 생각해서 7급을 먼저 시험 봤던 거니......
승선경력이 없어도 대학교 졸업할 때 딴 3급 항해사 자격증만으로도 볼 수 있는 9급 시험들이 여럿 있었다.
그래도 이왕이면 승선경력을 살리고 싶어 '선박교통관제사'를 노리게 되었다.
순승선경력 1년을 요구했고 당시 경쟁률은 예상대로 낮아 2대 1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해양수산부가 없어지고 국토해양부로 편입되면서 채용 인원도 예년보다 2배로 늘어나 허수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관건은 시험 점수가 아니라 과락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시험 점수가 중요했다.
발령이 필기시험 점수 순대로 이루어지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전국 해안가에 있는 산재해 있는 해상교통관제센터(VTS : Vessel Traffic Service) 중 어디로 발령이 날지 미지수였기에 내가 지역을 선택할 수 있어야만 했다.
애가 둘이나 있는데 갑자기 아무 연고지도 없는 곳에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말 열심히 공부를 했다.
다행히 성적은 좋게 나왔다.
순위를 정확히 말해주지 않았지만 최우수 성적이라며 걱정 말라고 했다.
임신 7개월의 부른 배를 안고 불안한 마음으로 면접에 들어갔다.
공무원 면접이라서 그런지 단 한 번도 첫째 육아 문제나 둘째 출산 문제를 물어보지 않았다.
정말 신선했다.
이런 면접도 있구나... 이게 정상인가? 다른 데는 뭐였을까...
어쨌든 그렇게 직장을 잡을 수 있어 한숨 놓였는데 이제는 발령 지역이 문제였다.
부산에 대출을 잔뜩 끼고 산 집도 있고 어찌어찌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 당연히 부산에서 근무하고 싶었다.
그런데 전남편이 반대하기 시작했다.
자기가 배를 나가버리면 너 혼자서 애 둘을 어떻게 키우겠냐며 자기네 부모님이 키워주겠다고 하시니 감사하게 생각하고 시댁이 있는 여수로 가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여수에 아는 사람도 없어 가고 싶지 않아해 보고 정 안되면 육아휴직을 해서라도 알아서 키우겠다고 했다.
전남편은 내가 나쁜 엄마니 뭐니 일을 할 수 있게 허락해 줬으면 됐지 어떻게 어린 애들을 남의 손에 맡기냐느니 내 죄책감을 사정없이 후벼 파댔다.
결국 나는 여수를 지원해 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