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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메리 Sep 12. 2023

3.어플로 재혼할 남자를 찾게 된 별거(?) 아닌 이유

복잡하지만 단순하게 재혼해 살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어플로 남자를 만났던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단체 모임을 다녔다.

독서모임, 영어스터디모임, 주식모임, 부동산모임, 돌싱모임, 뮤지컬모임, 와인모임, 세차모임, 단순술모임 등등등

그런데 문제는 내가 애를 키우는 직장맘인데 교대근무를 하는데다가 면접교섭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모임을 나가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가끔 한번씩 얼굴을 비추다보니 정식 회원으로 인정받기도 어려웠고 나도 누가 나에게 호감이 있는지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런데서 만나는 사람들 중에 어쩌다 호감을 가지고 접근하는 남자들에게 나는 결혼을 하고 싶어한다고 말하면 다들 화들짝 놀라 도망가 버렸다는 것이다.

다들 정말 접근조차 안했다.

그래서 30대 후반 남자들은 다 결혼을 하고 싶어하지 않는 줄 알았다.


그러다 결국 내가 더 적극적으로 재혼시장에 뛰어들게 만든,

그래서 온갖 어플을 하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다.


대학원 수업 종강 뒤풀이에서 늙은 교수 놈한테 성추행을 당한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충격이 컸다.
그 전에 당했던 건 기껏해야 엉덩이 치기, 부루스 추기, 손잡기, 포옹 정도였다.
지 손자, 손녀를 자랑하던 잔뜩 늙은 교수 놈은 내가 탄 택시 뒷자리에 이상한 핑계를 대며 따라 타더니 30분 동안 내 손과 팔뚝을 아주 지 맘대로 주물러댔다.

무슨 말들도 해댔던 것 같다. 으...


배 타면서, 회사 생활하면서 여러 꼴 다 봤고,
이혼녀로서 여러 꼴 다 봤는데,
그런 직접적인 성추행은 처음이라 나는 아무 말도 아무 저항도 하지 못했다.

당시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한쪽 팔은 내 것이 아니라고 세뇌하고 이 이상의 일은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것 뿐이었다.


다행히 택시 기사님의 눈치를 봤는지 그 이상의 일은 생기지 않았고, 나는 택시에서 내린 후 그놈이 따라 내릴까 무서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집까지 내리 뛰기만 했다.

당시에 나는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게 할 소리 다 하고 강한 척 하고 다녔기에 그렇게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한 채 울기만 한 무력한 내가 정말 싫었다.


다시 이성을 찾은 후에도 나는 그냥 그 일을 덮기로 했다.

나를 도와주기로 한 대학원 동기나 다른 분들이 있었지만 여러가지를 고려해봤을 때 솔직히 나를 향한 비난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여자인 내가 왜 새벽 1시 3차까지 술을 마셨냐며 뭐라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알고보니 내가 이혼녀였다는 것도 비난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알고보니 내가 아들은 안키운다더라는 것도 비난일 수도 있을 것이고, 알고보니 내가 혼전임신이더라는 것도 문제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랬다면... 우리 가족은...

그냥 다 너무 무서웠다.


그 일이 있은 후, 어이없게도 내가 매달린 남편 찾기였다.

결혼정보회사도 가입했다.
근데 결정사는 만남 성사까지 텀이 길었다.
그래서 어플도 하게 되었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고 그랬던  같다.
누군가 날 지켜줄 든든한 방패를 찾고 싶었던 게 아닐까.
되게 웃기고 잘못된 결론을 내렸단 생각은 든다.

좀 더 법적으로 제대로 된 대처를 했었어야 하는 게 맞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나는 가장이었고 직장을 지켜야 했다.

가장인 나는 가족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엄마도 딸도 내가 지켜야하는 대상이지 내가 기댈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강한 척 해야했고 아무 일 없는 척 해야했다.

없던 일로 하는 게 더 쉬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약했고 힘들었다.

정말 절실히 누군가가 필요했다.


수많은 프로필과 사진들, 그리고 비슷한 대화들.

그 중에서 내 짝을 찾아야 한다.

신중하게 잘 판단해야 하지만 열린 마음을 가지고 살피기 시작했다.

충분한 대화를 해보고 이상한 사람인지 확인한 후,

첫만남은 되도록 낮에 하고 어쩔 수 없으면 저녁에 만나되 술은 안먹기.

그렇게 해도 매번 만날 때마다 무서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이번엔 만날 수 있겠지 기대하는 마음에 준비를 하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렇게 매번 만남이 끝나고 기대가 좌절되어 후회와 실망감이 밀려들어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 좌절하는 것은 항상 비슷했다.

아니 반복될 수록 더 크게 다가왔다.


한번은 정말 괜찮은 남자를 만났다고 생각해서 평소와 달리 꽤 긴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정말 아무짓도 안 할테니 모텔에 가서 대화만 하자고 졸라댔다.

코로나로 9시 영업시간 마감이라 달리 갈 데도 없는 상황이라 다음에 다시 만나자며 오빠와 정말 오래 진지하게 만나고 싶다고 잘 달래가면서 돌려보내고 아파트 놀이터에서 이게 뭔짓인지 한숨을 쉬며 벤치에 앉아있는데...

뭐? 내가 먼저 유혹했으면서 그랬다며 자기랑은 잘 안 맞는 거 같다고 다시 만나지 말자는 카톡을 받았을 때의 그 황당함이란! ㅋㅋㅋ

나는 정말 넓은 마음으로 용서하고 한번 더 만나보자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휴... 진짜 저를 먼저 차줘서 감사합니다! 참나!


그런 이상한 남자들을 계속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어플을 했던 이유는...

내가 어플로 진심으로 누군갈 찾고 있으니까.

나처럼 진심으로 누군갈 찾고 있는 남자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시도했다.


솔직히 다시 하라고 하면 정말 하기 싫다. ㅠㅠ

너무 무섭고 너무 힘들다.

그런데 그만큼 간절하니까 어쩔 수 없었다.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그 때 주변 모두가 심지어 엄마까지도 왜 그렇게 결혼을 아니 재혼을 하려고 하냐며 뭐라고 했다.

그런데 사람 생각이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게 아닌 것 같다.

남미새(남자에 미친 새끼?)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책을 읽고 고심을 하고 주변을 둘러보고 생각해봐도...

나는 행복이란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찾고 같이 나누고 살아가는 것 같은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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