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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메리 Oct 01. 2023

14.재혼 전제 연애 한달-초딩5학년 딸아이와 만나다.

엄마의 남사친, 눈치 챈 순간 이미 늦음.

그러니까 남편과 나는 첫 만남 후 정말 쉴새없이 만났다.

남편이 3조2교대 근무를 하는 나의 일정에 맞추고.

또 까탈스런 친정엄마의 9시 통금 시간 요구에 맞춰서.

가능한 1~2시간이라도 매일 같이 만났다.

못 만날 때는 영상통화와 카톡이 끊이질 않았다.

아드레날린이 분비됐으니 그 강행군을 했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끊임없는 검증을 거치며 만나면서 이 남자와 결혼을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두번째 만났을 때 대낮에 산책을 하면서 내가 뜬금없이 서비스직이냐 생산직이냐고 물어봤는데,

남편은 그게 그렇게 웃겼나 보더라.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해 하더니 금세 알아채고는,

"원하면 빨리 말해요. 지금은 서비스직인데, 전 언제든지 바꿀 생각이 있어요."

라고 말했다. ㅎㅎㅎ

이런 식의 질문들을 다방면으로 내가 계속했었는데 자기가 그걸 다 넘어선 남자라며 자부심이 아직도 대단하다.

아무튼 그렇게 재치있고 유연한 사고를 지닌 남자였다.

(서비스직or생산직 질문은 정관수술 유무를 물어보는 거였다.)


어쨌든 한달 만에 나라는 여자의 모든 관문은 통과했으니 이제는 다른 관문을 통과할 차례였다.

그냥 결혼도 쉽지 않은데, 재혼이야 말해 뭣하랴.


특히나 나의 경우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집에서 내가 제일 순한 거라고 남편에게 경고를 했다.


이혼하고서 친정엄마, 나, 그리고 우리 딸.

이렇게 3대 여자 셋이서 살아왔다.

분리양육 중인 아들은 2주에 한번씩 면접교섭으로 1박 2일로 왔다 갔다.

결혼을 안 한 친오빠나 남동생도 있어서 가끔 왔다 갔다.

나는 교대근무하느라 한 달에 10일~12일은 회사에 있느라,

친정엄마와 우리 딸은 유대관계가 깊었다.


연애를 시작하고 거의 한달쯤 됐을 때,

딸을 남편과 만나게 하려고 나들이를 갔다.

당연히 너무 이르다고 생각해 친정엄마는 안 좋아했지만,

나는 결혼이 목표였고,

나의 결혼에 딸은 필수 옵션이었으니,

딸과 남편이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자주 만나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다.

아이가 어릴 때 재혼했으면 좋았을텐데,

너무 시간이 많이 흘러버렸다.

그래서 이왕이면 빠를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딸이 초등학교 5학년이라 사춘기가 아직 안왔을 때 조금이라도 어렸을 때 만나게 해서 친해지게 해야 적응하기 수월하다고 생각했다.

타이밍이 안 맞아버리면 중학생이다.

그 때도 안되는 건 아니겠지만 진짜 더 어려워질 것 같았다.

진짜로 같이 살기 전에 자주 봐서 친해져야 수월하게 결혼을 할 수 있다.


물론 어느정도 믿음은 있었다.

이 남자라면 아이랑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둘의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면 그 때는 다른 대책을 세워야 하니까 그것도 시간 낭비를 덜 하기 위해서는 빨리 만나는 게 나았다.

어느 정도는 우리 아이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 하는 자신감도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게 그  제 자식만 이뻐 보이는 부모의 자신감일지 모르겠지만,

내가 봤을 땐 우리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웠으니까 남편도 사랑해줄거라고 생각했다.

하하하


우리 딸은 다행히 이전에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놀러다닌 적이 많아서 그랬는지, 낯선 아저씨와 놀러가는 것에 크게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다.

친구부부들 캠핑 모임에 꼽사리 껴서도 아이들을 데리고 다녔고, 회사직원들 가족과도 같이 어울렸다.

처음엔 나 혼자 캠핑 장비를 챙기기도 힘들고 아이들이 같이 놀 친구가 필요했으니 초대해주면 고맙다고 같이 다녔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부부들 모임에 나 혼자 이혼녀인 그런 곳에 끼는게  싫어져 카페나 밴드같은 곳의 싱글맘&싱글파파 모임을 찾아다녔다.

아이동반으로 갯벌체험도 하고 놀이공원도 단체할인 받아서 가고 동물원도 가고 여러 곳을 1박 2일이나 당일치기로 다니는 모임이었다.

혼자서 아이를 양육하고 놀아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보니, 그렇게 모여서 같이 가면 아이들끼리 놀기도 하고, 어른들끼리도 뭐 썸도 타고 서로 서로 돕고 할 수 있으니까 상부상조였다.


특히 성별이 다른 아이를 키울 때 수영장 같은 물놀이는 만5세 이상부터는 샤워실에 데리고 들어갈 수 없다보니 서로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절실했다.

혼자서 한 번 집에서 다 씻고 준비해서 가고 나올 때는 안 씻고 바로 출구에서 만나는 식으로 해서 가본 적도 있는데, 샤워장에서 아들과 그 잠시 떨어져있는 시간 동안 아들이 길을 잘 찾아나올지 모르겠어서 어찌나 불안한지 마음이 정말 조급했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흔쾌히 도와줬겠지만, 뭐랄까... 그러기엔 뭔가 부채감이 있다.

이혼해서도 미안한데 이런 부탁까지 하기가 미안해서 그런가...

그렇다고 안 가기엔 아이들이 주변에서 듣고 가보고 싶어하기도 하고,

엄마로써 아이들이 하고 싶어하는 건 다 해주고 싶어서 어쩔 수 없었다.

편모가정이라고 못 누린다는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아서 더 노력한 걸 수도 있다.


어쨌든 혼자 애들데리고 놀러다니기도 한계고,

애들도 친구들이랑 놀고 싶어해서,

그런 모임에 처음 갔더니 아이들끼리 서로 하는 질문이 놀라웠다.


너는 엄마랑 살아, 아빠랑 살아? ㅎㅎㅎ


조금 내성적이던 우리 딸은 이렇게 낯선 친구들과 몇번 어울리더니,

그 다음부터는 동네 놀이터에서 새 친구에게 말거는 걸 어려워하지 않게 되어 굉장히 뿌듯했다.

물론 반대급부로 다들 편부모 가정이다 보니 그게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는지,

우리 딸이 아파트 단지에서 너무도 당당하게 우리 엄마는 이혼했다고 말하고 다녀서 부끄러웠던 것은 있었다.


다행히도 그런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우리 딸은 낯선 아저씨랑 놀러 간다는 자체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나도 첫만남은 그냥 재밌게 논다는 정도로만 얘기해주고 싶었기에 딱 담백하게 엄마 친구, 아는 아저씨 그 정도 소개로 끝을 냈다.


그렇게 같이 수목원에 갔고,

남편은 거의 운전사&짐꾼이었다.

그 덕에 나는 딸에게 온전히 집중해서 놀아줄 수 있었다.

그렇게 딸과 집중해서 놀아준 게 오랜만이라 그런지,

딸은 굉장히 만족한 눈치였다.

다른 때는 내가 혼자 다 하느라 힘들어하고 피곤해서 딸과 잘 놀아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자신의 역할을 아주 100% 해냈다.

간간히 내가 잘 못하는 재밌는 감초 역할까지 해주었으니 딸은 엄청 좋아했다.

지독한 집순이인 우리 딸에게 다음에 또 같이 놀러가자는 약속까지 받아낸 성공적인 만남이었다.


마지막 남은 약간의 경계심은 아저씨가 아이패드를 가지라고 선물로 줘서 풀어진 듯 한 건 내 착각이겠지?


우리 딸이 둘이 친구 아니고 사귀는 사이냐고 물어본 건,

서너번 만난 후에 자기가 갖고 싶다던 커플오리인형을 아저씨 차에서 발견한 후 였다. ㅋㅋㅋ

엄마 혹시 둘이 사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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