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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메리 Oct 09. 2023

17.남자의 눈물에 사랑을 느낀다.

결혼하자고 조르는 남자라니!

복잡하지만 단순하게 재혼해 살고 있습니다.

남자가 가끔 울면 사랑스럽다?ㅋ-출처:연애의과학

연애가 안정기에 들어서고,
딸과의 만남도 익숙해져 셋이 워터파크에 간 날이었다.
사람도 많고 정신없는 와중에 남편은 우리를 살뜰이 챙겨줬다.


나는 너무 남편만 왔다갔다 고생하는 거 같아 좀 안절부절했는데,

철없는 딸은 아는지 모르는지 내 옆에 딱 붙어 물놀이 하기에 바빴다.

딸이 배고프다길래 사먹으러 가자니까 하는 말이,
"우리는 여기 온탕에서 기다리고 아저씨보고 사오라고 하면 안돼?."
이런...

그러면 안된다고 아저씨 힘들다고 말렸지만

남편은 그냥 웃으며 괜찮다고 여기 있으라고 하고 다녀왔다.
딸은 자기 혼자서 엄마를 독차지하고 아저씨는 해달라는대로 다 해주니 너무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조금 거리감이 없어진 아저씨를 상대로 노는 것도 재밌어했다.


그렇게 끝날 때까지 재밌게 놀고 딸 먼저 집으로 들여보낸 후,

남편과 나는 커피를 마시러 갔다.

나는 남편이 너무 고생한 거 같아 미안하고 고마웠는데,

자기한테 이런 건 고생도 아니라며 괜찮다고 했다.

오히려 간만에 체험한 가족 나들이 느낌을 더 좋아했다.

자기가 가족들을 챙겨주면 가족들이 고마워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게 사는거지, 사는 게 별 게 있냐고 좋아했다.


도대체 어떻게 살아왔길래 짜증을 안내지?

진짜 신기했다.

설마 나 꼬시려고 이렇게까지 연기를 하는걸까?

아니면 그냥 콩깍지가 씌여서 그런 걸까?
계속 왔다갔다 하느라 피곤하고 짜증이 날 것도 같은데, 이런 남자도 있구나...


그러면서 남편이 결혼 얘기를 꺼냈다.
물론 처음부터 결혼을 전제로 사귀고 싶다고 한 건 나였지만,

그렇다고 연애한지 이제 2~3달밖에 안됐는데 결혼하긴 이르다고 느껴졌다.


이 사람이 지금 연애 중이니 이러지 나중에 어찌 변할 줄 알고?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는데.
딸도 있는데 신중해야지.
아무리 결혼이 하고 싶어도 아무나랑 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나도 지금 사랑의 도파민이 한창 나오고 있을텐데,

이 남자를 제대로 보고 있는지

내가 정말 제대로 된 판단력을 가졌는지 모르겠어서 불안한데 그게 되겠냐고.

그런데 남편은

- 검증 다 끝난 거 아니냐.
- 왜 싫냐.
- 다른 남친들이랑은 안 이랬던 거 아니냐.
- 뭘 더 알아보고 싶냐.
그러면서 재촉했다.
어서 양가 부모님께 인사드리고 결혼하자는 거였다.
뭐 3달이면 결혼까지 가는 커플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솔직히 나는 불안했다.


어플로 만난 것이라 찝찝한 것도 분명히 영향이 있었다.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이고 사랑도 더 커져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완전한 신뢰를 가지기는 어려웠다.
나는 그냥 정말 시간이 필요했다.
사계절은 만나보라고 하지 않은가...

나는

- 엄마한테 말하기가 어렵다.

- 엄마가 오빠를 만나려고 하질 않는다.
- 미안하다.
라는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댔는데,
그래서 그런지 남편은 엄청 답답해했다.
왜 자기를 못 믿냐며 계속 조급해했다.

그러다가 결국 눈물을 보이더니 내 전남친 이야기를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왈칵 눈물을 쏟았고

그런 나를 보고 실수했다고 생각했는지

그렇게 서로 미안해하며 넘어갔다.

정말 괜히 얘기했다 싶었다.

과거 얘기는 절대 하면 안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안 할 수가 없었다.

남편은 나의 이혼 후 9년 동안의 공백기를 정말 궁금해했다.
대충 애 키우느라 시간이 없었다며 얼버무리기도 안 통했고,

짧게 사귄 남자들이 많았다고 하기에는 좀 그랬다.


원래 내가 거짓말을 잘 못하긴 하지만;;;

남편은 눈치가 더 백단이었다. ㅠㅠ
뭐 나도 이런 괜찮은 사람이 왜 여태 시장에 남아있는지 의심을 많이 하긴 했으니,

남편도 내가 이상한 여자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을거다.

이상한 여자가 아니라면 도대체 그렇게 긴 시간동안 왜 재혼을 못하고 있었단 말인가.


결국 있는 그대로 사실을 다 말하고 나서야 남편의 추궁을 벗어날 수 있었다.

두번의 긴 연애를 했고, 재혼을 하고 싶었으나 현실이 어려웠다.

첫번째는 중학교 때부터 알던 친구였는데 남자 쪽 경제 사정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다리다가 내가 지쳐버렸다.

두번째는 대학교 1년 후배였는데 아이 둘을 둔 사별이었다.

비슷한 아픔을 지니고 있던 터라 마음이 많이 갔고, 아이들끼리도 상당히 친했다.

그런데 결국 남자 쪽 모친의 결사 반대로 헤어졌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없지만 어쨌든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39살이 되었던 것 뿐이다.

나는 그들과의 관계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래도 좀 감췄어야 했나보다. ㅠㅠ

운이 나빴든 어쨌든 재혼을 원하는 데 여태까지 못했다는 것에

나한테 분명 남자들이 안좋아하는 어떤 문제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문제가 뭔지 고치려고 엄청 노력하고 생각했다.

남자들을 만나는 경로를 다양화하는 것부터 쌍커풀 수술까지 ㅎ

변하려고 노력했다.


그랬는데 재혼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생각보다 빨리 남편을 만나서 좀 허무하긴 했다. ㅎ

정말 내가 좁은 세계에서 편견을 가지고 살았구나,

세상에 이렇게 나를 원하는 남자가 많았다는 착각도 잠시 했다.

어쨌든 전남친들과의 스토리를 숨기지 못하고 너무 다 말해서 그런지,

남편은 그 전남친이랑 비교를 하며 답답해 했다.

전남친이랑은 금방 결혼 결심을 했지 않냐며,

왜 자기랑은 시간이 더 필요하냐고 울면서 말하는데,

할 말이 없었다.

어플로 만난 사람과 어릴 때부터 알던 사람의 간극 때문인건데 이걸 어떻게 좁힐 수 있는가.
아무튼 진짜 내 주둥이가 언제나 문제다.


근데 좀 웃긴 건 남편의 눈물을 보고 나의 사랑은 더 깊어졌다.
이상하게도 그러면 안되는 걸 알면서도 그 눈물을 보면서

'이 남자가 나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게 내가 불안형 애착 유형이라서 그런 것 같다.

갈등 상황이 익숙하고 평온한 상태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편이 화내면서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들어냈을 때와 마찬가지로 진심이 느껴져 나 때문에 우는 남편 앞에서 변태같이 자꾸만 웃음이 새어나왔다.


남편이 연애 초반에 나 때문에 안절부절하고 초조해하는 모습을

나는 정말 좋아했는데,

요즘엔 너무 여유로워져서 얄밉다.
내 성향을 완전히 파악한 이후부턴,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자기를 절대 떠나지 않을거란 확신이 생겼는지,

한번 정을 주면 쉽게 떼버리지 않는 내 약한 면을 정확히 알아봤다.

그래서 요즘엔 이상하게 남편이 떠날까봐 내가 불안해하고, 남편은 그런 나를 달랜다.

신나는 물놀이ㅋ 여름내내 많이 놀고 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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