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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메리 Oct 17. 2023

20.아저씨는 우리 엄마랑 왜 사귀어요?

딸의 당황스러운 대답

복잡하지만 단순하게 재혼해 살고 있습니다.

우리 엄마한테도 무난히 첫인사를 마쳤다.

엄마는 만나기 전에도 계속 탐탁지 않아 하셨다.

그냥 내가 누군가를 만나는 걸 싫어하셨다.

남자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기도 했고,

세상이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나도 남편이 좋아서 계속 만나고 결혼을 해도 되겠다 싶긴 했지만 완벽한 신뢰는 어려웠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사람 속을 어떻게 아나 싶고...

어플로 만난 사이라서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무서웠다.
두 번 실패할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어쨌든 그래도 인생은 모험이고 리스크 감수고

혼자 살기보단 내 짝을 찾고 싶은 마음이 더 컸으니!
불안한 마음은 살짝 접어두고 진행시켰다.
믿지 않으면 어떤 인간관계도 시작될 수 없으니까.

남편과 만나기 싫어했던 엄마는 실제로 만나보니 맘에 들었는지
더 이상 이전 같은 노골적인 불편함은 내비치지 않으셨다.

사람이 인상이... 좋다고 하셨다. ㅎ


그렇게 양가 인사를 마치고 이젠 진짜 결혼 전제로 만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귄 지 약 6개월 만의 일이었다.
그래서 딸래미가 제주도를 가고 싶어 하기도 하고

회사에서 제공하는 저렴한 숙소에 당첨되기도 해서

겸사겸사 제주도 가족여행을 계획했다.
여기 남편을 끼어넣고 싶어서 눈치만 보다가 살짝 물어봤는데 의외로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다.
아마도 엄마는 남편이 같이 가면 내가 운전 안 해도 되니

좀 편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허락하신 거 같다. ㅎ

남편은 기회만 주면 장모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고 호언장담을 하더니, 진짜 그랬다.

이번 여행에서 아주 엄마 마음에 쏙 든 거 같았다.
여행이 끝나고 엄마 입에서
"여태 니가 만난 남자 중에서 제일 나은 거 같더라"
라는 말이 나왔으니까. ㅎㅎㅎ

3박 4일 일정으로 스케줄도 우리 삼대 모녀의 취향에 맞게 여유롭게 잘 짜고
식당도 다 맛있었다.
딸도 엄마도 몇 번이나 함박웃음을 지으며 식사를 했다.

정말 여행 내내 즐거웠다.

특히 마지막 날에 갔던 관음사가 기억에 남는다.
절 자체가 독특하고 이뻤다.
당시 방영했던 드라마 우영우에서 나온 곳이라고 한참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그걸 알고 간 건 아니었지만 날도 좋고 녹음도 푸르고 절도 깔끔하고 이뻐서 너무 좋았다.

그런데 기억에 남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엄마가 절 구경을 좋아해서 엄마와 나는 좀 더 구경을 하고 싶었고,
딸은 지루해해서 그렇게 싫으면 아저씨랑 먼저 차에 가 있으라고 했다.
낯을 가려서 싫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알겠다고 했다.
그렇게 딸과 남편은 둘만의 대화 시간을 가지게 됐는데,

나중에 전해 듣고 엄청 웃었다.

딸이 갑자기 남편에게 물었다.
"아저씨. 아저씨는 우리 엄마랑 왜 사귀어요?"


당황스러운 질문에 잠깐 주춤했지만 능수능란한 남편은 화려한 언변 솜씨를 진솔하게 뽐냈다.
"같이 있으면 엄마한테 배울 점이 많더라고,

 대화도 잘 통해서 즐겁고.

 그래서 그런지 가장 나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엄청 편해."
"그래요? 흠..." 


시큰둥하게 대답하는 딸을 보고 남편도 물었다.
"ㅇㅇ가 보기엔 어때?

 엄마는 아저씨 왜 만나는 거 같아?

 아저씨 만나고 엄마가 더 좋아 보이지 않아?"
"음..."

살짝 고민하는 거 같더니 딸이 혼잣말처럼 툭 내뱉었다.

"엄마는 아저씨 엄청 부려먹는 거 같은데..."
ㅋㅋㅋㅋㅋㅋ


남편은 듣고 빵 터졌고, 나중에 내가 들었을 때도 진짜 엄청 웃었다.

딸이 보기엔 아저씨가 너무 봉사하고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래서 그런 질문을 했나 보다.
진짜 애들 눈은 못 속인다는 게 딱 맞다.
그래도 그렇게까지 부려먹진 않은 것 같은데...
괜히 미안해졌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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