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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메리 Oct 12. 2023

19.예비 시아버지의 날카로운 세 가지 질문

회사 면접보는 줄;;

복잡하지만 단순하게 재혼해 살고 있습니다.

잔뜩 긴장한 채 남자친구 부모님 집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

남편은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꾸 그랬다.

첫 인사를 가는데 당연히 양손을 무겁게 가야하는게 맞지.

들어보니 전아내는 빈손으로 인사를 갔었다는데... 특히나 나는 그 반대로 해야지.

선물은 조금이라도 아껴보고자 인터넷으로 사서 포장만 백화점에서 따로 하고, 꽃바구니도 큰 걸로 주문했다.


의외로 예비 시어머님은 현관 앞까지 나오시며 아주 반겨주셨다.
오히려 예비 시아버님이 무뚝뚝한 표정을 한 채 잔뜩 경계를 하셨다.
내가 진짜 무슨 사기꾼일까봐 엄청 걱정이 되셨나보다.

아들이 엄청 순진하게 어디서 여자들한테 호구짓이나 당하고 다닌다고 생각하시는 듯 했다.

부모는 자식을 정말 잘 모르는 것 같다. ㅎ

 

어색한 분위기가 조금 지속되다가 식탁에 둘러앉았다.
그러시면서 아버님이 근엄한 표정으로 나에게 세 가지 질문을 하셨다.
1. "우리 ㅇㅇ이가 왜 좋은가?"
2. "자네의 장점이 뭔가?"
3. "아버지는 어떻게 돌아가셨는가?"

첫 번째 질문 "우리 ㅇㅇ이가 왜 좋은가?"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웃으면서 대답했다.
진짜 좋아하니까 솔직하게 대답하면 그만이었다.
"사람이 진짜 바르고 똑똑하고 믿음직한 사람인 것 같아서요."
하고 말하는 내 표정과 얼굴에서 사랑이 묻어나오니 아버님은 만족해하시는 듯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경계를 하셨다.


두 번째 질문 "자네의 장점이 뭔가?"에서는 좀 상당히 당황했다.
회사 면접이었으면 준비해 갔을 텐데 ㅜㅜ 미처 생각지 못한 질문이었다.
한참을 어버버하니까 어머님이 뭘 그런걸 물어보냐고 핀잔도 주셨고 남편도 엄청 웃었다.

그러다 겨우 간신히 생각해 큰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아! 저! 생활력이 강합니다!"
어휴~ 진짜 그게 뭐야 ㅎㅎㅎ
근데 내 스스로 생각하기를 남편에 비해 장점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에 백지장처럼 된 내 머리속에서 딱 하나 떠오른 답변이 그거였다.

- 때려치우고 배 타러 간다.
- 선장 돼서 도선사 할 거다.
- 나 배 탈 동안 뒷바라지 좀 해 줘라.
맨날 내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었다. ㅋㅋㅋ
회사 다니기 힘들 때마다 염불처럼 외는 말인데, 이건 왠만한 해대생들이 다 하는 말이다.

육상이 힘들 때마다 정말 시시때때로 바다로 도망치고 싶은 생각이 든다.
어쨌든 짤려도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건 상당히 든든한 보험이다.
다행히 그 대답도 아버님 마음에 드셨나 보다.

경계가 조금 풀어지신 것 같았다.


세 번째 질문 "아버지는 어떻게 돌아가셨는가?"에서는 진짜 당황했는데...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은 분 사망 사유를 궁금해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남편도 그걸 질문할 지 몰랐는지 당황해했다.

나는 순간 멍해져서 정말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그 때 눈치빠른 어머님께서 나서주셨다.

뭘 그런 걸 물어보냐고 그만하라고 무마시켜 주셨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질문이긴 했다.
우리 아빠가 50살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으니까...
그래도 내 입장에선 아직도 갑작스레 돌아가신 아빠에 대한 상처가 큰데, 마지막 질문에 대답하기는 너무 어려웠다.

속으로 남편이 괜시리 원망스러웠다.
대충 부모님께 미리 언급이라도 했어야지 나한테 이런 소리를 듣게 만들다니 싶어서 속으로 아니 눈빛으로 원망을 쏟아냈다.


그래도 어찌어찌 만남이 잘 끝난 것 같았다.
궁금해하던 나를 보니 아들이 정말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실감이 나셨던 것도 같다.
하나뿐인 아들이 두번째만큼은 제대로 된 여자를 만나기를 바라셨을테니 속은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정상처럼 보여서 안도를 하셨나? ㅎ
남편이 이혼 후 본가로 들어가 살면서 예비 시부모님은 홀아비가 된 아들이 좋은 짝을 만났으면 해서 이런저런 노력도 많이 하셨다고 했다.

어머님이 지인들한테 소개를 부탁하기도 하고,

택시 운전을 하시던 아버님은 뒷자리에 공개 구혼 문구를 작성해서 붙이고 다니셨다고 ㅎㅎㅎ

관심을 보이던 손님이 몇 있기는 했었는데 실제로 이어진 적은 없다고 했다.

나한테는 다행인 건가?


나도 여태 혼자인 친오빠를 보면 안쓰러운데, 부모님은 이혼까지 하고 돌아온 아들이 얼마나 안쓰러우셨을까 이해가 된다.

여자는 혼자 산다고 해도 그렇게 안쓰럽지 않고 오히려 홀가분하겠다 싶은데,

혼자 사는  남자는 왜 그렇게 생각되는지 참 모를 일이다.

이걸 붙이고 다니신 건 아니고 ㅎ 그냥 신문 공개 구혼 광고 사진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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