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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복단재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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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메리 Oct 22. 2023

22.의외의 사건으로 해결된 합가문제

아파트 13층에 이상한 사람이 산다.

복잡하지만 단순하게 재혼해 살고 있습니다.

계단식 아파트

분가할지 합가할지는 정말 어이없는 사건으로 해결?이 됐다.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사는 이상한 사람 때문이었다.
이전부터 야간근무할 때마다 집에 나이든 엄마와 어린 딸만 있는 게 항상 불안했는데 그걸 확실히 위협하는 사건이었다.

어느 날 딸과 딸 친구가 밖에서 놀다가 저녁을 먹으러 오려고 6시즘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계단식 아파트였는데 같이 엘베를 기다리던 나이가 좀 있는 남자가 몇층에 사냐고 물었다.
딸은 00층에 산다고 대답했다.
어짜피 같이 엘베를 타면 알게 될 것이었으니 별 생각을 안한 것 같다.
그렇게 그 이상한 남자와 딸과 딸 친구 3명은 엘베를 탔고, 각 층이 눌려졌다.
우리집보다 5층 아래였다.

그래서 그 남자가 먼저 내렸다.

그런데 엘베 문이 열리자마자 그 남자는 집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전속력으로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딸과 친구는 잠시 어리둥절 해 했지만 이상한 사람 다 있다며 웃고 넘기고 금방 자기들끼리 놀았다.

우리 집이 있는 층에 도착할 때까지...
엘베 문이 열리자 딸과 친구를 맞이한 것은 아까 계단을 전속력으로 뛰어올라가던 그 나이든 남자였다.

엘베 바로 앞에 서서 "와악!" 하고 애들을 놀래켰다.
애들은 혼비백산하며 번호키를 어찌 눌렀는지 울면서 집으로 뛰어들어갔고,
그 남자는 혼자 재밌다고 배를 잡고 웃으며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더니 아이들이 보든지 말든지 잘 들어가라며 손인사까지 했다.
그리고는 그 남자는 13층에 내려 자기 집으로 들어갔다.

처음에는 딸이 전화로 횡설수설하길래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
나중에 관리사무소에 가서 CCTV를 확인하고 나서야 무슨 이런 미친놈이 다 있나 싶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외부인도 아니고 같은 라인이라니...
나이도 5~60대로 보이는 데 왜 저런 짓을 했나...
심지어 5개층을 뛰어서 엘리베이터를 따라잡다니 진짜 미친 놈 같았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어서 남편에게 해보라고 했는데 체력이 보통 좋지 않고서야 힘든 일이었다.
경찰 신고를 해도 경고 조치 말고는 뭐가 될 것 같지도 않았고 가만히 있자니 불안하고 정말 심각했다.
특히 딸은 안 그래도 엘레베이터를 무서워했는데 더 무서워하며 혼자 타기 꺼려했다.
그렇다고 매번 아이와 같이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답답했다.
이상한 미친놈이 같은 라인에 살고 우리 집도 알고 심지어 번호키까지 알면 어떻게 하나.
자꾸 이상한 쪽으로 상상이 되어 무서웠다.

그러다 또 한 번 그 이상한 놈이 그 이상한 짓을 하는 걸 이번엔 내가 직접 목격했다.
이번엔 1층에서 5층까지 그놈이 뛰어올라왔다.
총 5명의 이웃들이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그놈은 굳이 안 타고 계단을 뛰어올라가더니,
5층에서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5명 중에 5층에 사는 어린 자매를 알아본건지 어떤지 엘베가 5층에서 멈출 줄 알았다는 게 소름이 돋았다.

저번처럼 애들을 놀래키지는 않았는데 성인인 사람 3명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내리는 사람이 있는데 비켜서주지도 않고 떡하니 한 가운데 버티고 서 있는 것도 정말 무서웠다.
어린 자매는 그 사람을 비켜서 옆으로 겨우겨우 내렸다.

그러고 그 남자는 다시 우리 엘레베이터를 타고 자기 집인 13층을 눌렀는데, 같이 타고 올라가는 몇 분 동안 나는 너무 숨이 막혔다.
- 저 미친놈 저 여자애들이 5층 사는지 어떻게 알았지?

- 왜 굳이 저렇게 뛰어올라와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거지?
- 왜 자꾸 저런 짓을 하는 거지?

- 같은 라인 여자아이들 사는 층을 모두 다 알고 있나?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또 거친 숨소리는 왜 저리 참는지 변태 같았다.
너무 무서웠다.
우리가 없고 어린 여자애들만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지 걱정됐다.

가볍게 생각하면 그냥 장난기 많은 중년 아저씨인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다큰 성인이 왜 굳이 5개층을 뛰어서 엘베를 따라잡는 짓을 하냔 말이다.

아니 할 거면 혼자 하던지 굳이 왜 어린 여자아이들이 있을 때 그런 짓을 할까?

혼자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온갖 망상을 하다보니 자꾸만 안좋은 쪽으로 생각이 흘렀다.


그런데 나는 이 상황이 정말 너무 불안해 미치겠는데 남편은 너무나 태연해보였다.

자기 일이 아니라 그런건지 남자라 그런건지 너무 걱정이 없는 것 같아서 남편에게 화를 냈다.
지금 자기 애가 아니라서 그러는 거냐는 말까지 했다.
실질적은 대책은 없고 실제로 아무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 그냥 걱정하지 말라는 말만 하니 짜증이 났다.

그러다 관리사무소장님께 연락이 왔다.
자기가 직접 그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했다고.

의외로 순순히 엄청 미안해하면서 안 그런다고 했다는 거다.

우리한테 사과도 직접하고 싶다고 연락처 물어보는 건 그냥 거절했다고 했다.


엥? 뭐야? 그런 행위들이 위협이 된다는 걸 진짜 몰랐던 건가?
뭔가 이상했지만 그래도 완전 미친놈은 아닌 것 같아 조금 안심이 되었다.

아니면 관리소장님이 경찰에 신고할 수도 있다는 말에 쫄은 걸까?

어쨌든 그 이후로 종종 그 남자를 마주치는데 더이상 그런 이상한 짓을 안 하긴 한다.

그래도 볼 때마다 흠칫하며 경계를 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나나 딸이나 엄마나 굉장히 무섭게 느껴지던 사건이라 문단속으로 걸쇠도 새로 하나 더 달았다.

그런데 이 일로 엄마도 딸도 남편이 집으로 들어와 같이 사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자기들끼리 집에 있는 것보다 누군가가 있다는 게 특히 남자가 같이 집에 있다는 게 든든하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았다.
물론 나도 훨씬 안심이 되고!

그래서 더이상 분가한다는 옵션은 사라지고 합가하는 쪽으로 결론을 지었다.
그렇게 우리의 결혼을 온 우주가 도와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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