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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복단재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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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메리 Oct 30. 2023

26.재혼이라 더 행복했던 신혼여행!

비록 딸이 엄마만 놀러 간다고 좀 뾰로통했지만^^;;

복잡하지만 단순하게 재혼해 살고 있습니다.

이런 느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삐짐.

드디어 남편이 정식으로 집으로 들어온 후 바로 신혼여행을 간다고 했더니 딸이 잔뜩 삐졌다.

안 그래도 엄마 재혼으로 그냥 짜증 나는데, 자기는 두고 어딜 놀러 간다고 하니 더 짜증이 났나 보다.

딸의 입이 뾰로통하게 나오면서 대놓고 가지 말라고 했다.

- 엄마만 간다고? 가지 마! 왜 엄마만 가? 나는?


신혼여행을 간다고 내가 미리 말을 안 한 탓도 있었다.

딸만 두고 나만 놀러 가는 것 같아서 미안하기도 했고,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어려워서 미루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런데 딸의 투덜거리는 말을 잘 들어보면 짜증 나는 포인트가 내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 나는 힘들게 학교에 가야 하는데 엄마만 일 안 하고 신나게 놀러 가다니 어떻게 그럴 수가! 이 배신자!

이런 느낌?

딸이 학교 가기 싫다고 징징댈 때마다 나도 회사 가기 싫다고 같이 징징대서 그런가? 원래 이렇나?

아무튼 그런데 어쩌랴.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어쩔 수 없다. 뻔뻔해지는 수밖에.


- 미안하다.

- 2달 후에 너도 같이 물놀이하러 해외여행 갈 거다.

- 조금만 이해해 줘라.

친정엄마도 같이 딸을 잘 달래주면서 토닥여주었다.

특히 엄마 환갑 기념으로 예약한 베트남 여행을 너도 곧 갈 거라고 강조하면서!


신혼여행을 딸과 엄마랑 같이 가는 것도 생각해 보긴 했으나...
이런 핑계 아니면 앞으로 언제 남편과 단둘이 여행을 갈 수 있겠나.
대의를 위한 희생이다.
엄마가 행복해야 애도 행복하지!

진짜 딸을 생각해서 5박 8일로 짠 건데...

안 그랬음 2주짜리 갔을 거다. ㅎ

신혼여행 가는데 딱히 쇼핑을 안 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세상에 입을 옷 많다고 살 필요 없다고 하는 여자는 너밖에 없을 거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데, 이게 만족스러워서 그러는 건지 어떤 건지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튼 그렇게 대충 짐을 싸고, 딸을 달래가면서 드디어 출발 당일이 되었다.

학교에 가는 딸은 여전히 맘에 안 드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잘 다녀오라고 말해주었다.

정말 사랑스러운 딸이다.

한국에서 모리셔스. 엄청 멀다.

부산에서 인천.
인천에서 두바이.
두바이에서 모리셔스.
비행기를 3번이나 타야 했다. ㄷㄷㄷ
비행시간만 총 15~16시간.
두바이 대기시간까지 하면 20시간.
이 긴 시간에도 불구하고 남편과 함께 하니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역시 뭐든 누구와 함께하냐가 중요한 거였다.
20대 때 혼자 일본 경유해서 영국 갈 때는 그리 힘들고 지루하더니.

뱃사람이라 주변에 혹시 배 타고 모리셔스도 가본 사람이 있으려나 싶었는데 진짜 있었다.

정말 금방 찾았다.

자동차 운반선 타고 자동차 한 대 내려주려고 들르느라 상륙은 못 나가봤지만, 항구에서 본 도시 풍경은 이국적이었다고 했다.

놀러 가본 사람은 없었는데, 배 타고 가본 사람은 있다니 진짜 다들 안 가보는 데가 없다.

하긴 그걸 동경해서 항해사가 되었던 거지.


모리셔스는 제주도보다 조금 더 큰 섬이었는데, 발전은 좀 덜 된 곳이었다.
현지 물가는 한국보다 싸지만, 관광객 상대로 하는 곳은 비쌌다.
음식도 특색은 없고 여러 나라 섞여있었다.
유럽인들의 동남아였다. 가족 단위 휴양지 느낌?


리조트나 관광지에서 볼 수 있는 외국인들은 프랑스인이 제일 많았고 그 외 대부분 서양인들 그리고 가끔 중국인들.
그래서 중국인이냐고 오해를 많이 받았는데, 아니라고 한국인이라고 말하면 다들 어느 나라인지 알기는 했다.

이런 한참 먼 외국에서도 한국을 알다니 위상이 정말 많이 높아졌다.


자동차 렌트를 했는데 영국 식민지 영향을 받아 운전대가 오른쪽에 있었고 로터리가 많았다.
길도 잘 안 닦인 곳이 많아 멀미를 했다. 으으으
그래도 매일 마트도 가고 해변가 드라이브도 하고 여유 있게 잘 즐겼다.

남편은 오른쪽 운전도 금방 숙달하더니 5일차 쯤엔 아주 현지인인 줄.
거기다 언제나 여유롭고 마주치는 사람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스몰톡도 자연스럽게 하는 모습은 남편에게 다시 홀딱 반하는 계기가 되었다.

솔직히 너무 멋졌다. ㅋ
나는 사람들이랑 눈 마주칠까 봐 피해 다녔는데, 여유로운 남편의 모습이 너무 든든했다. ㅎ
신혼여행 와서 24시간 방영되는 테니스 경기를 주구장창 보는 모습조차도 사랑스러웠으니 말 다했다.

하긴 그래야 결혼하지. 안 그러면 결혼 못한다.
남편이 액티비티 하나는 해야 한다며 신청한 것도 생각 이상으로 재밌었다.

특히 엄청 긴 짚라인을 탔는데 나의 반응이 엄청 혼비백산했어서 엄청 웃겨했다.

아직도 그 얘기를 하면서 웃는데, 아마도 평생 즐거운 추억거리가 되겠지?


너무 순식간에 5일이 지났다.
더 오래 이 여유를 즐기고 싶었지만 현실이 기다리고 있으니 가야지.

신혼여행은 참 좋은 것이었구나.

중혼여행, 말혼여행 같은 것도 있으면 좋겠다.

여행 가기 전에 엄마도 친오빠도 가서 싸우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진짜 싸울 틈이 없었다.

너무너무 행복하기만 한 신혼여행이었다.


아! 호텔 숙소가 비치프론트가 아닌 2층 오션프론트라 내가 살짝 투덜대는 바람에 남편도 거기서 조금 울컥했던 것 같긴 했는데 그냥 서로 이해하고 별 일 없이 넘어갔다.

나는 진짜 그냥 몸만 간 거나 다름없었기에 남편이 다 검색하고 예약하고 일정 짜고 운전하고 잔뜩 고생해 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그래서 그랬는지 모리셔스 도착 2일차에 남편이 코피를 터트리긴 했다. ㅎㅎㅎ

내가 재혼을 너무 날로 먹은 느낌이긴 하다. ㅎ

모리셔스! 구글 리뷰를 위해 사진을 정말 열심히 찍어줬던 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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