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을 낭만으로 끝내지 않게 하는 리더의 두 가지 역할
저는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창문을 엽니다. 차가운 공기와 아침 햇살이 밀려들고, 커피 한 잔의 향기 속에서 오늘의 일정을 머릿속에 그려봅니다. 그리고 잠시 후 출근하여 마주할, 언제나 가득 차 있는 메일함을 떠올립니다. 지겨움이나 압박감이 밀려올 법도 하지만, 저는 그 짧은 정적 속에서 늘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집니다.
"오늘 만날 사람들, 오늘 부딪힐 문제들 앞에서 나는 리더로서 어떤 '1인치'를 만들어낼 것인가?"
팀이란 함께 모여서 일을 하는 그룹이라고들 합니다. 우리가 팀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그 의미, 그리고 하나의 조직 내에서 팀이 어떠한 것이 이상적일까라는 것들은 이미 많은 이야기들과 글들과 논문들로 설명되어 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에게 팀의 본질은 이 '1인치'라는 단어 하나로 귀결됩니다.
영화 <Any Given Sunday>에는 유명한 'Inch by Inch' 연설이 있습니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선수들이 제대로 섞이지 못한 채 갈등할 때, 알 파치노가 연기한 감독은 선수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늙어서 너희를 위해 대신 뛰어줄 수는 없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인생은 1인치의 게임이다.
오차의 범위는 너무나 작아서 반 걸음만 늦어도, 반 초만 빨라도 잡을 수 없다. 우리가 그 1인치를 위해 손톱으로 할퀴며 덤비고, 그 모든 인치를 합쳐낼 때 비로소 승리와 패배는 갈라진다."
우리의 일도, 우리의 삶도 결국 이 1인치의 싸움입니다. 너무 빨라도 잡을 수 없고, 너무 늦어도 기회를 놓칩니다. 그 1인치를 위해 동료가 몸이 부서져라 막아내고, 그 틈을 타 또 다른 동료가 전력으로 뛰는 것.
내가 기꺼이 희생할 때 동료가 나를 위해 뛸 것이라는 믿음, 반대로 동료가 뛸 때 내가 몸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다는 확신. 팀의 우수함은 스펙의 합이 아니라, 서로를 위해 1인치를 더 뛸 준비가 되어 있느냐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1인치를 향한 싸움은 고상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알 파치노의 말처럼 지옥 한복판을 기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굳이 그 길을 갈까요? 엔비디아의 젠슨 황은 "다시 돌아간다면 회사를 만들까" 라는 질문에 말했습니다.
"만약 창업의 고통, 취약한 상태에서의 외로움, 창피함, 수치심, 그 모든 부끄러움을 미리 알았다면 저는 절대 시작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가 3,000조 원의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건, 역설적이게도 그 고통을 모르는 '초능력' 덕분이었습니다. 그는 매일 아침 뇌를 속이며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그거, 뭐 얼마나 어렵겠어? (How hard can it be?)"
팀이란 바로 이 '주문'을 함께 외우는 사람들입니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면 1인치를 위한 희생은 절대 남는 장사가 아닙니다. 하지만 위대한 팀은 고통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대신 서로를 바라보며 젠슨 황의 주문을 욉니다. "우리가 함께인데, 그까짓 1인치 만드는 게 뭐 얼마나 어렵겠어?"
이 무모한 낙관. 서로가 서로에게 불가능을 잊게 해주는 이 '긍정의 착각'이야말로, 우리를 지옥에서 기어 나오게 만드는 진짜 동력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팟을 만들며 세상을 바꿀 때, A급 인재들이 모인 그 시절이 인생에서 가장 힘들면서도 가장 뜨거웠다고 회고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는 듯 합니다.
"자존심보다 결과를 더 사랑할 것."
천재 10명이 모여도 서로 자기주장만 하고 자존심을 세운다면 그들은 팀이 아니라 그저 '잘난 모래알'일뿐입니다. 애플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서로 1인치를 찾아내기 위해 치열하게 논쟁하면서도, 그 충돌이 '나'를 공격하는 게 아니라 '팀의 결과'를 빛내기 위한 과정임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보여준 진정한 헌신입니다.
모든 조직이 최고의 인재만 모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인재라도 이들처럼 내 자존심보다 팀의 1인치를 위해 뛰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어느 순간 비범해집니다. 그리고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모인 팀은 천재들의 집합보다 더 강력한 난공불락의 요새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헌신과 열정만으로 팀이 유지될까요? 여기서 리더의 냉철한 역할이 필요합니다. 리더는 단순히 "으쌰으쌰"하며 분위기를 띄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진정한 리더십은 '따뜻한 가슴'과 '냉철한 책임'의 균형에 있다고 믿습니다.
첫째, 리더는 '판을 깔아주는 사람'입니다. 팀원이 어디서 막혀 있는지, 어떤 병목이 그들의 질주를 방해하는지 읽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병목을 부드럽게, 그러나 정확하게 뚫어줘야 합니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 아니라, 팀원들이 마음껏 그 1인치를 달릴 수 있도록 무대를 만드는 것. 그것이 리더의 기쁨이어야 합니다.
둘째, 리더는 '시스템을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이 부분이 가장 어렵고도 중요합니다. 팀원의 희생이 '호구'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1인치를 위해 헌신한 사람에게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공정한 평가와 보상이 돌아가야 합니다. 반대로 팀의 전진을 가로막거나 동료의 헌신에 무임승차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리더가 '좋은 사람' 콤플렉스를 버리고 단호하게 결단해야 합니다.
희생에 대한 시스템적 보장이 없는 팀에서 팀워크를 외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헌신하는 팀원을 보호하고, 불합리한 상황이나 고객 앞에서 대신 "No"라고 말해줄 수 있는 용기. 그것이 팀을 지키는 힘입니다.
저는 스스로 1등이 되고 싶은 마음도, 화려한 조명을 받고 싶은 욕심도 없습니다. 제가 주목받고 싶은 욕심을 가지는 순간 팀이 무너짐을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 리더로서 팀을 위해 젠슨 황이 느꼈던 수치심과 창피함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생겨도 괜찮습니다. 팀에 바라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내 주변 사람들이 빛나고, 그들이 더 우수해지고, 서로를 위해 기꺼이 1인치를 뛸 수 있는 팀이 되는 것.
오늘 성과가 조금 더뎌도 괜찮습니다. 오늘 1인치, 내일 1인치. 이 1인치가 쌓이고 그 헌신을 리더가 지켜준다면, 그 팀은 결국 세상을 바꿉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그리고 출근하는 운전길에 묻습니다.
"우리 팀이 1인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나는 오늘 무엇을 책임질 것인가?"
오늘 저는 팀에 말합니다.
"모두 잘하고 있어. 이만하면 됐지 더 이상 얼마나 잘해?"
<Any Given Sunday> 'Inch by Inch' Speach
솔직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 선수 인생에서 가장 큰 싸움까지 3분 남았다. 모든 게 오늘로 결정돼. 자, 이제 우리는 하나의 팀으로 치유되든가, 아니면 완전히 박살나든가 둘 중 하나야. 경기가 끝날 때까지, 매 플레이, 인치 대 인치로 말이야.
믿어라, 여러분들. 우린 지금 지옥 한복판에 있어. 그리고 우리는 이대로 여기에 머물면서 개처럼 두들겨 맞을 수도 있지. 아니면, 싸워서 다시... 저 빛 속으로 돌아갈 수도 있어. 우린 지옥에서 기어 나올 수 있다... 한 번에 1인치씩 말이야.
난 너희를 위해 뛰어줄 수 없어. 너무 늙었지. 이 젊은 얼굴들을 보면서 생각해... 난 중년 남자가 저지를 수 있는 모든 잘못을 다 저질렀어. 돈도 다 날려 먹었고, 날 사랑했던 사람들 전부 내쳤어. 요즘엔 거울 속 내 얼굴조차 쳐다보기 싫다.
살면서 나이를 먹으면, 많은 것을 빼앗기게 돼. 그게 인생이야. 하지만 그건 무언가를 잃기 시작해야만 알게 되지.
인생은 그저 '인치의 게임'이라는 걸 깨닫게 될 거야. 풋볼도 마찬가지고. 왜냐면 인생이든 풋볼이든, 실수의 여지가 너무 작거든. 반 걸음만 늦거나 빨라도,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 반 초만 느리거나 빨라도, 공을 잡지 못한다고.
우리가 쟁취해야 할 인치들은 우리 주변 모든 곳에 있어. 그 인치들은 게임의 모든 틈, 모든 분, 모든 초에 존재한다. 이 팀에서, 우린 그 인치를 위해 싸운다.
이 팀에서, 우린 그 인치를 위해 우리 자신과 주변의 모든 것을 박살낼 각오로 싸워. 우린 그 인치를 위해 손톱으로 할퀴며 덤비는 거야! 왜냐하면 우린 알고 있으니까! 그 모든 인치들을 합쳤을 때, 그게 빌어먹을 차이를 만든다는 것을! 승리와 패배 사이의! 삶과 죽음 사이의!
하나만 말해줄게. 어떤 싸움에서든, 그 인치를 쟁취하는 놈은 기꺼이 죽을 각오가 된 놈이야. 그리고 난 알아. 내가 앞으로 어떤 삶이라도 살고 싶다면, 그건 내가 여전히 그 인치를 위해 싸우고 죽을 각오가 되어 있기 때문일 거야. 그게 바로 사는 거니까. 네 얼굴 바로 앞의 6인치!
자,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강요할 수는 없어. 옆에 있는 동료를 쳐다봐. 그의 눈을 똑바로 봐! 난 네가 너와 함께 그 인치를 갈 동료를 보게 될 거라고 확신해. 넌 이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동료를 보게 될 거야. 왜냐하면 그 동료는 결정적인 순간에 네가 똑같이 해줄 거라는 걸 알거든.
여러분들, 그게 바로 팀이다.
이제 우리는 팀으로서 치유되든가, 아니면 각자 개인으로 죽든가 할 거야. 그게 풋볼이야. 그게 전부라고. 자, 이제 뭘 할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