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열치열하 Oct 26. 2024

그의 이름은 페르세포네가 아니었다

창작 단편 소설, 백설공주 재해석.

탄생, 결혼, 임종, 모든 상황마다 그에 따른 기도가 존재하지 않는가, 모든 상황에 맞는 구절이 있어야 한다.

-<빈 옷장> 인용.


 네가 태어난 날 너는 눈밭에 버려질 뻔했다. 네가 백설이라 불리는 것은 순전히 나중에 갖다붙인 이유일 뿐이었다. 너의 어머니는 홍옥이 유명한 남쪽 나라에서 시집왔다. 그는 본국에서 자신을 데려와놓고 신뢰 하나 주지 못한 남편에게 광증에 가까운 분노를 느끼던 왕비. 너는 달 수를 채우지도 못한 채 나와 눈밭에 던져졌다. 산파가 굽은 다리로 허둥지둥 다가가 너를 곧장 들어올렸다. 불행 중 다행인지 그 두꺼운 눈이 네 몸을 산산이 쪼개지 않고 오히려 먼저 안아주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렇게 네 이름은 숙명이 되었다. 너의 죽음을 비는 왕비와 작은 공주님이 살아남길 바라던 시녀들의 바람과 맞부딪히며.

 네 아비는 무엇이든 깊게 생각하지 못했다. 네가 보일 때 빙긋이 웃어주던 것은 적통의 공주여서가 아니라, 웬 어린애가 궁전을 누비는 게 그저 귀여워서였다. 그러니까, 제가 뿌린 씨가 후궁 귀족 시녀 하다못해 밖에서 납품을 위해 들어온 천민 중에 누구에게 닿았는지 생각해야만 하는 남자였다.

 네 어미는 광증이 극에 달해 아무 사이도 아닌 사냥꾼에게 결혼해달라 빌었고, 자신이 왕비였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자식이 딸린 게 흠이라면 그 애를 해쳐달라 애원했다. 궁전을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천민조차도 너의 이름을 쑥덕거리게 되자, 그곳은 너에게 조금도 안락한 곳이 못되었다.

 그래서 너는 일 곱 명의 인부가 일하는 숙소로 도망쳤다. 곱게 자랐지만 사랑을 모르는 손이 거칠게 비질을 배웠다. 너는 어쩌면, 여덟 번째 인부라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부르튼 손을 보면서 종종 궁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을 잊고 사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미친, 한 쌍의, 남자와 여자(너는 그들을 부모라 부르기 싫어했다)가 자리하고 있지 않은가. 너는 명분을 찾아야 했다. 학대를 운운하기에는 왕실은 섬세한 곳이 아니었다.

 외교를 위해 왔다가 백마를 탄 채 길 잃은 대공을 마주한 건 행운이었다. 너는 이미 찌든 두건을 벗어 그의 땀을 닦아주었다. 그가 어머니의 나라에서 왔다는 것을 알아도 화는 나지 않았다. 얼빠진 듯 자신을 바라보는 대공에게 너는 기도하듯 두 손으로 두건을 모아쥐었다.

“나와 결혼해요.”

“절차에 어긋납니다.”


 마지못해 공주라는 호칭을 덧붙이는 그의 낯이 어떤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너는 일곱 명의 인부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했다. 공주였던 자신에게 관을 씌워달라고. 아름답고 눈부신 관짝을.


 성공이 아니라면 최소한 죽음. 하지만 반동이란 으레 그런 것이라. 너는 작위적인 유리관 안에 누워 홍옥을 만졌다. 그것이 더 붉어 보이도록 소매로 문질러 닦았다. 어린 시절 챙겨와 닳고 조이는 드레스를 입은 채 스스로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사랑보다는 열렬한 보복에 불타는 가슴으로, 너는 독 묻은 홍옥을 물었다.

 대공이 너를 사랑하지 않아도, 그는 너를 구해야 했다. 왕실에 그런 명분은 존재했다. 만약 살리는데 일조한다면 포상으로 왕은 사위가 될 것을 청하리라. 그것을 거절하는 것은 도의에 어긋나며 왕권은 젊은 한 쌍에게 기울 것이고… 너는 이후의 많은 상황을 궁리하느라 기도를 깜빡하고 말았다.


그리고 네 부모 또한 누군가와의 혼인을 셈했던 선배들이라는 사실도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